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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 신앙부흥회1 계명에 순종하는 재림신앙 – 박상길 목사ㅣ2024.4.19. (금)
우리를 담대한 믿음으로 초청해 주신 우리 집사님들의 귀한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행복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안식일 맞이하셔서 좋으시죠?
이 안식일에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와 또 평강이 모든 분들에게 또 가정에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또 한 주일 동안 제가 모처럼 이 부산에서 귀한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말씀의 교재를 나눈 행복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연수원이 참 너무 멀어서 호남합회와 또 영남학회 성도님들이 연수원에 오시기가 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이 집회에 부름을 받고 연수원에 오시기가 힘드니까 제가 주로 연수원에서 나누는 말씀을 함께 나누어야 되겠다 그런 부담을 가지고 말씀을 준비를 했는데요.
오늘 저녁과 내일 저녁에 걸쳐서 율법에 순종하는 재림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텐데 이 말씀은 올해 연수원에서 제가 모든 연수 기간에 함께 나누는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재림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또 이 내용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부담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과 내일 저녁에는 좀 설교라기보다 좀 연수원에서 여러분이 강의에 참여하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좀 함께 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믿음에 대해서 잠깐 좀 우리 믿음의 개념을 좀 정리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들의 손에 들려서 침상체 베드로의 집에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여기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에 안심하라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믿음이 없어도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까?
그럴 권세가 예수님께는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만 일하십니다.
이게 믿음의 중요성이에요. 믿음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도 구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구속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12의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따라 안심하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러분 사실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믿음 자체는 그 안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는 말은 사실은 너의 믿음을 통해서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지킬 때 그 믿음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오늘 믿음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오늘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믿음이 없으면 일 안 하세요.
그 믿음이 크냐 작냐 간절하냐 뭐 덜 간절하냐 그것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작은 예수님 말씀하셨잖아요. 너희에게 겨자씨 하날 만한 믿음이 있어도 그 믿음을 통해서 왜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믿음은 크든 작든 믿음이 있어야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한번 따라가실까요?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또 하나 더 보겠습니다.
하인을 고쳐달라고 온 백부장에게
예수님께서 쭉 하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또 두 맹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죄송합니다.
두 맹인에게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무엇대로 되라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진지라.
믿음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두 번째 정의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대로 되게 하신다는 거.
백부장에게 니 믿음대로 될지어다.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래서 제가 믿음에 대해서 두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일하신다. 또 하나는 뭐였죠?
믿는 대로 되게 하신다. 그게 우리가 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믿음에 하나님은 집착하시나 그렇죠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김다섭 집사님 믿음 자기 믿음이 대단해요.
우리 신입 아무도 나 내 믿음 이만하면 됐다. 그럴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
믿음이 있고 없고가 그렇게 무슨 근데 왜 그렇게 하나님은 자꾸 믿어라 믿음을 가져라.
뭐 이렇게 믿음을 강조하시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 자체가 무슨 대단한 그 안에 에너지가 있고 막 능력 있는 것도 아니고 믿음은 단지 뭡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시는데 사실 믿음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데 왜 하나님은 자꾸 믿음을 찾으시는가 니 믿음대로 될지어다.
또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실은 예수님이 구원하셨는데 막 믿음이 너의 믿음이 구원하였다.
사실 좀 이해가 안 되죠. 왜 그런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가 믿음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오해가 있어요.
우리는 믿음이 내 거라고 생각해요. 내 믿음 여러분도 그렇게 말씀하시죠?
생각하시죠? 내 믿음 나는 나는 믿음이 너무 작아 믿음이 너무 약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믿음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
근데 믿음은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밖에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거예요.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엄마를 믿죠?
믿습니다. 울면 젖 준다는 것을 믿고요. 믿어요.
근데 여러분 그 믿음이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요? 철이 들면 저절로 생길까요?
여러분 믿음은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엄마가 아이에게 넣어준 거예요.
엄마의 계속되는 돌봄을 통해서 친절을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서 말을, 눈빛을 통해서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원래 사람 말입니다.
절대로 저절로 믿음 여러분 사람이 땅을 딛고 걸어다니는 것도 이게 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걸어다닙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니고요. 오래 오랫동안 땅이 사람에게 믿음을 줘요.
괜찮아 안 꺼져 걸어가도 돼. 땅이 준 믿음이에요.
