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25세때 영남대학교 다닐때 이야기 입니다.
학생생활 연구소(대학병원 딸린곳은 대학고에 다 있음) 에서 자아검사개념 검사를 했는데 검사하는데 무려 두시간만에 완성 되었습니다.
한 20일후 과사무실 계시판에 제가 학생생활 연구실로 방문 하라고 공지가 떳습니다.
그래서 학생연구실에 약속 날.시간에 갔습니다.
가니 학생생활언구소 소장님 즉 영남대학병원 정신과 주임교수님이 제일 문제거라가 무엇이냐고 묻길래 대답하니 영남대학병원
정신과 외래로 몇날. 몇시에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여성 선생님을 소개 시켜 주셨습니다)
정신과 간호사가 면담실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가니
미모의 여성 선생님이 들어 왔었답니다
저보다 몇살 위인 것 같았습니다.
긴머리에 파머를 하고 흰가운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들어 왔었답니다.
소은희 선생님 이었습니다.
아마 그당시는 전문의 내지 레지던트 몇년차는 되는 듯 합니다.
여성 선생님께 총8회씩 하루 2시간씩 정신치료 요법중 지지요법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병식이 없어서 3년간 약을 안먹고
있었답니다.
여성선생님께서 저보고 어린시절 몇살때 까지 기억에 남는 것을 얘기 하랍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기억에 남고 좋은 것은 잊기마련 입니다.
그래서 기억에 있는것을 두시간 동안 다 이야기 하고 여성선생님
께서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 호흥 해주셨습니다.
여성선생님의 개인적 대화는 두시간안에 한마디도 없었답니다.
말씀은 *그래서요* 이정도 였고 계속 듣고 만 있었고
저는 억압당하는 것을 이야기 했답니다.
그리고 여성 선생님이 약 처방을 해주셔려고 했답니다.
저는 약을 거부 했답니다.
담당교수 이종범교수님이 하도 부작용 땜에
삼년전 고생해서 거부 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여성선생님께서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얘기만 해 주셨으면 또 인생이 다른 길을 갔을지 모릅니다.
그. 두시간에 속 시원한하게 이야기 하고
평생 남한테 얘기 못 한 것을. 이 여성선생님께서 다 들어주시니
먼저 일어서서 문밖을 나가니 병원안에 있는
사람들. 엘례비터 미웠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고 버스를 탓는데 버스승객이 그렇게
좋아 볼일수가 없었답니다.
이주후 또 상담하고 나오면 같은 증상들이 생겼답니다.
8회기 동안 여성선생님이 저에게 적개심 이라던지 이런 감정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제 가정사를 다 듣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런 가정에서 나도 있었으면 정신분열병에 걸렸겠다고 말씀 하고
누가 날 잡아주는 분이 있어야 겠다고
영남대학병원 91병동으로 와서 약속된 날짜와 시간에 문밖에서 초인정을 누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에 초인정을 누르니 간호사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고 상담실로 들어 오라고 했답니다.
거기 그 병동은 정신벼동 이었답니다.
면담실에 들어가서 앉으니 조금후 남성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레진던트 몇년차 인 것 같았습니다.
남성 선생님과는 서로 주고 받는 대화를 행ㅎ는데
그 선생님께는 전이가 되었는지 적개심이 생겼답니다.
약을 안 먹었으니
그런 감정이 오고 갔습니다.
김진성선생님(나중에 동 대학병원 주임교수가 된 분) 께 업무 전달이 잘못 되었는지
대화는 거기서 끊났습니다.
그리고 87년6월 항쟁이 생겼답니다.
하여튼 김진성교수님이 개원하고 찿아가서
그당시 면담한 저라고 하고 여러가지 대화를 하고 무료로 두시간을. 상담 하고 집에 왔었답니다.
불과 2년전에 만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