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 한국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성경 내용을 바른 해석으로 풀어주는 책이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는 말씀을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기도해야 효력이 있다고 여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예수님만 믿으면 그 믿음으로 정말 다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랑을 가장 큰 은사로 여긴다. 오병이어 기적을 어린 소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인본주의적 해석, 사람의 믿음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해석,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해석 등등 하나님께 집중을 시키는 것이 아닌, 사람에게 더 초점을 맞추게 하는 성경 해석을 지적하고 바른 해석을 해준다.
* 읽으면 읽을 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나의 사고와 세계관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1권도 좋았지만 2권을 보면서 더 은혜를 받았다. 이 세상에서 유행되어 지는 말씀 해석을 받아들였던 교회와 성도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알 수 있어 말씀을 보는 눈이 많이 열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말씀하셨다. 그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었다. 그러면 성도는 이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구나."라고 여겨야 한다. 성경을 이 세상의 도덕책 쯤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교회의 성도는 그러면 안 된다. 만약 성경을 도덕책으로 취급을 하면 그 성도에게 하나님의 권위는 없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 성경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나의 느낌, 감정이 나의 신앙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 하나님을 불쌍히 여기는 일이 왜 일어날까? 하나님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로마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에만 집중을 한다. 결국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믿음의 눈물일까? 불신앙의 눈물일까? 믿음의 눈물이라고 여기는 것이 로마카톨릭이고, 이 잘못된 믿음을 되풀이하는 곳이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일 것이다. 여자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불쌍해서, 예수님이 죽으시니 슬퍼서 등의 이유로 울었을 것이다. 이런 여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의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 위해서 사형 당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 위에서 못박히는 아픔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지는 것이다. 이런 예수님의 고난은 사람이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예수님만의 고유 영역이다. 그런데 고난주간이 되면 한국의 개혁교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예수님의 고난을 나도 당해야 해. 금식하자. 어린이들은 미디어 금식을 하자.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자." 이따위 불경건을 저지른다. 감히 죄인이 하나님을 불쌍히 여겨서야 되겠나? 감히 죄인이 하나님을 위해서 울 수가 있을까? 믿음이 없으니 이런 불경건을 저지르는 것이다.
*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내용이다. 한국 교회에 이런 기독서적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성경을 성경 그대로 가르치는 책,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려주는 책. 이런 책과 가르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