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처럼 장수하는 비결
◆ 학처럼 장수하는 비결
98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약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노파에게
장수하는 비결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첫 번째는 음식에 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배가 부르도록 먹지 않을 것,
그리고 잘 씹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을 많이 하여 몸을 자주 쓰면
자연히 건강해져서 장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그는 이어서 얘기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궁전의 요리사를 지낸 분으로
어떤 새든지 요리해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새들은 뱃속을 살펴보면
이것저것이 가득 차 있었지만
오직 학만은 기특하게도 가득 차 있는 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은 천 년을 산다고 할 정도로 장수하는 새인데,
그것은 과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 머리가 둘인 새
옛날 설산에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머리의 새 이름은
각각 ‘가루다’와 ‘우바가’라 하였는데,
둘은 언제나 교대로 잠을 자거나 깨어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가루다가 깨어 있을 때
바람에 향기로운 꽃이 날라 왔습니다.
이를 본 가루다는
‘혼자서 이 꽃을 다 먹는다 할지라도 뱃속에 들어가면
둘이 함께 기운을 얻고 목마름을 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우바가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먹어버렸다.
이윽고 잠이 깬 우바가는 이 사실을 알고
못내 섭섭하고 분한 마음을 누를 길 없었습니다.
얼마 후 문득 하나의 독을 품은 꽃을 보게 되었을 때
전날의 일을 떠올리며 가루다는 생각했습니다.
‘전에 너는 맛있는 꽃을 혼자 먹었지.
이 독한 꽃잎을 혼자 먹을 테니 어디 두고 봐라.’
그리하여 가루다가 잠 든 사이에
우바가는 그 독을 품은 꽃잎을 먹고 말았습니다.
괴로움에 잠을 깬 가루다는 이 사실을 알고 탄식했습니다.
“너는 어찌 이리도 어리석으냐.
독한 꽃잎을 먹는 것은
우리 둘 다를 죽게 하는 일인 줄을 모르다니!”
그리고 우바가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머리가 둘인 새는 고통 속에 신음하며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 나뭇잎과 사자
깊은 산 속에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더니
바람결에 나뭇잎이 떨어져 사자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사자는 몹시 노해서 말했습니다.
“어디 두고 봐,
반드시 복수하겠다.”
그런 지 사흘째 되던 날,
한 목수가 수레바퀴를 만들 재목을 얻으려고 산으로 왔습니다.
사자는 그 앞에 나아가
“이 큰 나무를 베어 가시오.”하고 귀뜸 해 주었습니다.
목수는 그 나무를 베었습니다.
그 때 베어진 나무가 목수에게 또한 말했습니다.
“사자의 가죽을 바퀴에 입히면 아주 질깁니다.”
목수는 마침내
곁에서 좋아하고 있던 사자까지 잡아버렸다. 《아함경阿含經》
◆ 두 가지 눈물
“나가세나 존자여,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진리를 사랑하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이 두 사람 중에서
어는 쪽이 약藥이 되고
어느 쪽이 약藥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왕이시여,
한쪽 눈물에는 탐심과 성냄과 미망迷妄에 의해
더러워진 뜨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물에는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더러움 없는 냉정함이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실로 냉정한 것은 약이 되거니와
뜨거운 것은 약이 되지 못합니다.”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 세간世間은?
세간世間은 ‘세상’이란 말입니다.
‘세世’라는 한자는 30년을 의미합니다.
한 세대,
즉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으면
그 다음 세대로 넘어 가게 됩니다.
자기의 부모와도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3대가 90년 거의 1세기라고 봅니다.
우리의 대에
잘되면 조상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잘되지 못하면 나 대신에 자손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모카loka라고
한 것을 중국에서 ‘세간世間’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로카는 개방된 공간을 뜻합니다.
비슷한 말에 바수vasu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세世’나 ‘천天’으로도 번역되며
천공天空 즉 하늘을 뜻합니다.
천친天親,世親의 천天입니다.
세世에는 격별隔別, 천류遷流등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격별’은 널리 세간이라고 불리는 것에도
인간人間, 중생衆生이니 국토國土, 세계世界니 하는
구별이 있는 것이고
‘천류’는 세간이 개방적이니 만큼
상주常住가 아닌 즉 무상無常인 것 입니다.
불교는 출세간出世間을 목적으로 합니다.
무상한 세간에서 벗어나 상주하는 진실계에 다시 태어납니다.
아니 그것을 진실한 세계라고 고정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곧 우리가 부자유스럽게 되므로
세계도 세간의 형상이고 무세계無世界가 이상적理想的입니다.
그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하니까
열반은 허무虛無가 아닙니다.
‘생사生死가 곧 열반’이란 말이 있듯이
생사의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오는 의미가 있어야만 참된 불교진리입니다.
출세간을 내용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제일의(第一義, 파라마르타 승의勝義)라 합니다.
이에 대해 세간은 ‘속俗이라 합니다.
세속과 제일의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둘을 언제나 둘이라고만 고집하는 것을 ‘분별’이라고 합니다.
분별은 세간世間의 지식입니다.
앞에 말한 격별의 경우에 세간의 생활에서는 그것이 불가결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세간世間의 생활은 삐걱거리는 것입니다.
분별이라고 하는 세간世間속에 있으면서도
무분별의 불지佛智로 살게 되면
이상하게 세간世間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괴로움 자체는 없어지지 않지만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여기는 일만은 없어지게 되고
오히려 괴로움의 현실과 마주설 수 있는 용기가 그때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6월 28일 오전 07:37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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