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교정 31. 기찻길 뽁-뽁- 칙칙폭폭
나씨네와 최씨네
옆집은 나씨네 집인데 그 집 막내딸 관철이는 눈만 뜨면 내 동생 용희하고 잘 놀았다. 눈망울이 동그란 관철이는 말도 없고 조용하였다. 그런 애가 내 동생하고 학교에 나란히 1학년에 입학하여 잘 어울려 다녔다. 그 아이의 오빠 이름은 관배인데 신흥중학교(지금의 충남중학교)에 다녔다. 나 같은 꼬마 하고는 말 한 번 걸어준 적이 없다. 관철이 언니는 학교를 오가는 방향으로 보아 탁구의 이에리사가 다닌 호수돈 여고를 다녔을 것 같다. 관철이 엄마는 머리를 뒤로 쪽을 지으시고 비녀를 꽂은 모습이었는데 말씀도 이해력 깊게 하시고 포근한 웃음을 잘 지으셨다.
⁹관철이네 집은 ㄱ’기역자 집이어서 방이 많았다. 따라서 방 앞을 지나가는 마루도 매우 길었다. 앞마당은 100평이 넘어 보일 정도로 넓고 우물도 있고 꽃밭도 넓어 나팔꽃, 해바라기, 봉숭아, 채송화, 노란 칸나, 빨간 칸나, 장미, 과꽃, 꽈리 꽃에 상추, 고추, 들깨, 가지, 오이, 등등이 있어 벌, 나비가 많이 날아왔다.
그때 우리들은 고무 꽈리를 상점에서 사서 입안에 살며시 깨물어 작은 구멍으로부터 묘하게 빠져나오는 공기 새는 소리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꽈리꽃 안에서 나온 동그란 열매는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모두 다 파내야 꽈리를 불 수 있다 했는데 한 번도 그리해 볼 수가 없었다. 또 여관업을 하였기에 부산에서 올라온 매형이 이 집에서 자게 되었고 아침 식사하러 오라고 전할 때에도 이 집엘 드나들었다. 또 관철이 아빠와 우리 아버지가 바둑을 두시면 다음날 놓고 온 안경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으로도 관철이네 집엘 갔다. 밖에서 놀다 공이 담 넘어 들어가면 꺼내러 간혹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집의 큰 아들이 미국 유학을 갔다고 들었다. 그 이름은 대전중, 대전고, 서울상대를 나오고 부총리를 지낸 나웅배 씨였다.
우리 집 앞 공터는 최씨네 돌 공장 작업장이다. 이곳에 화물트럭이 와서 커다란 돌덩이들을 내려놓는다. 그럼 여러 일꾼들이 잘 구르는 통나무 토막을 돌 아래 받치고는 그 커다란 돌을 밀고 밧줄을 걸고 감아 당겨서 차례차례 옮겨 각기 작업하기 알맞은 거리를 두어 띄엄띄엄 놓았다. 일꾼들이 집으로 가버린 저녁부터 그곳은 우리들의 천혜의 숨바꼭질 장소, 대나무 칼싸움, 전쟁연습 놀이터가 되었다. 다시 낮에는 해질 때까지 이른 아침부터 뚝딱- 뚝딱-석수장이 아저씨들이 와서 돌을 깨었다. 잿빛에 검은 점이 무수히 박힌 화강암이었다. 밝은 빛깔의 돌도 있었고 어두운 잿빛과 아주 까만 돌도 있었고 용도가 각각 달랐다.
먼저 돌을 자로 재고 먹칼로 측량선을 표시를 한 다음 기역자로 네 귀퉁이 90도 각을 잡고 먹통을 꺼내와 검은 먹줄을 튕겼다. 먹통을 기준점에 놓고 안경알보다 조금 큰 도르래 바퀴에 감긴 줄을 잡아당겨 먹통을 통과해 먹물 젖은 줄을 연결점에 대고 들어 올렸다 놓으면 일직선의 검은 선이 선명하게 찍혔다. 이렇게 4개의 직선을 면결하면 직사각형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한 다음 줄 밖에 있는 불필요한 돌 면적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거였다.
