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말씀 잠깐 전하고 제가 기도하고 예배를 마치려고 합니다. 순서를 바꾸다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합니다.원래 공부하는 사람들은 주제 전환이 되게 빨라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제 본문의 3절에 보면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주제는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는 안식일을 지키는 거예요.
근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부모를 경유하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대등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부모를 경외하다고 할 때 이 경외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단어예요. 이 야레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경외하다라고 할 때 쓰여지는 것과 동일한 단어인 거예요. 놀랍죠. 부모를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같은 단어를 썼다는 거예요. 아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리고 대등 구절로 본문을 이렇게 이어놨다는 것은 의 부모 공경과 하나님 공경이 같은 등급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와 오래 함께 살았기 때문에 부모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성경은 부모의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과 대등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하나님과 같은 건 아니에요. 절대로 하나님이 먼저고 그다음이 부모이죠. 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돼요. 그렇지만 성경은 대등하게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 가치를 잘 몰라서 부모를 잘 섬기고 잘 못 섬기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에 대한 가치를 모르면 하나님을 그만큼 예배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이 예배를 잘 아느냐 하나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어떤 사람이 효도를 잘하느냐 부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효도를 잘합니다.
오늘 본문은 정확하게 우리에게 부모의 가치를 알려줘요. 부모는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라는 거죠.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대등한 존재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듯 요즘 말로 하면 주일을 지키듯 부모도 그렇게 섬기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들에게도 주일은 전부와도 같잖아요. 목사에게도 주일은 전부와도 같아요. 형제가 노래할 때 코로나에 대한 노래가 있었던 것처럼 코로나 때 저도 성도가 몇 명 없는 이 자리에서 주일 예배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방송 송출을 하고 우리 안에 한 40명 정도는 예배할 수 있으니까 그 인원이 앉아서 예배할 수 있던 것은 예배가 주일이 그만큼 우리에겐 절대적이기 때문인 거예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모도 같은 거라는 거예요. 부모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라는 거죠. 오늘 본문은 이것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대등 구절로 이어놓고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부모의 가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부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모님을 하나님처럼 섬기지는 않거든요. 부모를 그냥 부모처럼 섬겨요. 그러나 성경은 부모의 가치가 하나님과 대등할 정도로 높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얼마 전에 저의 모친이 소천하셨습니다. 제 마음에는 슬픔이 자리 잡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성도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특별히 사회의 문제나 그리고 성도들의 가난과 아픔들, 사회적인 고난에 대해서 이제 눈물이 되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저는 생각보다 가족에 대해서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번 장례식 때도 그랬어요. 그러니까 상주인 제가 너무 안 오니까 저희 이모가 대신해서 우셨어요. 상주는 그냥 물뚝물뚱해 있고 물뚱은 아니죠. 제가 슬픔이 없겠어요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는데 저희 이모가 너무 이렇게 상주가 안 오니까 본인이 이제 막 우시고 이렇게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 마음에 이렇게 슬픔이 자리 잡더라고요. 그래서 무얼 해도 옛날같이 기쁘진 않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예전처럼 그리고 제가 친구들이나 요즘 하는 말이 있어요. 할 수만 있으면 부모가 살아계실 때가 인생의 최고의 정성기니까 그때를 즐겨라.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픔이 자리 잡아서 못 즐긴다. 아마 성도들이 그의 장례 이후에 저한테 많은 권면을 미국과 위로를 해주셨어요. 그때 이렇게 성도들의 글들과 이야기를 모아보면 여전히 부모에 대한 슬픔이 아직 마음에 다 남아 있더라고요.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참 된 성도들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연세가 많이 이제 본인이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됐는데도 여전히 부모가 그립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제 마음에 슬픔이 자리 잡았잖아요. 제가 노력한 게 하나 있어요. 아무리 어머니의 소촌이 슬퍼도 하나님과 순서는 바꾸지 말자 이게 제 마음의 각오였어요. 내가 아무리 슬픔이 크게 내 마음에 자리 잡아도 내가 하나님과 순서는 바꾸지 말자.
제가 새벽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순서가 바뀌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부모들을 부모에 대한 효를 하나님과 대등하게 설명하고 있고 그만큼 가치 있는 분이라고 소개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과 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순서는 바꿔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가끔 우리가 부모와 하나님 사이에 순서를 바꾸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보다 부모가 우선인 거죠. 혹시 여러분 지금까지 아니면 이 순서가 바뀐 분이 있다면 오늘 부로 이걸 고치셔야 돼요. 하나님 부모의 가치를 이렇게 우리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주신 것은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우선시해도 된다는 그 의미가 아니라 부모의 가치가 그만큼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가치를 이렇게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를 공경은 하되 하나님과 절대로 순서를 바꾼 일이 없게 하려고 본문의 말씀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의 가치는 대단합니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나의 생명을 이 땅에 두신 분이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과 순서가 바뀌는 순간 부모의 가치는 헛된 것이래요.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건 부모의 가치를 헛되게 하는 거예요. 정말 부모를 가치 있게 하는 자녀가 어떤 자녀냐 하나님만큼 부모를 존경하고, 그리고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순서가 바뀌지 않게 부모의 위치를 두고 섬기는 사람들이 정말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웃의 가치는 대단합니다. 10계명 중 6계명이 이웃에 대한 것이에요. 그렇지만 하나님과 순서가 바꾸는 순간 이웃의 가치는 순식간에 헛된 것이 돼요. 물질의 가치도 마찬가지예요. 물질이 대단한 가치를 지녔어요.
근데 하나님과 순서가 바뀌는 순간 그 성도에게는 물질은 헛것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로 순서를 바꾸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전도는 어떤 걸까요? 우리가 오늘 이렇게 성도들을 불신 가족들을 초빙하고 오늘 다음 주 그다음 주 3주 동안 어떤 이렇게 모시려고 하잖아요. 교회가 왜 이렇게 할까요? 잘못된 순서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른 순서를 가르쳐주는 것이 전도의 핵심인 거예요. 물질을 최우선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 전도이고요. 세상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교회가 양육을 합니다. 양육도 순서를 바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순서를 고쳐주는 것이 양육이에요. 순서를 바꿔 살면 일순간은 행복하지만 머지않아 인생에 혼란이 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순서를 바꿔 살아가요. 하나님이 1순위로 살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게 살아가요. 그러면 일순간은 행복이 와요. 그 돈이 나에게 행복이 전해지고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줘요. 그러나 머지않아 혼란이 옵니다. 진정한 효도란 하나님이 정해주신 순서대로 사는 것이 참 효도인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는 효이고, 만약에 부모님도 이런 자녀를 가장 기뻐할 거예요. 믿음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 성도라면 부모님이라면 자녀가 순서 바꾸지 않고 사는 것을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가치는 대하다. 하지만 순서는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모의 가치가 대단한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같은 단어를 쓰시고 대등 구절로 이어서 부모의 가치를 전해줬어요.
우리가 이 부모를 잘 섬겨야 되지만 순서는 바꾸지 말아야 됩니다.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만약에 우리 육신의 부모들도 이것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가 저부터도 제가 잘못된 순서가 바뀐 삶을 살고 있다면 열심히 고칠 테니까 여러분도 바뀐 잘못된 순서의 삶을 고치셔서 순서가 바로 바르게 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