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 다리를 건너서
2호선 뚝섬역 7번에서 무벼대 씨모우 패노우 서류바 위짜추 조단스 까토나 일곱명이 만났습니다.
이날의 기온은 영하까지는 내려가자 않았으나 안개와 미세 먼지가 제법 희뿌였으나 우리들의 걷기에는 그리 지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몸을 사리는 친구 중에 한 두명이 마스크를 수시로 썼다가는 벗곤 합니다. 서울 숲의 구름 다리 위를 지나면서 꽃사슴 녀석들이 한거로이 거닐며 지나는 객들을 올려다 보기도 합니다. 성수대교 북단 방향의 한강변으로 나오니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며 건너편에 있는 응봉산(鷹峰山, 81m)도 손에 잡힙니다. 조선 초기에 임금이 매(鷹)를 놓아 사냥을 하고 바위 봉우리에서 낚시도 하였다고 하여 응봉산이라 부른답니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수하여 내려와서 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살곶이 다리 돌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흥인지문과 광희문을 거쳐서 이곳 살곶이 벌(뚝섬)을 지나야만 광나루로 거쳐 충주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태조 임금 이성계는 아들 방원이 형제들을 살해하고 왕위를 탈취한 것에 대하여 극도의 증오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태상왕으로 함흥에 오랫 동안 칩거해 있던 이성계가 마중 나온 아들 방원에게 화살을 날렸던 살벌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리 눈치를 챈 방원이 차일(遮日) 기둥을 두꺼운 것으로 바꿔서 몸을 피하여 위기를 모면 하였습니다. 이후로 화살을 쏘았다는 뜻으로 전곶교(箭串橋), 살곶이 다리라 불렸습니다. 조선 시대의 경복궁이나 창경궁의 돌다리는 짧고 주로 작은 돌로 아름다움을 위주로 축조를 하였으나, 살곶이 다리는 큰 돌로 웅장함을 나타내는 가장 긴 돌다리입니다. 태종 때에 궁궐을 짓고 정자도 만들며 잦은 토목 공사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곳에 다리를 세우려던 공사를 돌연 중단하여 66년 뒤에 성종에 와서야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온갖 땀과 얼룩진 역사의 그늘을 잠시나마 들여다 봅니다. 고려 말기로 거슬러올라가 보면 이성계는 요동 정벌의 명을 받고 위화도까지는 도착합니다. 하지만 소(小)가 대(大)를 거슬를 수 없다는 사대주의 이념과 장마철이라는 이유등 4대 불가론을 앞세워 위화도 회군을 단행 합니다.고려 왕조의 마지막 충신이었던 최영장군을 살해하여 길 바닥에 버렸을 뿐 아니라 수많은 반대파들의 숙청을 단행합니다. 고려 왕조의우왕을 폐하고 창왕과 공양왕을 손아귀에 넣고 결국에는 자신이 조선의 왕으로 태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역사를 거스르고 쿠데타의 시조이자 원조라고 할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도 이조 500여년에 걸쳐서 펼쳐지는 왕과 왕족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백성들의 한(恨)과 핍박과 굶주림으로 점철된 역사의 산증인이자 현장의 일부가 바로 이곳 살곶이 돌다리이기도 합니다. 600여년이 지난 요즘의 정치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다만 피비린내 나는 육체적인 부딪침이 없이 모든 수단 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 정당을 비방과 흑색 선전으로 매장하려는 작태는 예나 지금이나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국민의 생활 편의와 안녕 복지 건강 교육 경제등 모든 분야에는 입발림으로 끝나기 일쑤이며, 만연한 부정 부패 척결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국회의원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하고 권력욕에만 혈안이 되어 버린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며 지도층의 군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국무총리나 장관등의 후보자들에게 청문회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을 보면 모두가 처벌 받아야될 대상들로만 보일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국정을 담당하고 나라를 이끌 수 있겠으며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며 돌다리를 건너서 보행자 전용 뚝방 길로 올라섭니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토끼굴을 지나 중랑천 공원길로 진입합니다. 12시가 넘어서니 출출한 배도 달랠겸 각자 준비해 가져온 것들로 혈당을 올립니다. 고로께 김밥 영양떡 초코파이 바나나 한라귤 그리고 뜨거운 물에 견과류 차로 한기를 달랩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걸어온 만큼의 거리가 남았습니다. 중랑천 상류로 갈수록 물은 더 맑아 보이며 수면 위로는 수 많은 가창 오리들이 유유히 날개짓으로 물결을 가릅니다. 월릉교 밑을 통과하여 공릉역 방향으로 중랑천을 벗어 납니다. 중랑천변은 곳곳을 공원화 하여 남녀 노소 모두가 운동과 체조를 할수 있는 운동장이 있으며 어린이들 간이 물 놀이터도 있습니다. 이 곳 뿐만이 아니라 가는곳 마다 산과 강에는 둘레길과 운동 시설들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후 3시가 다 되어서 서울 과기대 근처의 회식 장소로 접어 들었습니다. 배낭과 방한 등산자켓등을 벗어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 앉습니다. 돌판 위에 먹음직스런 등심을 비롯하여 왕새우 날계란 버섯 그리고 갖은 채소로 식탁을 가득 메웁니다. 그리고 각자 앞에는 각 한병씩의 알콜이 놓이면 누구랄것 없이 바쁘게 빈잔을 채우게 됩니다. 목청껏 부르는 거침없는 권주가로 완샷의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거나해진 몸을 추스리며 생맥주로 첨삭을하면 " 이 세상에서 늘걷회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야요, 자 ! 그런 의미에서 다 함께 완샷을 합시다." 친구들의 제창이이어지고 온통 자신의 주장과 이야기로 시간은 아랑곳 없이 목소리 톤이 높아만 갑니다.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전공노가 되어 다음을 기약합니다. 항상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도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1월 18일 무 무 최 정 남
응
오늘날의 살곶이 다리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