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18세기 자연신론 사상이 일어난 이후로는 이러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성경의 무오류성을 부정하는 신학의 흐름에 맞서기 위하여 글리슨 아처 박사는 『성경난제 백과사전』(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을 1982년에 출간하였다. 바르트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이 인간의 책이고, 오류가 많은 책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그럴 듯한 말로 받아들인다면 믿음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오늘 본문의 글은 이 책의 서론 중 맨 앞부분이다. 서론만 해도 글의 분량이 많으므로 나눠서 게재하고자 한다.
기독교 교회의 전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성경은 오류가 없었다고 분명히 이해되어 왔다. 교회를 떠난 이단적 집단들을 제외하면 성경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에ㅡ그것이 신학상의 문제이든, 역사나 과학의 문제이건ㅡ 성경은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항상 믿어져 왔다.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는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비록 그를 반대하는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이 교회의 권위를 성경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두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루터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의 투쟁의 대상이었던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때로부터 18세기에 자연신론 사상이 일어날 때까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해서는 어떤 의심도 표현되지 않았다. 심지어 소시누스(Socinus)와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같은 일신론자들도 성경의 무오성에 근거해서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18세기의 합리주의와 이신론(deistic) 운동의 발흥은 성경의 무오한 위치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이신론자들 사이에 명확한 선이 곧 그어졌다. 초자연적 요소에 대한 점증하는 반감이 19세기 지적 지도자들을 지배하였으며, 이런 정신은 유럽과 미국에서 공히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을 일으켰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인간이 지은 종교적 의견들의 수집서로 여겨졌다. 만약 최고의 존재 같은 어떤 능력이 존재한다면, 그는 피조된 우주 속에 스며들어있는 비인격적인 힘이든지(범신론적 견해), 아니면 인간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이 거의 전혀 알 수 없는 완전한 타자(Wholly Other)였다(키에르케고르식의 대안). 고작해야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명제적 진리로 파악될 수도 없고 성립될 수도 없는 실체- 을 가리키는 일종의 검증 불가능한 증거를 제공할 뿐이었다.
금세기 전반에는 정통 복음주의자들과 성경의 무오성 반대자들 사이에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졌다. 위기 신학자들(Crisis theologians: 이들의 계시관은 키에르케고르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과 자유주의자들 즉, 현대주의자들은 (이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이성과 현대 과학 아래에 두었다) 무오성의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근본주의자” (Fundamentalist)라고 공언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함께 최초에 주어졌던(originally given) 구약과 신약성경은 어떤 종류의 오류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세기 후반기 동안에 수정론자들(revisionists)이라는 새로운 학파가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학파는 성경 무오성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은 참되고 완전한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접근방법이 점점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서, 미국 내에서만도 예전에는 복음주의적이었던 많은 신학교들이 성경에 대한 역사적인 입장으로부터 이탈해 나갔다. 해롤드 린젤(Harold Lindsell)이 그의 책 성경에 관한 논쟁(Battle for the Bible, 본사 역간)에서 이런 경향을 증거했듯이, 실질적으로 성경 권위에 대한 이런 수정된 개념을 수용한(혹은 용납할 수 있는 것이라고 관용적인 태도라도 취한) 모든 신학 교육 기관들은 특징적인 형태의 교리 손실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마치 정박지를 벗어나서 서서히 바다로 미끄러져 나가는 배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변질된 학파들도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자기들의 신학도 여전히 전적으로 복음적이며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교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ㅡ특히 이런 주장은 그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일반 대중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단지 성경 진리의 방어에 있어서 더욱 견고한 지반으로 옮긴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입장의 한 옹호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서 내가 우스꽝스러운 극단으로까지 가야만 하는 그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경 무오성의 의미를 정의하라고 하지는 않겠다."1) 이 접근법의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성경의 여러 사건들"(phenomena of Scripture) 속에는 명백한 오류들이 (적어도 역사와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는) 있으며, 따라서 완전한 무오성은 어떤 종류의 지적 성실성에 의해서도 지지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들만이 성경 권위에 대한 정직하고도 신뢰할 만한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증거 자료만으로는 성경에 관한 기독교의 역사적 입장을 성공적으로 옹호할 수가 없다. 설사 히브리어, 아랍어, 그리고 희랍어로 쓰여진 최초의 원본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원본들 자체가 사실상의 오류를 (물론 교리상의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포함하고 있었다고 확언한다.
이런 주장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제시하는 일이 철저한 복음주의자들의 의무이다. (1) 만약 원래의 필본이 어떤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다면 성경의 무오한 권위는 논리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것이 된다. (2) 모든 관계 자료들에 비추어 볼 때, 성경에 거짓이나 오류가 있다는 어떠한 구체적인 비난도 성공적으로 주장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의 여러 사건들을 들어서 무오성을 부정하려는 노력은 성경의 유오성을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경의 신적 영감과 초자연적 기원을 더욱 확인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환언하면 우리는 첫째로 무오성(inerrancy)이 없는 무류성(infallibility)이라는 대안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ㅡ 왜냐하면 논리적인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고는 이 대안이 주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ㅡ보여 주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 원본에 오류가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되는 모든 것들은, 이미 확립된 증거의 법칙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없는 것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1) “Theology News and Notes", 1976 Special Issue p. 26에 William S. LaSor가 쓴 "Life under Tension-Fuller Theological Seminary and 'The Battle for the Bible'" 이라는 글.
