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1932~2011)
애칭인 'Liz Taylor' 로 불리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40년대 아역배우로
시작으로 하여 1950년대에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타로 부각
(浮刻)되었으며, 이러한 그녀의 명성(名聲)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대중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American Film Institute에서는
1999년에 그녀를 역사상 7번째로 위대한 여배우로 지정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39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 L.A로 귀국하였다. 그리고 곧 'Universal Pictures'와 계약을
맺었고, 1942년 비록 작은 역할이기는 하지만, <There's one Born Every
Minute>를 통해 첫 데뷰를 한다. 'Metro-Goldwyn-Mayer 社'로 옮긴 그녀는
1944년에 출연한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 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
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7명의 남자와 8번의 결혼으로도 유명한데, 그 중 2번 결혼한
'리차드 버튼'과의 연분(緣分)은 유명하다.
1963년 당시 최고의 제작비로 유명세를 탄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공동
주연을 맡았던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대중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불륜에 빠졌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버튼'은 2번째였고 '엘리자베스'는 5번째 결혼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 이라 불렸고, 이 때 '버튼'이 선물한 '3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는 유명하다.
이후 두 사람은 총 11개의 영화에서 공동주연으로 출연하였고, 황금기를 구가
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들을 'Liz and Dick' 이라 명명했다.
1975년에 두 사람은 이혼 하였다가 같은 해 다시 결혼한다. 그리고, 1년만에
다시 이혼을 하게된다. '버튼'은 다혈질적인 성격에다가 알콜 중독까지 있어서
결혼 생활 중 '엘리자베스'와 다툼이 많았지만, '엘리자베스'의 7명의 남자 중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그녀는 "죽은 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녀는 목숨을 잃을 뻔한 병마(病魔)와 수십년 동안 활동해 온 사회사업가로서,
AIDS 홍보와 연구, 치료의 전문가로서도 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他界)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女神)이라 불리었던 여인들
(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캐서린 헵번)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