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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I/스포탈코리아
[스포탈코리아] 20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계에서 빠른 선수는 희귀종으로 분류됐다. 지금은 어딜 가나 그런 선수만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베일과 월컷 같은 선수가 모든 감독의 위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글 Richard Edwards 에디터 이민선
“이 웨일스 선수는 세계 최악의 풀백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마이콩을 곤준으로 만들어놨다.” 이탈리아의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감정을 실어 떠들어댔다. 개러스 베일이 몇 주 사이 브라질 선수를 두 번이나 무너뜨린 후에 나온 기사였다. 마이콩은 경기를 마친 뒤 “베일은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었지만 통제가 불가능했다.”
정말? 그렇다면 베일이 사우스햄프턴에서 축구선수로 싹을 틔워갈 때 코치를 맡았던 폴 볼섬은 뉴포레스트 훈련장에서 100m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왜 베일에게 한 달치 월급을 걸지 않았던 것일까. 볼섬은 베일의 속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상황과는 다른 증언이다. 그러나 베일을 비롯해 요즘 떠오르는 ‘속도광’들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은 공과 무관하게 무작정 빨리 달리는 선수가 아니다. 그들은 공을 몰고 수비수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베일은 지금 현재 축구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대량 살상무기가 속도라는 사실을 챔피언스리그 인테르전을 통해 입증했다
속도 경쟁
빠른 선수들의 출현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톰 피니, 스탠피 매튜스도 꾸물거린 적은 없었다. 현재 잉글랜드 클럽 중 처음으로 자체 스포츠 피트니스 연구소를 설립한 울버햄프턴에서 체력, 근력 코치로 근무하고 있는 데일리는 잉글랜드 축구의 속도가 빨라졌지만, 가장 빠른 축에 드는 선수들의 속도에는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솔직히 내가 같이 뛰었던 사람들보다 딱히 더 빠른 선수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숫자는 확실히 늘었다”면서 “과거에 와이드맨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폭발적인 페이스를 가진 선수가 팀 전체에 골고루 분포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요즘 클럽들은 그들의 속도를 활용하기 위해 스피드 코치를 늘리고 울브스의 연구소 같은 시설을 만들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대런 캠벨은 첼시, 스토크를 비롯해 여러 유명 클럽에서 일했고, 안드리 셉첸코, 앤디 존슨에게 전력 질주 테크닉을 지도했다. 캠벨은 “그 친구들은 몸이 완성돼 있고 힘이 좋기 때문에 몇 번만 가르치면 실력이 다듬어진다. 클럽이 스피드 코치를 고용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선수나 속도를 개선할 수 있다. 나이도 상관이 없다. 달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면 부상을 당한다.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에 앞서 내가 가르치려고 염두에 둔 것을 그들의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물역학적 상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테크놀로리화 훈련 테크닉도 클럽이 선수들의 피지컬 컨디션을 관찰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데일리는 “10m, 20m, 30m로 거리를 나눠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피로 지수도 측정한다. 한 번만 달리는 게 아니라 20초 간격으로 7번을 테스트해서 선수가 반복적으로 뛸 수 있는지 알아본다. 또한 축구 선수는 직선 구간을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속, 감속, 트위스트, 턴 능력을 알아보는 민첩성 테스트도 실시한다.”
이렇게 많은 정보와 전문 지식을 확보한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속도를 선수 선발의 주요 척도로 삼고 있다.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의 라이트백으로 동시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빠른 수비수로 꼽혔던 폴 파커는 “축구는 예전과 달라졌다. 지금은 날카로움, 민첩성, 속도가 대단히 중시되고, 공격수 뿐만 아니라 수비수에게도 이런 요소들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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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능력의 부각
그 어느 때보다 속도가 중시되는 상황이라면 육상 능력이 기술적 재능만큼 필수적일까?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몇 년 전, 가난한 지역에 길거리 육상 경기를 보급하고 아이들을 위한 단거리 경주를 열었다. 괜찮은 인재를 많이 발견했지만 대회에는 출전을 시킬 수가 없었다. 모두들 축구 클럽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빠른 아이들 중 다수가 클럽에 발탁돼 테스트를 거쳐 축구 선수로 자라고 있다.”
캠벨도 잠시 축구에 발을 담든 적이 있었다. 닐 워녹이 플리머스 감독이던 시절, 2년 계약을 제안 받았는데, 다음 날로 아마추어 팀 웨이머스와 계약했다. 그는 “발은 빨랐지만 골을 넣으려면 6번 정도의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에 주전으로 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육상 인재를 축구 스타로 변환할 때의 문제점이다.
“아르센 벵거는 어떤 종목의 선수나 축구선수로 키울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라이언 긱스와 같은 축구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발은 빨랐지만 공에 발을 갖다 대는 능력은 천지차이였다.”
시오 월컷은 촉망 받는 어린 단거리 주자와 축구 슈퍼스타의 사이에 다리를 놓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지난 해, 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월컷을 막으려면 “권총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카탈루냐 언론은 바르사가 아스널을 극볼할 수 있는지의 여부보다 월컷의 100m 기록에 더 관심을 가졌다. 100m를 10.38초에 달린다는 것이 사실일까? 겸손한 월컷은 민망한 듯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의 기록은 10.35초에 가까웠다.
