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자비 마립간의 첫째아들로 역시
19대 눌지마립간 때부터의 부자상속으로
눌지마립간의 장남 자비마립간 자비마립간의 장남 소지마립간 이렇게
되는거 같습니다
소지 마립간의 이름은 김소지입니다
어질어서 백성들이 잘따랐다는데요
신라에 우체국같은 우역을 만들고
경부고속도로같이 국가적인 도로를 신라에 만들었던거 같습니다
할아버지 눌지마립간때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었는데요
소지 마립간때에는 동성왕과 결혼동맹을 해서 이찬 비지의 딸을 동성왕에게
시집보냈다고합니다
소지 마립간이 날이군,영주시에 행차하다가 날이군 세력가가
벽화라는 이름의 딸을 비단보자기에 덮어 바쳤다고합니다
이름이 벽화여서 벽에 있는 그림으로 기억했던거같은데
이름이 벽화인 여인이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벽화를 못잊어?? 몰래 변장하고 궁에 나와서
벽화를 만났다는데요
어느날 소지 마립간이 어느 할머니 집에 묶게 되었다고합니다
소지 마립간은 이당시 변장을 했었던거같습니다
자신의 평판이 궁금해 할머니에게 현재 왕이 어떠냐고 묻자
할머니는 다른사람들은 성군이라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했다고합니다
이유를 묻자 왕이 여자를 만나러 백성옷을 입고 오고 용이 물고기 옷을
입으면 그물에 어부에게 잡힌다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소지 마립간은 부끄러웠으나 벽화를 포기하지 못했고
벽화를 경주 왕궁에 불러들여서 남자 아이 한명을 낳았다고하는데요
벽화가 임신했을때 소지 마립간이 죽었다는 기록이 나오는거같습니다,,
22대 신라의 왕은 지증왕입니다
저가 인상적으로 본분이고
항암을 하신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분은 세종대왕같이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한국,세계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로 순장을 없애신 분인데요
순장은 사람이 죽으면 생사람을 같이 무덤에 묻거나 사람을 죽여묻거나
그런 풍습 같습니다,,
옆나라,그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도 청나라때까지 있었는데요
중국에서는 사람대신에 인형같은거를 묻기도 했는데 이마저도
공자님은 용(인형)을 처음 만든자는 대가 끊길것이다 하면서 저주를 합니다
인에 어긋나고 당연히 비실용적인 행동이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악습입니다 한중일에 다 있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불새라는 만화에서도
순장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권력자가 죽으면 그당시 권력자의 첩,노비,가족들을 묻거나 그랬던거같습니다
죽어서도 살았을때같이 봉사하라는 극단적인 인간경시라고 합니다
이런 악습을 신라는 일찍 없앤거 같습니다 지증왕은 인신공양도 없앴다고 합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않는 그런 클래식한 업적을 이루신 왕입니다
비슷한 사람으로는 미국에서 노예를 해방한 링컨대통령과 비슷할까요??,,
오늘날 같으면 말도안되겠으나 고대 부여,가야에서도 이런게 있었고
중국은 청나라때 까지 있었는데요 명나라때도 세종대왕때 명나라 영락제가 죽자
명나라에서는 궁녀 15명을 순장했다는데요 명나라에서 순장을 했다는 사실이
조선 조정에까지 알려지게되자 세종실록 1425년 10월 9일 기사에 허조라는 신하도
공자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허수아비라도 순장하면 후손이 끊어진다는거를
어린아이들도 다아는데 이는 대국의 일이라도 배울게 못됩니다 이런식으로 말하는거같습니다
한국은 그래도 지증왕때 이런 선례가 있어서 이런 악습이 사라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중국에 악습은 순장 말고도 전족도 있었는데요 발이 작아야 미인에 시집도 잘간다는
그런게 있었던거같습니다 그래서 여자아이 발을 어렸을때부터 천으로 꽉 묶어서
발에 기형이 오게하는것인데요 발을 묶지 않으려하면 시집을 못간다 이런 광기가
사회적으로 있었던거 같습니다,,정작 평민 여자들은 이를 따라하다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거같고요,,
지증왕은 신라 22대의 왕입니다
이때부터 마립간이아니라 왕이라고 하는데요
64세에 왕이 되었다고합니다,,
키도 매우 컸던거같고 키큰 현명한 노인왕 이런 왕 아니었을까요??,,
순장을 폐지합니다 노동력 확보라는 목적도 있었다는거 같은데요
그당시 동아시아에 있었던 순장을 신라에서 폐지한다는것은 단순히 노동력 확보라기보다
사람을 위한 그런거에서 폐지하려는 추진력같은게 나왔을거 같습니다
또 농사에 소를 이용하는 우경을 도입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때부터
우경이 있었는데요 국가적으로 장려했을거라는 말도 있는거같고
외국의 그당시 신기술,,을 가져와?? 백성들이 편안하게 농사를 짓게할수 있게한
현명한 왕이었던거 같습니다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왕호를 사용합니다
이전에는 계림,사로,사라,서라벌 등 여러 지역 방언들로 불렸던거 같습니다
또 왕호도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같이 여러 방언이 있었던거 같은데요
이때부터 이런 중국식 호칭을 사용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또 우산국 울릉도를 이사부 장군을 보내서 신라땅으로 하는데요
이당시 우산국민들은 성격들이 매우사나웠다고 하는데요,,
이에 이사부 장군은 계략을 써야겠다해서
나무로 만든 사자상을 만들어 우산국민들에게 항복하지않으면
이런 짐승을 섬에 풀어놓겠다하자 우산국 사람들이 겁을먹고 항복했다고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독도 이야기할때 지증왕때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을 정벌했다로
이야기 되는거 같습니다
지증왕은 키가 컸는데 삼국유사에 기록에는
성기도 길었다고합니다,,1자 5치 1자를 18센치로 보면 오늘날 27센치 정도 되는거같은데요,,
이에 성기가 너무커서,, 왕비를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왕은 왕비를 찾으려 사자,신하를 보내 처녀들을 수소문하다가 모량부에서 거대한 똥을 발견했는데
사자가 마을로가서 똥의 주인이 누구냐했더니 모량부 상공의 딸이 싼 똥이라해서,,
이에 모량부 딸을 보니 키가 7자 5치였다고합니다
이당시 도량기준이 정확히 몇센치인거는 알수없으나
상공의 딸의 키는 170cm~2m 정도 되지않았을까요
지증왕은 모량부 상공의 딸과 결혼하고 이분은 법흥왕의 어머니가
됩니다 연제부인인데요 지증왕이 62세에 왕이됬다는데 왕비를
62살 이후에 맞았다는거는 이거도 연표가
이상한거 같습니다 왕이 되기전에 이야기였을까요 아니면
신격화적인 그런 이야기라는 말도 있는거 같습니다
불국사 고금창기에는 법흥왕 재위기간에 법흥왕 어머니 연제부인이
원해서 불국사가 건축되었다고합니다
지증왕때는 얼음을 저장하고 선박 이용법도 만드는거 같습니다
지증왕 위인전은 못본거같은데요 순장을 폐지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선례를 남긴 업적 같습니다 또 다른 정책들도 유능했던 왕같습니다
역시 이분도 세종대왕같이 클래스가 있는 그런 왕같습니다
첫댓글 일년중 달이 가장 밝다는 정월대보름날 저녁입니다.
등근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대보름
모든 액운 떨쳐버리는 날되시고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2월10일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네요
주말과 휴일은 즐겁게 잘보내셨는지요
요즘 신종 코로나때문에 어디다니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건강한 한주 좋은일 가득하시고 웃음으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