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송암공(松巖公, 휘 魯)께서 남긴 詩
서원의 6개 주련(柱聯)에는 공이 54세에 체직되었을 때 읊은 시를 옮겨 놓았다.
유석재로방 (有石在路傍) 길가에 어떤돌이 하나 있는데
행자견위기 (行者見謂奇) 가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기네
장이화체상 (將移花砌上) 장차 화단에 옮겼으면 좋겠다 하고
혹언뢰불의 (或言磊不宜) 혹자는마땅치 않다고 하네
석본무심자 (石本 無 心者) 돌은 원래 마음이 없는 것이니
휴노가시비 (休勞歌是非) 수고스럽게 시비하지 말라
※ 선비의 넘치는 기절(氣節)을 읽을 수 있으며 남명(南冥)문인이 간직한 경의(敬義)정신을 음미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公께서는 용사일기를 완성하고 선조31년(1598년) 오랜 학질로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41년(1765년) 예조참의를 추증하고 순조2년(1802년) 낙산서원에 입향한데 이어 순조12년 이조참판, 17년에 이조판서를 추증하였으며 고종8년(1871년)에 이르러 정의(貞義)라는 시호가 내렸다.
고종의 교지에는 청백자수왈정(淸白自守曰貞) 견의능충왈의(見義能忠曰義)<청백을 스스로 지켰으니 정(貞)이요 의를보고 능히 충성했으니 의(義)다>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