글리슨 아처 저, 황영철 역,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말씀사, 1996년 7쇄), pp. 21-23.
글리슨 아처(Gleason L. Archer)
서퍼크법과대학 법학학사
프린스턴신학교 신학사
하버드대학교 박사
하버드대학교 석사
하버드대학교 학사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구약학 명예교수
플러신학교 성경언어학 교수
첫댓글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바르트 문제로 기독 카페에서 논쟁이 조금 되었던 것 같은데요. 시기적절한 좋은 포스팅입니다.
네, 신정통주의로 논란이 되는 것 같더군요.
공감합니다.
성경의 신적 권위
종교개혁자들뿐 아니라 로마 교회도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두 진영의 의도가 정확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로마 교회는 성경 자체 교회에는 권위가 없고 교회 때문에 존재하며 따라서 교회 때문에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로마 교회의 주장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성령에 의한 영감에 힘입어 내적인 권위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성경은 그 자체가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따라서 인간에게 권위를 지닌다. 이렇게 성경의 권위를 가장 높은 곳에 두는 견해는, 훗날 합리주의의 냉랭한 바람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이성이 진리의 중재자로서 권좌에 오를 때까지 종교개혁 교회들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다른 책들과 같은 차원에 두며, 그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 권위를 인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권위를 갖는다. 즉 성경은 참되고 절대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모든 내용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역사적 권위 외에도,
삶과 행위의 준칙으로서 규범적 권위를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한다.
루이스 벌코프, 『벌코프 조직신학 개론』, pp.41~42.
@장코뱅 성경의 신적인 절대 권위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4항
우리가 믿고 복종해야 할 성경의 권위는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 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5항
우리는 교회의 증거를 통해 감동과 권유를 받고 성경을 높이 우러러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딤전 3:15). 내용의 신령함, 교리의 효력, 문체의 장엄함, 모든 부분의 일치, 전체적인 목적(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 인간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온전히 제시하는 내용을 비롯해 비할 데 없는 탁월한 속성들과 그 완전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는 근거다. 그러나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를 믿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 심령 속에서 말씀으로, 또 말씀과 더불어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요일 2:20, 27, 요 16:13-14, 고전 2:1012. 사 59:21).
해설
이 조항들은 성경의 권위가 사람이나 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가르치는 한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그중 첫 번째 조항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는 교황주의를 반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은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가 교회에 의존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엡 2:20).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외적, 그리고 내적 증거에 의해 입증된다.
1. 외적 증거: 성경 저자들의 인격,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영감을 부여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행한 기적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들의 성취, 성경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 성경이 일으킨 엄청난 효과(인간의 법률이나 철학의 교훈으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효과들), 성경이 야만적인 민족들을 문명화시키고, 사회의 상태를 개선하는데 미친 영향(성경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 등
2. 내적 증거 : 성경에 기록된 교리의 지극히 탁월한 속성, 자연이나 이성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진리의 계시, 그 교훈의 범위와 순수함, 하나님의 성품과 도덕적인 통치 행위를 드러내는 내용,
인간의 상태와 결함을 정확히 다루고 있는 진리, 많은 사람이 제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한 내용들이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특성, 문체의 장엄함,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지향하는 성향 등
이것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을 갖게 만드는 증거들이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면 성령이 말씀을 인간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적용하셔야만 한다. 그 이유는 성령의 내적 조명이 있어야만 성경의 자증성과 권위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요일 5:10)라는 말씀대로 믿는 사람들은 비록 합리적인 논증으로 성경의 영감을 입증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성경의 능력과 효과를 통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불신자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논증과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성경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런 주장은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빛을 주는 태양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pp.26~27.
@장코뱅 웨민의 선언과 해설이 매우 탁월하네요. 내용도 풍부하고 부족한 데가 없이 필요한 설명들을 꽉꽉 채워놓았네요.👍👏👏
성경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라는 증거는 웨민에서 정리한 것과 같이 외적, 내적으로 차고 넘치는데 문제를 제기하면서 인간의 책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간을 통해서 기록된 저작물이라도 성령께서 생각과 감동을 역사하시고 깨닫게 해주셔서 기록된 것이라는 점에서, 생각의 원천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말씀들을 듣고 보고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인간의 저작물을 넘어서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의 창작물이라면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들과 진리의 계시를 그렇게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 수가 없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 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죠. 접근을 아예 못하죠. 알려주시는 자가 있으니 그 내용을 알게 된 거죠. 우주만물과 창조 세계, 미래에 대한 예언과 계시 등등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지어낸 것이라면 이렇게 우주가 질서 있게 움직이고, 인간이 순응하며 안심하며 살 수 있었을까요? 수학이든 과학이든 의학이든 모두 엉망이고 이렇게 발전하기 어려웠겠죠. 이 모든 것은 설계자가 있으니 가능한 것이었죠! 성경도 이와 같습니다.
본문과 이 댓글에서 많이 배우고 은혜를 받습니다.
@에이프릴 공감합니다.
성경무오 (Inerrancy)와 성경무류(infallibility)는 같지 않다
https://blog.naver.com/lucalcollge/223678959733
링크 글 잘 보았습니다. 여기에 공부할 다양한 정보도 많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