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에도 등재될 정도로 가치 있는 거문오름을 가게 됐다.
해설을 들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참여 가능한 인원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며칠 전 급하게 예약을 했었다.
가능하면 이날 혁수가 올레길 코스를 인솔 하기로 했으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거문오름을 먼저 가게 됐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A코스는 계단이 많아 오르기 힘들고
B코스는 완만해서 걷기 쉬운데 몇년 전만 해도 B코스에서 A코스로 갈 수 있었으나
현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서가 A코스를 같이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현서에게 물으니 가고 싶다고, 마리아 선생님께 여러차례 말했다.
우리는 둘러모여 현서 문제를 의논했고, 도와줄테니 데려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게 출발을 했다.
잘걷는 사람들이 뒤에 서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들 속도에 맞춰 가는게 우리의 약속이었지만
해설을 듣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반대가 돼버렸다.
그래서 맨 뒤에서 마리아 선생님이 현서를 전담해서 계단과 오르막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해설을 들으며 가라고 선생님이 하신거다.
풍수지리가 좋아서 여름이 되어도 온도가 28도를 넘지 않아
덥지 않은 곳이라고 해설사님이 말씀하셨다.
모기와 진드기가 없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인간에게 이렇게 최적의 조건인 곳이 있을까 믿기 힘들었다.
오름 모양이 말발굽같이 생겨 숨기 좋은 형태였다.
그래서 과거엔 일본군 갱도진지로도 쓰였다.
만약에 제주도에 폭격을 퍼붓는 작전이 시행됐다면
거문오름도 잿더미가 됐을거라고 하니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A코스를 마치고 꼴찌로 따라오던 마리아 선생님과 현서에게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고 해설사분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와 혁수 부모님만 B코스까지 걸었다.
점심식사 후 혁수 부모님을 공항에 모셔다드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뭘 하면서 보낼지 얘기를 나눈 끝에
다른 일정과 겹쳐 가지 못했던 사려니숲을 걷기로 했다.
그러자 걷는 활동에 불만이 많았던 혁수가 가기 싫다고 징징대면서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를 보여 모두를 힘들게 하였다.
정중하게 가기 싫은 이유를 말하면 될것을 짜증을 부린다.
혁수가 애같이 때를 쓸 때 우리는 어디까지 다 받아줘야 하나 싶었다.
사려니숲 운영 마감 시간이 임박하자 걸음이 빠른 사람만 걷고 나머지는 차에 남기로 했다.
그러다 큰일이 생기고 말았다. 유준 형과 내가 사려니숲을 걷는 사이
차 안에서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며 돌변한 것이다. 자기만 불만 있는줄 아냐고,
형들도 불만이 많다며 우리 둘을 언급하면서 팔아먹었다.
해서는 안될 일을 거리낌 없이 하던 애가 결국 선을 넘은것이다.
저녁 하루 나눔 시간에 둘러앉아 폭력적이고 상식밖 행동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계속 되묻자
자기도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지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기분에 따라 말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사과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없는 상태로 몇시간 대치하다가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도 이런 만행을 해도 된다고 인식시킬 수 있어서
억지로라도 사과를 받아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녁밥이 입에 들어갈리 없다.
모두가 저녁을 굶으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래서 나눔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잠을 자야했다.
우리의 나눔은 하루가 지나고나서 마저 할 수 있었다.
현서는 A코스 밖에 걸을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 속도에 따라갈 체력이 안되는데
혹시라도 뭔 일 생기면 괜히 민폐끼칠까봐
A코스 만이라도 걸어서 만족하고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B코스 부터 걷는 방법이 없단걸 알았을 때 걸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고
A코스는 계단이 많아 선생님도 자신이 없었다. 속마음으로는 안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간다고 하니 '대단하네, 나를 끌고 가주네'라고 생각하며 손잡고 걸었었다고 했다.
현서가 비장애인과 섞이기 위해 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고도 말씀하셨다.
하지만 현서가 하고 싶은걸 다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그건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하지 못할게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현서는 자신이 못가게 된 일에 대해 받아들여서 살면 좋겠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