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12
흰 눈 사이로 찾아 나선 동물 발자국
<집안에 들어온 짐승도 살려 보낸 정선 사람들>
“할아버지, 글쎄 있잖아요. 노루 두 마리와 비둘기 몇 마리가 닭장에 들어왔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나는 닭장에 들어온 짐승을 보고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와서 할아버지께 알렸습니다.
“얘야. 살려고 집안에 들어 온 짐승은 잡지 않는 거란다. 먹이를 가져다주거라.”
눈이 지붕에 닿도록 내린 겨울이었습니다. 노루 두 마리와 비둘기 몇 마리가 닭장으로 들어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 온 짐승이 택한 피난처였지요. 그렇게 할아버지는 문이 열린 닭장으로 들어 온 짐승에게 먹이를 주고 잡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옆에 가도 노루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지요. 노루와 비둘기에게 소먹이로 쓸 콩깍지와 옥수수를 주었습니다. 닭장에는 닭도 노루도 비둘기도 함께 지냈습니다. 닭과 비둘기는 모이를 같이 먹고, 노루도 콩깍지를 맛있게 먹으면서 겨울을 났습니다. 노루가 닭장에 들어온 사실이 재미있기도 해서 나는 매일 열심히 먹이를 주었지요. 닭장 문은 닫지 말라고 해서 종일 열어두었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나가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눈은 한 달여가 지나자 겨우 길을 낼 정도로 녹았습니다. 겨울 날씨치고는 햇볕이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아직 눈은 다 녹지 않았지만 먼 산에는 나무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할아버지, 비둘기와 노루가 집을 뛰쳐나갔어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날씨가 좋아지자 닭장에 들어온 노루와 비둘기는 스스로 집을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본 터라. 노루가 집을 나가는 장면을 봤지요. 마치 인사를 하듯 멀거니 서 있는 나를 힐끗 보고는 조금 멈춰 있다가 대문 밖으로 길게 뛰었습니다. 참 멀리도 뛰었습니다. 비둘기도 닭장을 나와 마당 가 나무에 앉아서 마치 인사를 하듯 있다가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냥 두어라. 노루는 쫓지 말고, 가게 두어라.”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루는 앞집 밭으로 길게 발자국을 내었고요. 그것을 본 동네 장정들이 언제 모였는지, 빙 둘러서서 노루 몰이를 하였습니다. 나는 벌써 노루와 정이 들었던가 봅니다. 노루가 빨리 도망가기를 빌었습니다. 노루는 동내 장정들의 몰이 울타리를 벗어나서 골지천 강을 건너 문래산으로 껑충껑충 달아났습니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집안에 들어온 노루 한 쌍과 비둘기 떼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잘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집안에 들어온 짐승은 잡지 않는 거란다.”라는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어쩌면 이 정신은 정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요.
<처마 옆 벽에 설피, 창, 썰매가 걸려 있는 이유>
할아버지는 사실 젊었을 때 대단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우리 집 굴뚝 옆 처마에는 날카로운 창이 있었습니다. 긴 자루가 꽂힌 채 말입니다. 그리고 창 옆에는 검게 그을린 끈을 늘어뜨린 설피가 있었고요. 매끄럽게 잘 깎고 코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휜 썰매도 있고요. 물론 그 설피와 썰매는 겨울이 되면 제 놀이기구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긴 자루가 꽂힌 날카로운 창은 만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창은 언제 쓰신 거예요?”
“허허. 그 창으로 멧돼지를 몇 마리 잡았단다.”
할아버지는 내 물음에 무용담을 말씀하셨습니다. 겨울 눈이 내렸을 때 멧돼지 사냥을 나갔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들어라!”
멧돼지를 눈밭에서 만나면 창을 땅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커다란 멧돼지와 할아버지는 눈을 마주쳤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할아버지도 멧돼지도 눈을 내리까는 순간에 죽는 것입니다. 그 순간 멧돼지의 음[어금니]은 할아버지를 향해 찌를 것이고요. 할아버지가 든 창은 멧돼지의 간(肝)을 향해 찌를 겁니다. 정말 일촉즉발의 순간입니다. 그렇게 “들어라!”라고 소리치면 멧돼지는 사람을 향해 돌진합니다. 저돌적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저돌적(豬突的)은 바로 멧돼지가 과녁을 향해 앞으로 내닫는 상황을 말한 겁니다. 그때 창끝을 정확하게 멧돼지 간에 적중하도록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멧돼지는 창끝에 간이 찔려서 “꽥”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지고, 그 순간 사람은 몸을 피해야 합니다. 멧돼지는 창이 간에 찔려야 다시 살아나서 사람을 향해 돌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멧돼지 잡은 무용담을 얘기했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집 밖을 나가 사냥하는 어려움을 알면서도, 집안에 들어온 짐승은 돌려보내는 일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요.
<토끼 사냥에 얽힌 추억>
그런데 사실 저는 멧돼지 고기를 한 번도 맛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어렸을 때 먹을 수 있었던 산짐승은 산토끼와 꿩과 참새가 전부였지요. 정선 사람들 대개가 그랬을 겁니다. 멧돼지를 잡아도 쓸개와 고기는 목돈을 벌려고 팔았거든요. 먹을 수 있어도 한두 번이 다였습니다.
그러니 산토끼는 정말 정선 사람들을 키웠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 눈만 껌뻑껌뻑할 때 최고의 단백질이 토끼였지요. 꿩은 그래도 먹을 고기가 있지만, 참새는 먹을 살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기 한 저름 먹겠다고 애쓰던 생각이 납니다.
눈이 오지 않으면 토끼 다니는 길목에 올무를 놨고요. 눈이 오면 동무들과 토끼몰이를 갔습니다. 물론 토끼몰이를 해서 토끼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동무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 토끼몰이를 했다고 봅니다. 그렇게 어쩌다 토끼를 잡으면, 그날은 정말 식구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토끼탕, 토끼만두는 겨울 양식의 일부였으니까요.
그런 토끼 사냥을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에 한 마리씩 가져왔고요. 삼촌은 하루 건너 한 번씩 가져왔습니다. 물론 저는 매일 허탕이었지요.
<아버지가 가져온 노루 발>
할아버지의 사냥 실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했던 가봐요. 제가 기억하는 일은 노루 발이 전부였거든요. 그래도 아버지의 무용담이 제게는 자랑이었습니다.
“이거 네가 가지고 놀아라.”
힘줄이 네 개 달린 노루발을 아버지가 제게 선물했습니다. 그 노루발은 겨우내 제 장난감이었습니다. 어느 힘줄을 당기냐에 따라 발가락 반응이 달랐습니다. 노루발에 달린 하얀 힘줄은 어린 나에게 슬픔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울음이 나는 이유가 아닐까요. 아버지의 말 없는 사랑에 눈물이 나서 차마 글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멧돼지 사냥을 가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주루막에 넣을 음식을 장만하던 모습, 발싸개를 준비하시던 모습, 파출소에서 총을 빌리시던 모습,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놓고 비시던 모습, 선창을 못 해 노루발만 가져와서 사냥 얘기를 들려주시던 모습, 살아 돌아오셔서 고마워하며 가족들이 안도했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래도 노루발로 제 장난감을 주셨던 아버지가 몹시 자랑스러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