이런 말을 더 많이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 이해하실 테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믿음을 찾으시고 믿음을 요구하시는가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실물 교훈 175쪽에 우리가 좀 잘 기억해야 할 만한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왔던 그 가나안 여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그 여인의 마음속에 거절을 개의치 않는 불요불굴의 정신을 넣어주신 이는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여러분 아시죠? 이 엄마가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왔어요.
예수님 예수님이 그때 제자들하고 식당에서 밥 드시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예수님 우리 딸이 뭐 이렇습니다. 좀 고쳐주십시오.
예수님 대답도 안 합니다. 좀 고쳐주세요. 모른 채 자꾸 그럽니다.
근데 제자들이 보니까 예수님이 이 여자의 말을 들어줄 기미가 안 보이고, 그러니까 예수님 저 여자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시끄러우니까 보내버리세요.
그렇게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세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하냐? 이 무슨 말이에요?
유대인은 자녀고 너는 이방 여자니까 너는 뭐와 같다 개와 같다.
여러분 아무리 딸 문제로 다급하지만 이 정도로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여러분 같으면 예수님 더 매달리시겠습니까?
이게 참 어렵잖아요. 근데 그 여인이 뭐라고 그래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자녀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저 개 좋습니다. 부스러기라도 좀 주세요. 이제 그 말을 한 그 여인 여러분 어떻게 사람이 이러한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도 예수님에게서 떠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믿음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이죠. 근데 이 믿음이 이 여자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예수께서 그 여인의 마음속에 넣어주셨다는 거야.
그래서 이 여인의 믿음의 주인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에요.
자기가 아니고 두 번째 법관 앞에 호소하는 과부에게 그 용기와 굳은 결심을 주신 이도 그리스도이셨다.
이건 뭡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의한 법관
에 대한 비유에 나오는 그 여자죠. 이 법관은 뇌물을 안 받으면 아예 재판을 안 하는 사람이에요.
아예 안 하는 사람이. 근데 이 여자는 억울한 일은 당했는데 뇌물 줄 돈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재판해달라고 그래도 안 해주는 거예요. 뇌물 안 주니까.
근데 마침내 해줍니다. 왜 해줍니까? 귀찮아가지고 이게 믿음인 거예요.
그 용기와 굳은 결심이 어디서 생겼는가 예수님이 그 여인의 마음속에 넣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믿음이 귀한 겁니다. 우리 안에서 발생한 것이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어디서 뭐 만들었거나 샀거나 내 안에서 개발된 것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가?
믿음이 겨자씨만 한 것이라도 왜 가치 있는가 그 믿음의 주인이 누구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수천 년 전에 야곱이 얍봅 개울가에서 이상한 씨름을 할 때에 야곱에게 백절불굴의 믿음을 넣어주신 이도 그리스도이셨다.
그리하여 당신 자신이 심어주신 믿음에 대하여 그분은 어김없이 갚아주셨다.
여러분 이 마지막 문장을 좀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당신 자신이 심어주신 믿음에 대하여 여러분 이 그래서 믿음은 믿음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이상한 심리학과 철학에 영향을 받아가지고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뭐 이렇게 자꾸 자기에게 자기 확신을 불어넣는 걸 믿음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과 아무 관계없습니다. 자기 신념도 믿음이 아니고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온 믿음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 당신 자신이 심어주신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것이 믿음 대
지금까지는 이제 제가 서론의 서론을 말씀드렸습니다.
서론의 서론 이제부터 서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출애굽해서 이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에 어 출애굽하고 그다음에 쭉 내려와서 루비딤을 지나고 그다음에 시내 광야에서 한 1년을 머물고 그다음에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거기서 뭘 하죠?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12 정탐꾼이 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회를 하죠.
그 보고회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두 개로 나뉘어집니다.
그전까지는 하나의 믿음이었어요. 무슨 믿음이었냐?
우리가 이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간다.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어요.
그 믿음의 근거는 뭐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말씀하신 거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믿고 그 하나님 믿음을 가지고 그동안에도 불평도 많이 했죠.
물 없다 뭐 배고파 죽겠다. 그래도
불평하고 원망했지만 그들의 믿음이 나뉘어진 건 아니에요.
그들은 어떤 믿음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한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완전히 두 개로 나누어져 버렸어요.
하나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다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두 개의 믿음이 생겨난 거예요. 근데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은 내 안에서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믿음이든 밖에서 나한테 들어오는 거예요.