검게 쳐놓은 줄에 직선으로 단단한 끌을 대고 큰 망치로 고르게 고르게 차례차례 약하게 탁탁 탁탁 때려 금이 가도록 만든다. 다음 마무리 타법으로 다시 처음부터 끌을 대고 큰 망치로 탁탁 치면 쫙쫙 벌어지며 돌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정확히 조각들이 줄 안쪽을 훼손하지 않고 줄 밖으로 떼어졌다. 놀라운 돌 컨트롤 기술이었다. 구경꾼들이 모두가 석수장이의 돌을 다루는 솜씨에 그 기법에 그 타격에 감탄하였다.
또 측면의 돌출부위를 정으로 쪼아대기도 하고 그 다음은 도드락망치로 돌을 다듬었다. 표면이 거의 평면으로 다 되어 가면 물을 뿌려가며 숫돌로 갈고 문질러 광택을 내었다.
다음, 매끄러워진 돌 표면 위에는 새길 글이 적힌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글씨대로 예리한 송곳 정을 대고 작은 망치로 딱딱- 딱딱딱 세심하고 정교하게 글을 깊이 있게 쪼아 파내었다. 이렇게 이른바 예쁘고 품위 있는 글씨체의 음각(陰刻) 작업이 끝났다.
완성된 비석 돌 아래 나무토막 사이로 여러 개의 밧줄을 넣어 매듭을 만들고 그 매듭에 하나하나씩 굵은 나무를 꿰어 좌우 양편의 일꾼들이 어깨에 지고 간다.
둘씩 3조의 6 일꾼이 어햐-, 어햐-, 어햐-, 어햐- 하는 소리를 좌우(左右)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호흡을 고르고 발걸음을 맞추고 기(氣)를 모으며 한발 한발 멈춤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정말 천하장사들이다. 저 커다란 돌덩이를 6사람이 지고 간다니 기막히고 대단하였다.
작업장을 빠져나와 어깨에 지던 나무를 내려놓고 노면이 평탄한 곳에 4 사람이 비석에 묶인 밧줄을 당긴다. 두 사람은 잘 구르는 통나무 토막을 앞에서 고르게 놓아준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비석을 트럭 아래까지 운반하였으면 이제 화물칸에 올리는 상차(上車)가 문제다. 대형 도르래가 장착된 거중기로 화물칸 높이에 맞춰 돌을 들어 올려 밀어 넣었다. 이리하면 일꾼들은 막걸리 한 사발씩 나누고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갔다.
돌공장 최씨네 아들 이름은 장환이다. 아마 대전고등학교에 다녔을 것 같다. 나 같은 꼬맹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도 아는 바가 없었으나 어른들은 장환이네라고 불렀다. 그리고 장환이 여동생은 중학생이었고 금순이라고 기억된다. 마찬가지로 중학생 금순이 누나도 꼬마인 나를 상대로 이야기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장환이 형 어머니는 다정하셨다. 내게 말씀도 잘하시고 무엇보다도 먹을 것을 자꾸 주려고 하셨다.
그럴 즈음에 3학년반 아이들은 굵고 긴 못을 납작하게 눌려서 갈아 칼이라고 자랑들을 하였다. 우리는 그 아이를 따라 대동 기찻길에 가서 철로 위에 대못들을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경부선 급행열차와 완행열차가 오르내리고 상하행 양방향 운행이었기에 열차소리가 수시로 들려왔다.
멀리서 뽁-뽁-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려온 기차가 지나간 다음 각자 내가 올려놓은 못들이 어떻게 되었나 쫓아가 주워 들어 본다. 납작하게 눌려 모양이 바뀐, 덩치가 커진 쇳조각들을 손에 쥐고 우리들은 신기해하고 즐거워하였다. 그건 크고 길고 엄청난 무게를 지닌 기차만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순식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새로운 충격이고 마음이 물결치는 감동이었다.
꼬마들끼리 모여도 우리들이 마음을 합쳐 해낼 수 있는 재미난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 푹 칙칙 푹푹 칙칙 푹푹
기차소리 요란해도 / 옥수수는 잘도 큰다.
동요로만 부르고 상상으로만 그리던 기찻길 옆에 실제로 와보니 동요의 세계처럼 아기가 잠 잘 자는 곳에는 못을 칼로 만들어주는 신기하고 재미난 동화의 나라가 있었다.
뽁-뽁-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는 아기를 잘 자게 하는 자장가였다. 또 기차 소리는 옥수수가 잘도 크게 격려하고 힘을 주는 응원가이었다.
이를 실제 경험해서 알게 된 우리들은 어린 우리가 자유롭게 가볼 수 있는 환상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믿게 되었다. 어린 우리도 대못을 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