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대보름 앞두고 하늘타리를 딴 사연
당진시 우두동 3통 주민들이 마을 공동샘물인 대동샘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2013. 2. 24. 올해는 우강면 세류1리 윗샘에서 이와 같은 장면을 잡으려 했으나 조류독감과 구제역발생으로 행사가 취소됐다.
1. 대보름에 경로당에서 윷놀이하는 이유
내일이 정월대보름입니다. 당진에서는 우두동 3통 대동샘기원제, 우강면 세류1리 윗샘제 등 나름대로 행사를 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류독감과 구제역 발생 등으로 행사가 모두 취소됐습니다. 다만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마당에서는 간소하게 달집태우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달집태우기 전에는 바로 옆에서 볏가릿대를 만들었습니다. 아쉬움이라고 말한 이유는 마을사람들이 관성적으로 정월대보름 행사를 치러야만 한 해를 무사하게 지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홍석모(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에서 정월대보름 풍속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자유가 서문을 1849년에 썼으니 <동국세시기>도 그 언저리 기록으로 추정됩니다. 보름날에는 약밥을 해먹는다. 시골 사람들은 보름 하루 전날에 짚을 군대 깃발인 둑기 모양으로 장대 위에 묶고, 그 안에 벼와 기장·피·조 이삭을 넣어 싼 다음, 목화를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끼줄을 사방으로 벌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볏가릿대라고 한다. 벼가 잘 익은 형상을 만들어 풍년을 기원하려는 것이다. 보름날 이른 아침에 날밤·호두·은행·잣·무 등을 깨물면 일 년 열두 달 동안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부럼 깨물기다. 다른 풍속도 기록했지만 생략했습니다. 홍석모의 기록이 세시풍속의 뼈대라고 여겨집니다.
내일은 심훈기념관에서 근무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당진시 송악읍 부곡1리 경로당에서는 정월대보름 행사로 윷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심훈기념관 청소담당 할머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합니다. 가기로 했습니다. 윷놀이는 아마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록 여흥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월대보름에 공동체놀이로 윷놀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사태평한 한 해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란 염려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요일에 동생들과 함께 점심 먹으러 갔습니다. 갈비탕을 준비했는데요, 갈비가 한 뼘 정도, 그런 갈비 세 대를 그릇에 담아주더군요. 그리고 봄동배추무침과 각종 나물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절미도 싸주었고요. 나오면서 “부곡리 여러분들 부자 되세요, 그리고 어르신들 건강하세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괄괄한 여성 이장님께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퀸센스 찜통을 하나씩 들려주더군요. 재보니 지름이 30cm나 됩니다. 그러면서 마을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해달라고 하더군요. 다음 주 근무 나갈 때 청소할머니에게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이날 제가 경로당에 점심을 먹으로 가도 이미 청려장을 만드는 분(부곡1리 노인회 총무)과 인연을 맺었으니 그리 어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더 많은 인연을 맺어 부곡1리의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함입니다. 참, <당진의 지명유래>에 따르면 부곡리(富谷里)는 원래 풍수지형상 ‘가는 곳’, ‘가난고지’로 되어서 ‘못사는 마을'이란 뜻이라서 부자마을이란 뜻의 부곡(富谷)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청려장을 만드는 분은 <상록수>에 그려진 1930년대를 전후로 활동한 공동경작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지 않아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은 이삭을 건지려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서부터 가을까지 몇번이나 다닌 길인데도 보지 못한 하늘타리. 이날은 색 대비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나 봅니다. 당진시 송악면 부곡1리 필경사 인근. 2017. 2. 10.
2. 지성이면 감천이다
오늘 점심시간에 심훈기념관과 필경사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부곡공단 쪽으로 내려가며 빈집을 지나 대숲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청청한 대나무 잎과 대비되는, 퇴색한 갈색의, 10개 정도의 열매가 보입니다. 하늘타리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직 완전퇴색 전인, 맑은 갈색이었습니다. 만져보니 표면이 촉촉했습니다. 저는 한방의 약재는 차치하고 우리 조상들이 하늘타리를 어떤 용도로 썼는지 먼저 기억했습니다. 하늘타리 열매를 따기로 했습니다. 달리 쓸 용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사용할 용도에 맞게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에서요.
이전에 저는 하늘타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적었더군요. “우리 조상들은 하늘타리 열매를 약재 외에 잡귀의 침입을 ‘막는데’ 사용해왔습니다. 이 열매를 대문에 걸어놓습니다. 조상들은 이 열매가 둥글어 입도 눈도 귀도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잡귀가 들어와 알고 싶은 것을 묻습니다. 하늘타리는 입과 눈, 귀도 없어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밤새도록 묻다가 지친 잡귀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래서 잡귀를 ‘막는데’ 사용했다고 한 것입니다. 책장에 하늘타리 열매를 걸어둔 이유입니다.”