여러분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믿음은 누구에게서 왔을까요?
당연히 사탄에게서 왔겠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지금 여기까지 데려오셨는데 없던 믿음이 생겨난 거예요.
지금까지는 가나안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이 백성들이 이제 우리 가나안에 못 간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심어준 믿음을 선택한 것이죠. 여전히 하나님이 심어주신 믿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소수의 믿음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굽니까? 갈렙과 여호수아 이 사람들만 하나님이 심어주신 믿음을 계속 붙잡은 것입니다.
근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이 믿음은 뭔가 믿음은 믿는 대로 되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세요.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믿는 대로 되게 하십니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다수의 믿음 민수기 13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갈렙과 여호수아 학교 같은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이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뭐 하느라 강하니라 맞아요. 가나안한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강한 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엄청 강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살이했는데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사실은 훨씬 강합니다. 거기는 이미 딱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고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뜨내기 아니에요.
지금 맞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내피림 후손 아낙 자손을 내 거인을 보았더니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이것도 사실이에요. 이게 뭐 과장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닙니다.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도 이 사람들의 이 말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자기도 똑같이 봤으니까. 그래서 열정탐군에 의해서 가나안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는 아주 확고한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생겨났어요.
사탄이 준 믿음을 받아들인 것이죠. 그래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과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왜요? 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까? 믿음 때문이에요.
믿음 어떤 믿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에요. 이거 믿음이에요. 아주 강력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의 근거는 뭘까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의 근거가 무엇일까요?
우리 앞에서 본 것처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여러분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그 확신 그 믿음의 근거는 자기에요.
자기예요.
아무리 봐도 우리는 못 들어가 못 들어가 그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들어가요? 자기들이 못 들어가는 게 맞아요.
이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은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아무도 반박할 수 없어요.
무엇과 같은가 하면 여러분 하늘나라 들어갈 자신 있습니까?
예 예. 무슨 정신으로 나를 보면 제가 마포교회 담임할 때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 노래 잘하고 찬양 정말 잘하고 열심히 하는 분 이 집사님이 저한테 수도 없이 한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나는 절대 하늘나라 못 갈 것 같아요. 아이고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절대 못 간대 절대 그래 왜 그러십니까? 뭐 이래도 못 가는 이유가 뭐 셀 수도 없이 많아요.
저는 그분이 참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분이 그래서 언젠가 한번 그랬어요.
그래요. 맞아요. 집사님 그거 뭐 집사님이 하늘나라 못 갈 이유는 그거보다도 더 많겠죠.
나를 보면 내가 근거가 되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미친 생각이죠.
지금 지금 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우리 전력으로 우리 능력으로 그 견고한 헤브론의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리고 무슨 여리고를 정복하고 이건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 판단이 맞아요. 근데 그 믿음은 누가 넣어준 거예요?
사탄이 넣어준 거예요.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 봅시다.
그러면 갈렙과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하죠.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그다음에 이제 뭐라고 그래요? 어쩌면 이 길이라 그게 아니고 능력이 길이라
어떻게 믿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절대로 못 들어간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뭐예요?
넉넉히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이 소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 내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러분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그 믿음의 근거는 뭐예요?
여호와에요
내가 아니에요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 전력, 우리 경험, 우리 군세, 우리 전략, 작전 아니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실 거야.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셔. 이 차이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믿음의 근거는 자기예요.
내가 해보니까 안 돼. 내가 지금까지 많이 해봤는데 불가능해 그거야.
그런데 똑같은 사람인데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근거는 뭐예요?
나는 안 되지만 나는 불가능하지만 누구는 가능해
그래서 믿음대로 됐습니다. 믿음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믿은 사람들은 한 명도 못 들어갔습니다.
한 명도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20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러분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누굽니까? 믿음 믿은 사람 가나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다 들어갔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몇 명이에요? 두 명이야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갔어.
두 명 안 믿은 들어갈 수 없다고 믿은 사람들은 전부 못 들어갔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여러분 믿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믿음이 이런 거예요. 하나님은 믿는 대로 되게 하십니다.
믿는 대로 되게 하십시오. 오늘날 어떻게 믿어도 괜찮아 천마디 말씀이에요.
여러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예 안 믿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도 하나님 믿었어요.
