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583 술회述懷 58 학랑소謔浪笑 떠들고 웃으며
아회야아회야我會也我會也 내가 안다 내가 안다고
박수가가소일장拍手呵呵笑一場 손뼉 치며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었노라.
고금현달구망양古今賢達俱亡羊 고금의 현달賢達한 이 모두가 양羊을 잃었나니
불여결모청계방不如結茅淸溪傍 맑은 시냇가에 띳집 짓고 사는 이만 못하다네.
외도측족령인망畏途側足令人忙 길 험하여 발 조심하노라 사람 바쁘게 하는 것
불여안좌폭조양不如安坐曝朝陽 편히 앉아서 아침볕에 등 쪼임만 같지 못하다네.
백년숙황량百年熟黃梁 백년 되어야 누런 조밥 익을 것이고
담소방구상談笑防龜桑 담소함에도 뽕과 거북[龜桑]을 조심한다.
백료천당불여좌망百了千當不如坐忘 백 가지 끝나면 천 가지 닥치니 좌망坐忘함만 같지 못하리.
벽산아아벽간앙앙碧山峩峩碧澗殃殃 푸른 산 높고 높고 푸른 시내 콸콸 흐르는데
자가자무우락량망自歌自舞憂樂兩忘 혼자 노래하고 혼자 춤추며 근심과 즐거움 둘 다 잊고
혹언혹와혹행혹좌或偃或臥或行或坐 혹은 쓰러지고 혹은 눕고 혹은 가고 혹은 앉으며
혹습타초혹적첨라或拾墮樵或摘甜蓏 혹은 줍고 혹은 베며 혹은 단 참외도 따는데
일령포삼반미타비一領布衫半眉躲臂 한 벌 베적삼 반쯤은 벗겨진 팔뚝에 드러나고
골구추근●骨癯麁筋● 뼈는 약하고 힘줄은 추하고도 옴딱지가 붙어 있다.
●=(병질엄疒)+(돼지시豕)+(虫虫)
야관조조영하타野冠粗粗纓下嚲 촌스러운 갓에 굵은 갓끈 아래로 늘어졌는데
안저불견인여아眼底不見人與我 눈 아래에는 남이고 나이고 보이지 아니한다.
보월장가요뇨탄步月長歌腰裊灘 달 따라 거닐면서 긴 노래 부를 제 허리가 흔들흔들
소입연라동운쇄笑入煙蘿洞雲鎖 웃으며 연기 끼고 덩굴 얽힌 골 구름 막힌 데로 들어간다
웃고 떠들며
아회야아회야我會也我會也 나는 안다, 나는 안다
박수가가소일장拍手呵呵笑一場 박수치며 깔깔대고 한바탕 웃어본다
고금현달구망양古今賢達俱亡羊 고금의 현달한 사람들 모두가 본질을 잃으니
불여결모청계방不如結茅淸溪傍 맑은 개울가에 초가집 짓고 사는 이만 못하도다
외도측족령인망畏途側足令人忙 길 비탈져 두려워 사람을 바쁘게 함은
불여안좌폭조양不如安坐曝朝陽 편히 앉아서 아침 햇볕 쪼이는 것만 못하구나
백년숙황량百年熟黃梁 백년 되어야 누런 조밥 익힐 것이고
담소방구상談笑防龜桑 담소를 나눌 때는 거북과 뽕나무처럼 말함을 막하야 하리라
백료천당百了千當 백 가지 일 마치면 천 가지 일 생기리니
불여좌망不如坐忘 가만히 앉아서 잊어버림만 못하리라
벽산아아碧山峨峨 푸른 산 높고
벽간앙앙碧澗泱泱 푸른 개울물 콸콸 흐른다
자가자무自歌自舞 스스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우락양망憂樂兩忘 근심과 즐거움 모두 잊어진다
혹언혹와或偃或臥 혹 쓰러지고 혹 눕고
혹행혹좌或行或坐 혹 걷다가 혹은 앉아있고
혹습타초或拾墮樵 혹 줍고 혹은 베며
혹적첨라或摘甜蓏 혹은 열매를 따는데
일령포삼一領布衫 한 벌 베적삼은
반미라비半眉裸臂 반쯤 벗겨진 팔뚝에 그러난다
골구추근라야骨癯麤筋瘰野 뼈는 약하고 힘줄은 추하고 옴딱지 붙어있다
관조조영하타冠粗粗纓下嚲 갓은 촌스럽고 갓끈은 늘어져있고
안저불견인여아眼底不見人與我 눈 아래에는 남과 내가 보이지 않는다
보월장가요뇨탄步月長歌腰裊灘 달 따라 거닐며 길게 노래 부르니 허리가 흔들리고
소입연라동운쇄笑入煙蘿洞雲鎖 안개 낀 덩굴 얽힌 골짜기, 구름 막힌 곳으로 들어간다
►망양亡羊 양을 잃어버림.
