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일
1. 성령께서 하시는 일 첫 번째는 증거하는 일이다.
1) 예수님에 대한 증거이다(요 15:26).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성령님은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성령께서 임재하시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신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 신앙이라는 것이 단지 지적 동의에 그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그 모든 사실이 확실해진다(그냥 믿어진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은 이렇게 예수를 믿었다(살전 1:5).
2)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하나님의 존재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믿어진다. 그래서 ‘아바 아버지’하고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 부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목격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너는 내 자식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성령께서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신다(롬 8:16).
2.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성령님은 영적생활 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에 대한 모든 것도 가르쳐 주실 수 있다. 그렇다고 성령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언제나 가르쳐 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각을 주셨고 또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하나님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심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만유를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크신 하나님이시다.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깨달아진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순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은 기억나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안다는 말과 기억한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아는 것은 단지 획득된 지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지식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난다는 것은 어떤 말씀이 구체적으로 진리로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아무리 존재하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나님 수준에만 계신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셨다(요 1:14). 이처럼 하나님 말씀도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읽어도 인쇄된 활자로만 보인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면 성경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와 부딪치게 된다.
3. 성령님께서 심령에 들어오셔서 책망해 주신다(요 16:8).
여기서 책망하신다는 말은 나무라서 깨닫게 한다는 뜻이다. 본래의 의미는 죄가 있다는 것을 확정시킨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책망해 주신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구원 받는 것도 먼저 자신들이 죄인 됨을 깨달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왜 구세주이신 예수를 믿지 않는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보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하시면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회개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도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사라질 때가 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가 알면서 죄를 짓지만 때로는 죄인 줄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나면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려 주신다. 성령께서 지적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 죄를 짓게 되면 성령께서 슬퍼하신다. 마음에 눌림이 있고 평안을 얻지 못하여 회개를 촉구한다.
4.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요 16:13).
여기서 진리는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예수를 져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거듭나서 성령께서 내주하시면 결코 예수를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끊임없이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속시켜 주신다.
5.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롬 8:26).
사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두 분이 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해 주신다. 우리는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되어 기도할 때 사단은 반드시 하나님께 참소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대언해 주신다(요일 2:1).
그런데 성령님의 기도는 이와 다르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해로운 것인지 잘 구별하지 못할 수 있다. 마치 철없는 아이가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자기에게 해로운지 잘 알지 못하고 무조건 떼를 쓰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해로운 것인데도 유익한 것으로 잘못 알고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롬 8:26-27).
6.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기독교는 능력이다. 능력이 없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에 반드시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고전 4:20). 이런 능력이 성령께로부터 온다(행 1:8). 하나님께서 이 능력을 주시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능력을 가지고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그들을 보고 놀라며 염병이 여기까지 미쳤다고 소리쳤다. 사람을 뒤집어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뒤집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7. 성결하게 하신다.
성령 하나님은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성령 하나님은 이전의 삶 속에 있었던 모든 죄악과 단호한 단절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깨끗하게 씻으시는 성화의 사역을 수행하신다(고전 6:11, 참고; 딛 3:5). 특히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영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함께 역사하신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이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니라." 주석가들은 바울이 이 가르침에서 '열매들'(복수) 대신에 ‘열매’(단수) 즉 단수 명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 그 전부가 온전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 안에 존재하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모두를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이 중생한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소유하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는 권면을 받는 이유이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바른 삶을 사는 습관을 형성하고 이러한 습관으로부터 바른 성품이 따라오는 것이다. "행동을 뿌리라, 그리하면 습관을 거두리라. 습관을 뿌리라, 그리하면 성품을 거두리라"는 격언처럼 은혜의 생활에서도 그 말은 진리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방편을 통하여 성품(열매)이 형성되는 과정을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서 변화되는 것으로 묘사하였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으로 가능한 것이다(고후 3:8).
성화는 성령의 능력으로(살후 2:13, 벧전 1:2, 참고; 롬 8:4, 15-16) 이루어지며, "몸의 행실"을 죽이고 거룩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롬 8:13, 7:6, 빌 1:19).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전해 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리스도인에게로 흘러 들어갈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를 영적 가뭄과 재해로부터 보호하시고 충만히 임재하사 우리가 자라나는 토양을 풍부하게 해 주실 때 그 열매는 더욱 풍성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