단지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으로 이끌어가신다는 걸 안 믿었을 뿐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애굽의 열재앙 다 경험하고 홍해를 건넜고 만나도 먹고 생수도 마신 사람들인데 하나님을 부정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것 말고 다른 길을 또 주시겠지 뭐 그랬을지 몰라요.
근데 하나님이 주신 믿음대로 믿지 않으면 자기 경험, 자기 판단 이런 것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되면 내가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잘 믿어야 되겠습니까?
잘 믿어야 됩니다. 열심히 믿는 것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믿어야 됩니다.
바르게 바르게 여기까지가 이제 서론입니다.
제가 서론에 서론했고 이제 서론 이제 본론입니다.
본론을 이제 시작하니까 오늘 늦게 끝나겠죠 저도 모르겠어요.
언제 끝날지 이제 뭐 마지막이기 때문에 뭐 괜찮습니다.
마음 편하게 자 이제 본론입니다. 여러분 현대 기독교 안에 두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다수의 믿음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소수의 믿음이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다수의 사람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 없다고 믿은 절대 다수가 있다고 믿은 극소수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현대 기독교 안에도 똑같은 현상이 있어요.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절대 다수의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극소수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결코 율법에 순종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삶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걸 제가 좀 더 자세히 이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다수의 믿음을 먼저 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여기 보이시는 오른쪽에 있는 이 헌법은 대한민국 헌법이 아니고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펴낸 장로교 헌법입니다.
이 안에 장로교가 어떻게 무엇을 믿는지 장로교가 어떤 신앙을 추구하는지 또 그들의 정치 교회 정치 제도는 어떤지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어 아주 제일 중요한 것이죠.
이 책 안에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이 그대로 들어 있는데 이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은 사실 장로교뿐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개신교회가 공통적으로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교리예요.
이것이 이제 문답으로 되어 있는데 문답 149번 질문이 이렇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이 이렇습니다.
아무도 자기 스스로가 이 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매일 계명을 범합니다.
만약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질문에 대한 이 답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틀린 사람 손들어보세요.
그러면 아주 곤란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이 답이 맞다고 손드실 분들이 여기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맞지 않다는 말이에요. 제가 연수원에서 이 강의를 하면서 목회자들에게도 하고 신자들에게도 하는데 연수원에서 물어봅니다.
목사님들도 맞다고 그럽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못 지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많은 교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재림 교인들에게도 있어요.
하나님을 안 믿는 게 아니에요. 다 믿어요. 그런데 이 여기 그대로 아무도 자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 건 맞는데 그다음이 문제예요.
어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셔도 계명을 완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믿음이에요.
그리고 이 믿음이 재림 신앙 안으로도 아주 폭넓게 들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니까 그것이 그들의 신앙의 고백이고 교리다 보니까 거기에 근거해서 여기 어떤 신학자는 이런 글을 썼어요.
율법이냐 은혜냐라는 책을 쓴 이 mr디안이라는 아주 대단히 인정받는 신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인간에게 주실 때 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셨으며 또 뭐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으셨다. 이게 오늘날 개신교의 믿음이 철석 같은 믿음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 뭐 어떤 은혜가 임해도 안 된다.
성령 충만으로도 안 되고 늦은 성령을 아예 믿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오늘날 이 기독교 안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어요.
마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이 절대적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가 이 문제를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재림 교인들 중에도
이런 믿음에 동의하고 이런 신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점점 많아져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탄에게서 온 거짓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에 눈을 팔면 하나님이 주시는 바른 믿음에게서 필연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소수의 믿음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좀 보겠습니다.
첫째로 성경의 성경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여러분 성경에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어떤 말씀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그러한 교리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거야.
어떤 은혜가 임해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러분 재림 신앙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 때문에 여자의 남은 무리가 남은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웨스트민스터 교리 무당을 믿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재림교회가 이 땅에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식일 지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가 하늘 성서에서 이루어지는 이 마지막 속죄 사업의 기별을 깨닫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재림 신앙의 현저한 다른 믿음과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이에요. 여기 증언의 몇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율법에 순종하심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율법의 성격을 증거하시고 아담의 모든 자손이 당신의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여러분 잘 보셔야 됩니다. 아담의 모든 자손이 우리 아담의 자손입니까?
아담의 모든 자손이
당신의 무엇을 통하여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의미예요. 물론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건 믿어야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돼요.