한 가지 일에 전념專念 않고 이것저것 손대면 失敗하기 쉽다는 뜻
백이伯夷는 현인이지만 西山에서 굶어 죽었고
도척盜昕은 惡人이어서 도둑질하다가 동릉東陵에서 맞아 죽었는데
어진 백이나 악한 도척이 자기의 타고난 天命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은 같다.
즉 장藏이 글 읽다가 羊을 잃고 곡穀이 노름하다가 양을 잃은 것과 같다 하여
李白은 “공구도구망양孔丘盜俱亡羊”이라고 노래했는데
여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賢達한 이 모두가 양을 잃었다 하였다.
►도측途側 비탈진 앞날. 힘든 앞날.
►영인令人 착하고 말 잘 듣는 사람. 善人
►황량黃梁 메조 밥.
황량일취지몽黃粱一炊之夢의 준말로 “메조 밥을 짓는 짧은 동안”을 말함.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고도 불리는 故事로
조趙나라 노생盧生이란 청년이 도읍지인 한단邯鄲에서
榮華를 마음껏 누리게 해준다는 청자靑瓷 베개를 仙人에게 빌려서 베고 낮잠을 잤다.
꿈속에서 좋은 아내도 얻고 大臣이 돼 富貴榮華를 50여 년간 누렸는데
잠을 깨보니 메조 밥은 아직 뜸도 들지 않았다.
富貴功名이 덧없음을 말함이다.
►구상龜桑 뽕과 거북. 이야기 나눌 때 입조심 하라는 고사故事.
莊子의 좌우명座右銘에
“좌중담소座中談笑 앉아서 이야기 할 때는
신상구愼桑龜 뽕나무와 거북이처럼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한 효자가 아버지 병환의 약으로 거북이를 잡아 고아드리려고 지게에 지고 가는데
거북이는 웃으며
“아무리 당신이 나를 잡아가도 당신이 먹지는 못할 것이오.” 하였다.
그런데 길옆에 섰던 뽕나무가 그 말을 듣고서 “내가 있는데.” 하였다.
그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집으로 가서 거북을 솥에 넣고서 아무리 불을 때어도
거북이 죽지 아니하므로 그제야 뽕나무의 하던 말을 생각하고
그 뽕나무를 베어다가 때었더니 거북이 삶아졌다 한다.
그래서 거북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뽕나무의 그런 말이 없었을 것이고
뽕나무도 듣고만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베어 가지 않았을 터인데
모두 입을 놀려서 그런 禍를 당하였다 하여 말조심하라는 경계로
“담소신상談笑愼桑”이라는 경계하는 말이 있다.
►좌망坐忘
고요히 앉아서 잡념을 버리고 현실 세계를 잊어 절대 무차별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
►아아峩峩 산이나 큰 바위가 치솟음
►첨라甜蓏 달콤한 열매 ‘열매 라(나)蓏’
►일령一領 옷 한 벌. 한 장
►반미半眉 중(中) 늙은이. 늙어가는 사람.
►비臂 팔(어깨와 손목 사이)
►추麤 거칠다. 추하다.
►라야瘰野 옴과 종기가 여기저기 돋음
►영하타纓下嚲 갓끈이 아래로 늘어짐
►‘쑥 나(라)蘿’ 쑥. 여라女蘿, 선태류 이끼 동
학랑소謔浪笑 웃자고 지껄여보네
내가 해봐서 스스로 깨달은 바니
박장대소로 한바탕 웃어젖힐 만하오.
고금의 똑똑한 달인들 모두가 본질을 망각하고 있어
맑은 개울가에 띠 풀을 엮어 사는 것만 못하다네.
앞날이 잘못될까 두려워 말 잘 듣고 바쁘게 사는 건
편안히 앉아 아침햇볕 쬐는 것만 못하다오.
백년을 익히는 메조 밥처럼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이야기할 땐 거북이과 뽕나무 같은 경우는 막아야 하네.
백 가지 일을 하면 천 가지가 기다리고 있을 터
앉아서 만사 잊고 쉬느니만 못하네.
푸른 산이 치솟았고
파란 계곡물이 콸콸 흐르네.
스스로 노래하고 제 풀에 춤추니
걱정도 기쁨도 모두 잊고 산다네.
쓰러졌다가 혹은 드러눕고
혹은 걷다가 또 앉고
줍고 혹은 베어내어 나무하며
혹은 달달한 열매를 따네.
무명 적삼 한 벌은
중늙은이의 팔뚝을 절반만 가린다오.
야윈 몸통 거친 살갗엔 옴과 종기가 덕지덕지
너덜거리는 갓은 턱 끈이 늘어져서
눈 밑으로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나와 함께 걷는 달과 유장한 노래를 한다네.
허리를 간드리지게 내둘리고 웃으며 물속에 들어가니
이끼 낀 골짝은 안개가 자욱하고 구름으로 덮였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