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27분 ·
#송필경 선생님 글
척 피니
평생 10조원을 기부하고, 방 2칸 소형 아파트에서 10일(현지시간) 92세로 눈 감다.
아래 글은 9월 달에 쓴 글이다. 공개하려다 미뤄 둔 글인데 척 피니의 영전(靈前)에 바친다.
*****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전 재산을 기부한 미국 면세점의 제왕
척 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1931〜2023).
1990년대에 월간 잡지 <말>이 있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전 대표는 말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요즘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찰스 피니 또는 척 피니라는 사람에 관한 기사를 국내 최초로 썼다고 기억하는 데 그 기사에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 기사를 기억으로 더듬고 최신 기사를 덧붙여 본다.
미국 면세점 재벌 사업가 피니는 돈벌이에 무자비하며 결단력이 있다는 평판이 있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실했고 돈 버는 재주가 있었다.
10살 때 크리스마스카드와 우산 등을 팔아 용돈을 마련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샌드위치 장사를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군대 복무 경험을 살려 군인을 상대로 면세 술을 팔았다.
1960년, 29살에 대학친구들과 같이 면세점 DFS(Duty Free Shoppers Group)을 창업했다. 실패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공항 면세점에 진출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직원 5천여 명과 함께 연간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1위 면세점을 운영했다.
1988년에는 재산이 13억 달러에 달해 미국 부자 순위 23위에 이름이 올랐다.
이처럼 돈이 많지만 비행기 출장을 갈 때는 일반석을 타고, 서류 등은 비닐봉지에 넣어 다니고, 점심도 동네 간이식당의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때웠다. 평생 자동차를 가지지 않았고 임대 아파트에 살았다. 구두는 한 컬레 뿐이고 1만 5천 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다녔다.
자신이 검약한 만큼 남에게도 구두쇠로 이름났다. 직원에게 이면지를 쓰게 하고,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수임료도 깎으려 했으며, 경제인 모임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일찍 자리를 떴다.
그런 피니가 남에게 자비를 베푼다고는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주위 사람에게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한 경제지는 "돈만 아는 억만장자" 1위에 피니를 꼽았다.
피니는 1997년 DFS면세점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법정 분쟁에 휘말렸고, 그 때문에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이 발칵 했다.
'뉴욕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15년 동안 2,900회 빠져나간 돈이 무려 40억 달러에 달했다. 모두들 피니가 재산을 빼돌렸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곧 사실이 드러났다.
비밀 장부의 지출 내역은 모두 기부였다.
1997년 1월23일자 뉴욕타임스의 피니 기부 기사에 이제 미국 전역이 감동했다. 15년 동안 사업가 피니가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대학과 의료기관 등에 6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구두쇠 사업가 피니의 선행이 세상에 공개되며 찬사가 쏟아졌다.
1982년 면세점 지분 39%인 5억 달러로 ‘애틀랜틱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통한 기부활동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왜 그랬을까. 피니는 악착같이 벌었지만 많은 돈이 부작용을 낳는다는 걸 느꼈다. 돈만으로는 텅 비고 썰렁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돈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피니는 생각했다.
피니는 누구든지 자기가 번 돈은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니는 가난한 자신에게 교육을 제공하여 돈 벌 기회를 준 모교 코넬 대학에 감사의 뜻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대학에 기부를 이어갔다. 아버지의 고국인 아일랜드 대학에까지 기부를 확대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베트남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으로 기부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위해 수술비를 제공하고 아프리카의 급성 전염병 퇴치를 위해 거액을 내놓았다. 또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인권단체에도 기부했다. 기부 건수가 2,900건에 달했다.
피니는 기부하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이름이 밝혀지면 기부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는 적십자 자원봉사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받는 이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말라.”
남을 도울 때 우월감을 느끼지 말고 도움 받는 이의 기분을 헤아리라는 어머니의 뜻이었다.
피니는 모든 재산을 자선사업에 기부하고 이제는 평범한 임대 아파트에서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검소한 습관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약속을 했다. 모교인 코넬대학에 700만 달러를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약속을 지켰다.
피니가 자선사업에 기증한 자산은 총 80억 달러가 넘었다.
그동안 즐겁게 사업을 해왔다는 피니는 “돈이 많다는 건 좀 더 안락할 수 있다는 말이지만, 난 지금 안락하다, 나는 더 이상의 돈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는 피니의 이야기에서 미국의 힘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미국 언론의 힘이다. 피니의 선행이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로 크게 실렸다. 그 다음날 의외로 뉴욕타임스와 쌍벽을 이루는 워싱턴포스트지도 1면 머리기사로 크게 다루었다.
경쟁지에서 다룬 기사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관행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가치 있고 널리 알려야 하는 기사는 그런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언론의 사명에 충실했다. 둘째, 미국의 기부 문화다. 피니의 기부 모습을 세계부자 1위와 2위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모범을 삼았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피니에게 자극을 받아 약 300억 달러 기부했다. 그리고 “척 피니가 나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워렌 버핏은 "척은 나의 영웅이고, 빌 게이츠의 영웅이다. 그는 모두의 영웅이어야 한다."며 빌 게이츠의 길을 뒤따라갔다.
우리 재벌도 언론도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니겠는가.
가슴을 뛰게 하는 피니의 아름다운 말 몇 가지를 보자.
"죽어서 하는 기부보다 살아서 하는 기부가 더욱 즐겁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
“부(富)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스럽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돈만 내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들이 저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행복하고, 돕지 않을 때 불행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거꾸로 산다면 바로 피니의 모습이 될 것이다. - 짐 드와이어 (뉴욕 데일리)”는 참 재미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