우리의 믿음은 어디까지 가야 되는가? 바로 여기 예수께서 온전히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에 도달하는 것이 재림 신앙입니다.
이게 제가 성경과 증언의 근거를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보십시오.
이제 우리 재림교회의 기본 교리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재림교회는 어떤 신학,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율법에 대해서 뭐 간단히 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위대한 원칙들은 십계명을 통해 구체화되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예시되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인간의 행위와 관계들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의 표현이며, 각 시대에 모든 인류가 지킬 무엇이 있다 의무가 있다.
아까 제가 보여드린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하고는 완전히 다른 입장입니다.
그렇죠 그거 잘 기억하셔야 돼요.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은 뭐예요?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인 반면에 재림 신앙의 믿음은 각 시대에 모든 인류가 지킬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율법은 신령하다. 그러므로 신령한 자들과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들만이 율법을 순종할 수
여러분 아시겠어요? 이 세상에 여기 주변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 교회와 우리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입장이에요.
태도예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이냐 지킬 수 없는 믿음이냐 계속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품성과 사랑의 표현으로써 십계명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뜻과 목적을 게시한다.
그것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생리의 법칙인 율법에 의해 순종은 우리의 구원의 중요하다.
오늘날 거의 모든 기독교가 율법이 우리의 구원과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구원과는 관계가 없고 상급하고만 관계가 있다는 이상한 신학을 가지고 믿습니다.
여러분 재림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의 법칙인 율법의 순종은 우리의 구원의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내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이 같은 순종은 오직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제공하시는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기독교 안에 있는 두 믿음, 이 두 충돌하는 두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절대 다수의 믿음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스스로가 이 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는 믿음.
그러나 여러분 재림 신앙은 무엇입니까?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이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지금 어떤 자세, 어떤 태도, 어떤 입장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이것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부자와 선지자 73쪽에 이런 증언이 기록돼 있어요.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시작
아담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쟁투의 쟁점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문제에 관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의 율법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고 물론 이제 알아야 순종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율법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도 아니고 핵심은 대쟁투의 쟁점은 한 영혼의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가 대쟁투의 쟁점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내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여러분 누가 순종할까요?
믿음이 있어야 순종합니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삶을 살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거예요.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그 믿음으로 자기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거예요.
반대로 하나님이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은 사탄이 준 믿음이기 때문에 결국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죠.
대쟁투의 쟁점에서 비켜나게 하는 것이죠.
오늘날 기독교 안에 하나님의 율법은 점점점점 더 사라지고 약해지고 이렇게 되면서 그 대신 자꾸만 자꾸만 커지는 게 뭔가 하면 은혜 은혜 은혜에 대해서는 제가 내일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고요.
오늘 기억하실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질 것인가,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인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늘날 재림 신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이게 참 문제예요. 제가 어느 날 연수원에서 연수원을 방문한 목사님 부부와 그들이 함께 동행해 온 집사님 부부와 앉아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목사님 이제 최근에 은퇴하신 목사님이 아주 좋은 분이에요.
품성도 좋으시고 아주 근데 그 목사님이 그 집사님들에게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절대 순종 못합니다.
절대 못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모님이 좀 있다가 그럼요 안 됩니다.
못합니다. 우리 재림교회 목사님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은 우리를 참 편안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뭐 우리가 하나님을 떠납니까 무슨 배반을 합니까?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아유 뭐 그래 원래 이게 안 되는 거구나 그럼 뭐 그냥 적당히 하고 뭐 우리의 마음에 상당히 자유와 평안함을 주지 문제는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믿음을 가진 한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면 이렇게 됩니다.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지킬 수 없는 이유와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끊임없이 끊임없이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래서 맞아 그러니까 율법 안 지켜도 되고 사랑하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사랑만 하면 안 지켜도 돼. 여러분 그게 왜 그런 줄 아세요?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아내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믿어요.
참 희한한 일입니다. 이게 이게 사탄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안에 심어주는 거짓말이에요.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건 문제가 안 되죠.
하나님도 믿고 나름대로 애쓰고 헌신하는데 그런 믿음을 가지니까 율법 지키지 않아도 되고 지킬 수 없는 이유 사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율법을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회개할 게 뭐가 있어요?
회개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없고 뭐만 있느냐 구원의 확신만 있는 거예요.
구원의 확신만 있습니다. 율법을 부담스럽게 여기면서 율법의 가치와 필요성을 최대한 낮추거나 부정합니다.
