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랑하는 친구가 죽었습니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이 1979년 12월.
어느 덧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혼식에 입을 양복과 코트를 어제 죽은 친구가 맞춤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는 시장통 가장 번잡스런 곳에 양복점을 내어 운영하였습니다.
솜씨가 좋아 이곳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양복점입니다.
결혼식에 입을 양복과 코트를 정성스레 솜씨를 뽐내어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만들어진 옷을 맞는지 입어 보고 사 입습니다만, 예전에는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춤으로 해서 입었습니다.
맞춤 양복은 지고, 기성복을 사입는 흐름에 순응하여 그렇게 솜씨가 좋던 친구가 어느 날 양복점을 정리하고 시작한 것이 건설업입니다. 신용과 성실을 바탕으로 꾸준히 일감이 있어 최근까지도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은 것은 아니지만 2남 2녀 네 아이를 두고 한 가정을 이끌어 왔습니다.
더욱 진한 인연은 친구의 두 아이의 결혼식 주례를 내가 맡아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례를 해주어야만 아이들이 잘 살거라면서 주례를 부탁하여 유일하게 한 집의 두 남매 주례를 서 주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내 덕으로 자녀들이 애도 잘 낳고 걱정없이 산다며 고마워 하던 친구입니다.
엇그제 토요일 병원 입원한 후 사흘만에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는데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망한 삶입니다.
태어나면서 죽음을 안고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허망합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말문이 꽉 막히면서 숨조차 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친구가 죽음 뒤의 세상에서 편안하길 빌어 봅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따라 날씨는 왜 이리도 좋은지요. 먼 산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