마지막 피치
달리기에서는 마지막 한 고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후의 5분간'이니 '라스트 헤비, '마지막 피치'니 하는 외래어들까지도 동원이 되어서 자주 쓰이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오랜만에 모교의 교정에 서서 어린 후배들이 뛰고 달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어린 시절의 경주를 회상하며 인생도 역시 경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 주자일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지난 5월 5일은 우리 초등학교의 개교 60주년 기념식이 거행된 날이었다. 원래의 5월 23일이 개교기념일인데 농번기를 감안해서 앞당긴 것이라고 한다. 기념식은 관례에 따라서 국민의례, 학교 연혁 소개에 이어서 기념사업 추진에 관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5천 여 명이나 배출된 졸업생 가운데는 크게 치부한 사람이나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손 큰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 목표액 2천만 원의 반을 겨우 넘었다던가?
동창회장은 축사에서 '정안(正安)'이라는 교명을 풀이하면서 후배들에게 학교 이름처럼 바르고 편안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나도 평소에 모교의 이름이 뜻이 좋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이런 계제에 마침 동창회장이 이름을 추어올린 것이다. 자화자찬 격이기는 하지만 그 자리를 메운 많은 동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흐뭇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옥내의 식전행사와 함께 운동장에서는 학구 내 부락대항으로 재학생들의 체육축전이 한마당 벌어지고 있었다. 졸업생들이 식장에서 풀려 나오자 관람석은 이내 성황을 이루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모교의 운동장에 서니 나도 한번 팬츠바람으로 달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누가 옆에서 살짝 거들기만 하면 금방 응할 태세가 되어 있는데 다행인지 소행(?)인지 아무도 부추기는 사람은 없었다. 이 주책없는 충동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관중 속에 끼어든다. 학교도 커졌고 운동회도 우리 때보다는 훨씬 화려해진 것 같다. 학생들이 똑 고르게 모두 트레이닝 팬츠 차림이어서 산뜻하게 보인다.
지금도 농촌학교는 학동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지만 우리가 다닐 때에는 전교생이 2백 명이 채 안 되는 더욱 조촐한 학교였었다. 학교의 예산도 넉넉하지가 않았는지 어느 해의 운동회는 상품대신 입상자에게는 천으로 만든 색 리본을 하나씩 달아 주었다. 상품이 없어도 운동회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날의 달리기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떤 아이는 넘어져서 도중에 경주를 포기해버렸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서 달리는 재기파도 있었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경주도 있다. 표어가 적힌 카드와 기치를 서로 맞추어서 들고 달리는 경주였었다. C군이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선두를 달렸다. 워낙 이름있는 준족이었다. 표어는 그 당시 널리 부르짖던 '농촌진흥', '자력갱생', '근검절약', '허례폐지', '저축여행' 등이었다고 기억된다.
C군이 트랙을 거의 다 돌았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즉흥적인 착상을 하신 것 같다. 기치를 그대로 들고 달리는 것보다는 구호를 외치면 경기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담임선생님이 메가폰을 들고 급히 운동장 가운데로 달려 나오셨다. 구호를 외치라고 주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런데 선두주자는 미쳐 구호를 외칠 사이도 없이 그대로 들어오고 말았다. 후속주자를 10여 미터나 따돌린 당당한 1등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뒤쫓아오신 담임선생님은 C군을 등외석으로 호되게 밀어 부쳤다. 구호를 외치지 않았기 때문에 실격이라는 것이었다.
애매한 판정으로 시무룩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달리기에서 이기고 구호에서 진 억울한 판정이었다. 그가 들고 들어온 '자력갱생'의 표어가 무색했다. 끝내 C군의 등위는 '갱생' 되지 못했던 것이다.
흔한 비유지만 경주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좌절이 있고 재기가 있고 승자와 패자가 있다. 앞사람의 허리춤을 낚아채고 따라오는 주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알력(軌樓)과 반칙(反則), 그리고 승패가 뒤바뀌는 오판(誤判)등…….
인생과 경주는 서로가 너무도 많이 닮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들 인생경주의 주자들일 터인데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 것일까? 정년에 변함이 없는 한 교직자로서의 나의 결승점도 6~7년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그 결승점의 테이프를 끊을 때 나는 과연 몇 등짜리 주자가 되어서 들어올 것인가? 그리고 무슨 색깔의 리본을 하나 달아볼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 운동회에서는 1등은 노랑, 2등은 파랑, 3등은 빨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왕이면 나도 노랑 리본을 하나 달고 싶다. 그런데 가끔 등외석으로 밀려나서 시무룩하던 C군의 모습이 자주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구호(?)없이 달린 나의 인생경주가 아무래도 꺼림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인생의 떫은 맛은 가셔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감투나 평판, 재물 따위 구호들을 진정한 인생의 상품(賞品)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는 출세나 명예, 치부가 입에 발린 구호가 된지 오래인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간(世間)에서는 이들을 '속물' 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데도 그 매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모든 경기에서는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페어 플레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생경주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어느 분야에 서나 성실하게 역주하는 주자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 우리는 당당하게 달린 주자에게는 등위에 관계없이 모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내가 나의 길을 성실하게 역주했다는 자신은 없다. 그보다는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 부덕하고 안이한 주자였다는 아쉬움이 앞설 따름이다.
지금 모교의 운동장에서는 응원석의 함성이 5월의 푸른 하늘속으로 싱싱하게 퍼져나간다.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달리고 싶다. 나에게도 이제사 '마지막 피치'의 의미가 뼈저리게 숨어드는 것 같다.
결승점이 눈앞에 보이는 이 순간.
(忠南敎育, 1982.6.)
첫댓글 달리기에서는 마지막 한 고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문득 어린 시절의 경주를 회상하며 인생도 역시 경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 주자일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인생과 경주는 서로가 너무도 많이 닮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들 인생경주의 주자들일 터인데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분야에 서나 성실하게 역주하는 주자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함성이 5월의 푸른 하늘속으로 싱싱하게 퍼져나간다.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달리고 싶다. 나에게도 이제사 '마지막 피치'의 의미가 뼈저리게 숨어드는 것 같다. 결승점이 눈앞에 보이는 이 순간./ 본문 부분 발췌
끝없이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달려 완주하신 원종린 선생님의 레이스를 기억하게 하는 글입니다. 선생님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을 감히.. 받은 저로서는 인생 경주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네요. 승자도 패자도 없다지만 삶은 늘 앞으로만 달려가야 한다는 것, 유턴이 불가하다는 것...딜레마 같아요. 이런 의미있는 찾아 올리신 조성순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