율법이 있어야지 그러나 그게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뭐 이렇게 하거나 율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거 있습니다.
뭐 이렇게 말하 율법보다 은혜죠. 그게 참
참 은혜로운 말 같지만 그런 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법이에요.
율법에서 은혜를 분리시켜서 율법은 부정적인 것, 은혜는 좋은 것, 율법은 딱딱한 것, 은혜는 포근한 것 이렇게 만들어버렸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사람들이 점점점점 거리감을 갖게 하는 것이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합니다.
율법주의자죠. 안타깝게도 말이죠. 요즘 재림교회 안에도 그런 현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다른 사람보다 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면 저 사람이 참 하나님 율법을 사랑하고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그거 좀 별나게 믿네.
뭘 그렇게 까다롭게 그래 그냥 여러분 그게 지금 재림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네 지금 우리 재림교회들이 안식일에 옛날처럼 안식일 안 지킵니다.
아주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요.
그러면서 안식일을 잘 지키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 계명에 더 순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보면 속으로도 혀를 차고 겉으로도 혀를 차고 왜 그런가 이미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게 나도 옛날에 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
니도 좀 있으면 알게 될 거다. 이거 무서운 일입니다.
지금
결국 율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율법에서 돌아서요.
가나에 들어갈 수 없다고 믿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들이 율법에서 돌아선다고 해서 성경에서 돌아서느냐 하나님께서 돌아서느냐 그러지 않아요.
그러나 결국 율법에서 돌아선 사람은 마침내 율법의 시여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못해도 나는 어떻게 하나님 계명에 순종할 것인가 지킬 것인가 애쓰고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회개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존귀하게 여기며 가치를 높이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오늘은 내가 온전하지 못하지만 오늘도 내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율법을 향하여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신앙입니다. 오늘 내가 완전하지 못해도 어제도 그제도 지금까지 완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손길을 의지하고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죠.
적어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갈렉과 여호수아가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지혜로, 자기의 힘으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가능하게 하실 것을 믿었던 것처럼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안 되지만 지금까지도 안 됐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믿음과 관련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로 결심합시다.
내가 저는 그런 교인들을 많이 봤어요. 나 그렇게 금식하고 뭐 하고 뭐 하고 뭐 하고 했는데 안 되더라
그런 거 보니까 이거 안 되는 거 맞다. 저랑 같이 신학 공부하고 저 2년 후배 안식일교에서 한 20년 넘게 목회했죠.
20년 목회하다가 결국 장로교 가서 총신대 공부하고 장로교 목사 된 친구 있어요.
그 친구가 재림 신앙을 떠나기 전에 여러 번 만났습니다.
그 친구가 저한테 끊임없이 한 말이 그거예요. 목사님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거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가능한 사람 봤습니까? 봤지! 누굽니까?
예수님이지! 그랬더니 예수님 말고 아니 이 사람아 예수님 말고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다 알아찾나 내가 모르지 그런 사람은 그렇잖아요.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이렇게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요.
온 세상 사람이 다 자기 같은 줄 알아요. 내가 못 지키니까 너도 못 지키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압니까?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누가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수용하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누가 어떻게 알아요?
확인할 수도 없고 그래 난 모른다 그랬더니 저보고 물어.
그럼 목사님은 다 순종합니까? 나 못하지 그거 봐요.
목사님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이 사람아 나 오늘 못해도 그래도 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내가 살아가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하기 싫어요. 안 되는 겁니다. 보세요.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못 믿겠습니다.
그러고 나갔어. 장로 목사 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면 재림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수가 없죠.
불가능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게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 딜레마 속에서 오늘 머리 아픈 재림교회들이 많아요.
그래서 듣기 싫어해요. 하나님의 계명 율법 이런 거 이야기하면 은혜를 설교해 주세요.
은혜를 이렇게 은혜 율법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율법이 또 오늘 제가 내일 시간에 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요약하고 마치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번 시작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며 우리의 믿음대로 되게 하신다.
2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3 재림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며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신다.
아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식일 환영하는 이 귀한 시간에 저희들 또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율법에 순종하는 재림 신앙으로 인도해 주시고 그 믿음으로 하늘 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것이 맞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 의심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7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향하여 살아가는 우리 삼육부산병원 교회에 속한 모든 믿음의 권속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