한 지인이 있습니다. 다정다감하고, 가끔 까칠하고, 이해도가 아주 높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격려하고 충고하고, 그 목표에 다가서는 방법을 상상하고, 결과가 나왔을 때를 연상하며 미리 즐거워하고, 가끔 이견을 보일 때는 삐치기도 하지만 바로 역지사지로 언제 그랬느냐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런데 그 지인 며칠 전에 정말 남 이야기하듯이 ‘소식’을 전하더군요. “뭐, 암이랴.” 그리고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이전에 처리할 문제를 이것저것 해치웠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그런 진단을 받았을 때 잠시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이 상황은 결국 자기만이 감당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데요. 더구나 10여 년 전에 같은 질병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전하는 태도가 정말 남 이야기하듯 합니다.
잠시 울었다는 대목에서 그 지인에게도 사람 즉 ‘생물’이라는, 원초적인 삶의 본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인은 생물을 넘어서 사회적인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요. 저는 그 지인에게 이 하늘타리를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남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겠지만 원자와 분자적 차원에서는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성이면 감천’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 팬지의 사연은 무엇일까? 2017.2. 10. 당진시 송악면 부곡1리 심훈기념관 옆 화단.
3. 칼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팬지의 사연
저는 지난해 가을 이곳 필경사와 심훈기념관 인근을 산책하면서 많은 씨앗을 만났습니다. 며느리배꼽, 한련초, 마디풀, 매듭풀, 칸나, 깨꽃(사루비아), 강아지풀, 가을강아지풀, 수강아지풀, 금강아지풀, 서양칠엽수(마로니에), 배풍등, 개여뀌, 곰솔(해송), 대추나무……. 채취한 후 도정과정에서 청소할머니와 친해지게 된 것입니다. 72세라 밝힌 청소할머니는 참 세련됐습니다. 짬이 나면 심훈기념관 전시관을 둘러보시며 헤드폰을 끼고 들어보기도 합니다. 이 모습 저에게 살짝 들켰습니다. 종교이야기도 합니다. 저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뭐, 종교는 없지만 평소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이념이 마음에 들어, 잠시 생각하다가 단군할아버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 돕고, 이롭게 하면 되지 않나요?” “그류.”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청소할머니는 제 핸드폰에 담긴 풀과 나무 사진이 퍽 궁금하신 모양입니다. 청려장 만드는 분 만나고 왔을 때 분명히 사진도 찍어왔을 것을 확신하며 지팡이가 어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 하더군요. 보여드렸습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10일(이날은 이번 겨울에 제일 추웠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화단에서 찍은, 활짝 핀 팬지 사진을 보여드렸습니다. 이런 날에도 꽃이 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팬지를 보면서 의아했습니다. 미끄러울 정도로 얼음이 어는 날씨인데도 굳이 꽃을 피우는 사연이 무엇인지 말이지요. 모시고 나가 보여드렸지요. 그런데 의외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청소할머니는 팬지를 본 후 로제트로 땅바닥에 펼쳐진 풀을 보더니 이거 옛날에 삶아서 무쳐먹었다고 합니다. 보니 ‘광대나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나물 먹는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할머니는 분명히 삶아 무쳐먹었으나 지금은 이것을 누가 먹겠느냐고 합니다. 나물로 먹었으니 이름도 ‘광대나물’이라고 했겠지요. “혹시 할머니는 시집오기 전에 친정엄마한테 나물타령을 배웠나요?” “아뉴.” 어쨌든 광대나물을 식용했던 분을 직접 만난 것입니다.
4. 징징대지 않는 대범함이 옳았다고
오후 6시부터 달집태우기행사가 진행될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추위가 대단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인사와 덕담을 나눴습니다. 소방차가 옆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소방관과 이야기해보니 낮에 만일을 위해 주변에 물을 충분히 뿌려놓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말라서 부드러워야할 잔디가 비 맞고 언 것처럼 서걱거렸습니다. 그리고 소방호스도 그리로 펼쳐놓았습니다. 드디어 달집에 불을 붙였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전시장에는 자그마한 달집이 마련됐습니다. 지난 1년간 이 곳을 다녀간 수많은 분들이 소원과 희망을 담은 소지를 전시장 달집에 매달았습니다. 이날은 이 소지를 모두 거둬 하늘로 올려 보내는 날입니다. 이 소원과 희망이 어떤 존재에게 전해질지, 들어는 줄지, 그런 존재는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와 분자 차원에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진실이기를 바랍니다.
불이 춤춘다는 노랫말도 있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연속해서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사진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힘차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힘차게, 춤추며 위로 솟구쳐 어떤 존재에게 무사히 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어떤 존재도 웬만하면 그 소원과 희망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보여준 것이 이날의 달집태우기일 것입니다. 암이지만 징징대지 않은 지인의 대범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저는 기원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 이외 다른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