그 정도 성적이 있으니 월컷이 육상 기대주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놀랍지 않다. “난 원래 육상 선수였다. 축구는 10살인가 11살쯤, 늦게 시작했고 15살까지 어느 클럽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말이 맞는 듯하다. “캐스트롤’이 2009년에 발행한 기록집을 보면 월컷은 최고 속도가 시속 36.65km로 프리미어리그 스피드스터 명단 1위에 올랐다. 참고로 우사인 볼트가 2009년 100m 9.58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을 때의 최고 속도는 시속 44.72km였다.
그러나 속도는 신예들만의 무기가 아니다. ‘EA 스포츠’가 <포포투>에만 특별히 공개한 집계 수치를 보면, 37세의 라이언 긱스가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뉴캐슬의 경기에서 시속 35.89km를 기록했다. 20세의 크리스 스몰링의 35.96km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긱스, 베컴, 네빌, 스콜스 등이 맨유 소속으로 FA 유스컵에서 우승하던 1992년에 코치를 맡았던 에릭 해리슨에게 이런 수치는 별 의미가 없었다. 올드 트라포드의 골든 제너레이션을 키워낸 그는 “바르셀로나를 봐라. 그 선수들은 전혀 빠르지 않다. 폴 스콜스도 절대로 빠르다고 할 수는 없는 선수”라고 말했다. “스콜스와 베컴은 맨유에 처음 왔을 때 덩치도 작았다. 요즘 감독들은 속도에 집착하는데,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뛰어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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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적인 관점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헨리 윈터는 파비오 카펠로의 잉글랜드 대표팀이 지난 해 블룸폰테인에서 독일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던 모습에 대해 “개러스 배리가 외칠을 길들이려고 했던 시도는 늙은 야간 경비가 날쌘돌이 꼬마 도둑을 붙잡겠다고 뛰어다니던 모양새 같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독일 대표팀의 참모격이었던 외칠이 폭발적인 속도로 배리를 따돌리고 토마스 뮬러에게 크로스를 전달하면서 기울어가던 잉글랜드의 월드컵 도전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던 장면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장면은 카펠로의 용병술과 접근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명백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 경기 이후 월컷, 애슐리 영, 잭 윌셔 같은 선수들이 주전을 발탁되면서 무거웠던 미드필드에 속도감이 더해지고 대표팀의 스피드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속도의 필요성을 인식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카펠로가 처음이 아니었다. 스벤 예란 에릭손은 속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프리미어리그에 1분도 출전한 적이 없는 17세의 월컷과 토트넘에서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전하던 19세의 에런 레넌을 2006년 5월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넣었다. 당시 에릭손은 어리둥절한 기자들 앞에서 “오늘 아침에 시오를 데리러 가기로 결정했다. 축구에서 속도는 큰 값어치가 있다.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대를 했건만 월컷은 독일에서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레넌은 3회 교체 투입됐지만 잉글랜드는 포르투갈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낯선 선수에게 완패했고, 호날두는 2009년 독일 잡지 <더 슈피겔>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로 호명됐다.
그럼에도 전 잉글랜드 대표팀 코치 돈 하위는 에릭손의 결정에 동의하며, 어떤 감독이나 상대 팀에게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있는 선수로 팀을 채우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아는 한 빠른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 감독은 없다. 상대가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른 선수가 하는 일을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비수로서는 몹시 까다로운 상대다.”
월컷을 보면 수비수가 직면한 딜레마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요즘에는 발이 빠르면 뛰어난 활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속도를 언제 적절하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경기 내내 전속력으로 달릴 수는 없다.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다른 선수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최적의 상황에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기습적인 공격이 점점 인기를 얻어가는 시대에 스피드는 가장 위력적인 무기가 된다. “요즘 감독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무리뉴에게 물어도 ‘트랜지션(전환)’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전략서 <피라미드 뒤집기>의 저자 조나단 윌슨의 이야기다. “빠른 선수를 보유할수록 더 신속한 역습이 가능하고, 상대 수비가 원 위치로 복귀하기가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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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해리 레드냅은 2003년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하루 앞두고 테디 셰링엄이 포츠머스로 복귀한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테디는 15살 때부터 못 뛰었기 때문에 페이스가 떨어지고 말 게 없다”며 웃었다. 속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챔피언스릭, 프리미어리그, FA컵 우승 메달과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셰링업을 떠올려 보자. 느리기로 유명한 선수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다.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을 들어올렸던 보비 무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입으로 가장 빠른 선수는 아니었다고 고백했던 그였지만 셰링엄처럼 탁월한 경기 감각으로 속도를 극복했다.
한편 윌슨은 세상이 놀랄만한 속도를 갖고 있지 않아도 어느 선수보다 신속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예로 토트넘의 루카 모드리치를 꼽았다. 자신의 나라인 영국보다 세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스폴스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 멤버인 미드필더 차비는 “지난 15~20년 사이에 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가 스콜스”라면서 “사비 알론소와도 그런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스콜스는 모든 것을 갖춘 스펙터클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속도가 빠져 있다. 그러나 맨유의 빨강머리 천재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내는 동안 시선을 사로잡고 축구의 미래를 제시하는 쪽은 베일과 월컷 같은 스피드스터들이다. 신세대 준족이 그 이전 세대보다 더 빠른지 느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속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맹렬하다. 이적 시장이 다시 열릴 때, 마이콩이 겪었던 수비수의 악몽을 선사하는 발 빠른 선수들의 기세에 너무 놀라지 말자. 스피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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