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기作名記 - 이름보다 삶이 먼저다 / 김창남 8
1.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오늘 신문의 전면 광고가 눈길을 끈다. 그래 이름을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되고말고. 문득 작명 이야기가 떠올라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제대로 이름을 지으려면, 태어난 년 월 일시를 기준으로 사주와 부합해야 하고, 음양오행을 맞추어야 한다. 또 타고난 사주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야 하며, 원형이정元亨利貞의 격格도 맞아야 한다. 나아가 적성과 직업까지 고려해야 한다.’
2. 읽다 보니 참으로 어렵다. 과연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어 이름을 지을 수가 있을까. 좋은 이름을 지으려면 사주를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한자로 지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외국인의 이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사주, 즉 태어난 일시를 모르는 고아들은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적성과 직업을 미리 정해 이름에 담아야 한다는 말인가. 한글로 예쁜 이름을 짓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추세를 성명학에서는 어떻게 평가할는지도 의문이 든다.
‘생기와 개성, 품위가 있어야 하며 저속하거나 놀림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대목에서는 공감이 가지만, 이름 하나로 건강과 출세, 부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욕심처럼 느껴진다.
3.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짓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몇 달 전, 어머니를 여윈 뒤 끝에 찾아온 기쁨이라 귀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름은 당연히 아이의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심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4. 아버지는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이 적힌 종이를 우리에게 내미셨다. 곱게 접은 한지에는 붓으로 단정하게 쓴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앞자리에는 분妢, 문妏, 뒷자리에는 정貞, 선仙.’
이를 조합해서 ‘분정, 분선, 문정, 문선’ 중에서 고르라는 말씀이었다.
아내와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는 너무 촌스럽다며 우리가 예쁜 이름으로 새로 짓자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를 앞서 보낸 아버지의 허전한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아내를 달래 그중 ‘문정’을 골랐다. 지금도 큰애는 이 얘기를 들려주면 ‘분정, 분선, 문선’이라는 이름들에 기가 막힌단다.
“그나마 문정이라는 이름을 골라주셔서 다행이에요.”
그 말속에는 은근한 원망이 담겨있는 듯했다.
5. 둘째를 낳고는 이름을 내가 직접 짓기로 했다. 작명소로 간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원래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사실 돈 주고 지은 큰애의 이름에 실망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항렬行列자는 ‘오를 승昇’. 여기에 어울리는 뜻을 가지면서도, 부르기 좋은 글자를 찾기로 했다. 옥편을 뒤지며 밤을 지새운 끝에 찾아낸 글자가 ‘빛날 엽燁’이었다. 합쳐보니 타오르는 불꽃처럼 크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었다. 아내도 수긍하는 듯하여 그대로 확정했다.
6.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김승엽’하고 부를 때는 괜찮았으나 ‘승엽아’ 하고 이름 만 부를 때는 두 글자 모두 받침이 있어 어감이 부드럽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끝 자만 따서 ‘엽아’라고 불렀다. 훗날 야구선수 ‘이승엽李承燁’이 이름을 떨치자, 그제야 ‘승엽’이라는 이름이 한결 좋아 보였다, 한자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이 괜히 반가웠다.
7. 돌이켜보면 이름이 아이들의 삶을 좌우했다고 느낀 적은 없다, 아이들은 저마다 무탈하게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다. 이만하면 부모로서 제법 효도 받고 있으니 충분히 복을 받은 셈이다. 이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이름 짓기에도 과도한 힘을 쏟을 필요가 없으리라.
8.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 아들 내외는 “아기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야지요.”라며 출생신고서 용지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흐뭇한 마음에 기꺼이 승낙했다. 이름은 아들딸 구별 없이 항렬자를 따르기로 했다. 항렬자인 ‘옥돌 민玟’자에 어울리는 부르기 쉽고 글자가 예쁘며 뜻도 좋은 글자를 찾았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 이름 표기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해서 곱고 우아하다는 뜻을 가진 ‘아雅’자를 골라 ‘민아玟雅’로 지었다.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고, 영어로 ‘Mina’라고 써보니 또한 마음에 들었다. 다만 ‘雅’자가 획수가 많아 예쁘지 않다는 흠이 보였지만, 그 정도는 보아줄 만하다고 가족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9. 둘째 손녀는 예쁘고 아름답다는 뜻의 ‘주姝’자를 찾아 ‘민주玟姝’로 지었다. 한자로 써보니 모양도 단정했다. 영어로 ‘Minju’라 표기하니 아들과 며느리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두 아이는 이름처럼 예쁘고 총명하게 자라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작명에 성공한 듯하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10. 셋째는 손자였다. 이번에는 손녀들과 달리 자라면서 표상으로 삼을 만한 위인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오기로 했다. 내 이름이 ‘비행사 안창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내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나서였다. 손자에게도 자기 이름에 자부심을 불어넣어 사표師表로 삼게 하고 싶었다.
11나는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의 이름에서 ‘재在’를 따 ‘민재玟在’로 지었다. 부르는 어감도 자연스럽고, ‘Minjae’라는 표기도 그럴듯했다. 나는 만족스러웠지만 식구들 반응은 조금 미묘했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백 점은 아니란다. 그러나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상재 선생은 개화기 사회운동가로써 비폭력 시민 운동을 주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분이었다. 민재도 이상재 선생을 닮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크면서 그런 싹이 보이는 것은 손자 사랑에 눈먼 할아버지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12. 아내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결혼 전, 아내는 ‘노태옥盧台玉’이란 본명이 촌스럽다며 ‘지영知英’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호적을 바꿀 정도까지는 아니고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길 바랐으니 별호別號인 셈이다. 연애 시절에는 아내가 좋다니 그렇게 불렀지만 나는 사실 ‘태옥’이라는 이름에 더 정이 가, 결혼하고는 자연스럽게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13.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 가정이 이토록 원만하고 평온하게 뿌리 내린 것을 보면 이름이 그리 대수였나 싶다. 이름은 결국 나를 부르는 소리에 불과할 뿐.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빛내는 것은 그 이름 뒤에서 묵묵히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첫댓글 김창남 선생님
하나의 이름을 짓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름은 결국 나를 부르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며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빛내는 것은 그 이름 뒤에서
묵묵히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에
공감합니다.
아버지로써 할바로써 이름을 좋은 의미를 부여하는 지어 주었군요.
무엇보다 心像이 최고이니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반드시 작명가의 이름만이 좋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作名은 사주에 부족한 오행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오행이 서로 상생하는 이름으로 짓습니다.
그리고 획수의 홀짝도 균형을 봅니다.
이름 세자의 총획수도 봅니다.
음양의 조화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짓는 이름이니 뜻과 음양 등이 다 좋아도 이름은 부르고 듣기에 일단은 좋아야 하는데, 이 부분을 철학원에서 간과하므로써 아기 부모들이 쓰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는것 같습니다.
요즘은 말하고 듣고 느끼기에 좋은 이름을 제일 선호하니깐요.
그렇다고 작명에 전문 지식이 없어신 분이 뜻만 헤아리고 부르고 듣는 느낌만 중요하게 여기며 짓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는것이 아니겠는지요?
제가 20여년 동안 사주명리와 주역을 공부하고 있으며 작명도 하는 입장에서 드린 말씀이니 곡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어쩌든 주관을 가지고 좋은 뜻과 발음되는 이름도 좋은 이름이 되겠지요.
잘 살아감이 더 중요한 것임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짓다 보니 자기 합리화 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