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으로서 당연" 간암 투병 아빠에 선뜻 간 내어준 고2 아들
입력2023.08.31. 오후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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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안산병원, 9일 부자간 생체 간이식수술
(왼쪽부터) 고대안산병원 장기이식코디네이터 김예지 간호사, 간담췌외과 김상진 교수, 이 모 씨 부자. 사진 제공=고대안산병원
[서울경제]
“한창 중요한 시기인데...(아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죠. ”
최근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은 이모(49·남) 씨는 선뜻 자신의 간을 내어준 16살 아들을 향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31일 고려대안산병원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9일 이 병원에서 고2 아들이 기증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환자와 아들 모두 건강을 회복 중이다.
하지만 간을 기증할 공여자를 찾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15년부터 B형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를 앓아온 환자다. 집 근처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증상이 악화되어 4년 전부터 피를 토하는 증상이 나타나 고대안산병원에서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5월에는 간암 진단을 받고 간 이식을 고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간 이식은 크게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잘라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 이식'과 뇌사 기증자의 간을 이식하는 '뇌사자 간 이식'으로 나뉘뉜다. 국내에서는 뇌사자 기증이 드물어 가족 또는 친척 간 생체간이식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성인 보호자가 우선적으로 대상자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맨 처음 검사를 받았던 환자의 배우자는 간의 크기가 작아 공여자로 적절하지 않았다. 환자의 여동생은 B형 간염을 앓고 있었고, 슬하에 2명의 아들 중 첫째는 기흉으로 기증이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 둘째 아들이었다.
만 16세인 이 군은 법적으로 간 기증이 가능했지만, 의료진과 가족 모두 깊은 고심에 빠졌다. 수술에 따른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이 군의 어린 나이가 걸렸던 탓이다. 의료진들은 이 군이 만 17~18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식을 진행하는 차선책을 고려했다. 하지만 이 씨의 상태가 위독해 1~2년을 미루기엔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 간을 기증하겠다는 이 군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날 수술대에 누웠다. 간이식 수술팀이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먼저 김상진 간담췌외과 교수가 아들의 간 일부를 적출했고, 한형준 교수가 이를 넘겨받아 환자에게 이식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들은 빠르게 회복해 11일 만에 퇴원했고, 이 씨도 퇴원을 앞두고 있다.
이군은 수술을 받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조금 두려웠지만 아빠를 살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본인이 가족 중 유일하게 아빠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간을 기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병상에 앉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 씨는 아들의 팔을 잡아 몸 쪽으로 끌어당기며 “(아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고 말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지난 2018년에 안암병원, 구로병원, 안산병원까지 3개 병원을 아우르는 통합간이식 진료팀(LT-KURE·Liver Transplantaion &-Korea University Remedy Ensemble)을 출범했다. 의료원 산하 3개 병원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인력과 자원, 운영 프로그램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뿐 아니라 개별 병원의 강점과 수술 노하우를 결합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생체 간 이식의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이식 수술을 집도한 한 교수는 “환자는 간경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로 내원했고 계속된 치료에도 간암 재발의 위험이 있어 이식이 불가피했다”며 “간 이식은 수술 이후 꾸준한 관리도 중요하다. 환자와 기증자 모두 건강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향후 진료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