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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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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김종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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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대지진이라고 하니까, 지금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전대미문의 자연재앙인 셈이다. 12월 26일 일요일의 남부 아시아의 해변지역에 들이닥친 지진해일로 사태 발생 후 일주일이 경과한 현재까지 15만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더 많은 사망자가 확인될 것을 예상하고, 또 영영 확인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은 실종자들을 고려하면, 실제로 희생자는 수십만명을 훨씬더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기막힌 사태이다. 이맘때쯤 연말연시의 축제 분위기 속에 젖어있어야 할 온 세계의 도시가 침울한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큰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순전히 인명피해의 수를 가지고 생각해보더라도, 이번 지진해일로 인해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의 수는 재작년 3월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침공에 의해 ‘부수적 손상’을 입어 희생당한 이라크 사람들의 수와 거의 맞먹는다. 혹은, 순간적인 참화의 기록으로 본다면, 이번 희생자 수는 1945년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로 인해 즉사한 인명에 필적할 만한 것이다. 물론, 자연적 재앙과 전쟁으로 인한 참화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라크전쟁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낼 것인지 아직도 불투명한 상황이고, 또 그동안 죽은 사람들 이외에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 집을 잃고, 삶의 터전과 수단을 잃은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처한 곤경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 전쟁에 의해 사람뿐만 아니라, 생태계가 입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고려하면, 이 불의(不義)의 침략전쟁을 자연재해에 비교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히 부도덕한 행위인지 모른다. 히로시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평양전쟁 종식 후 수많은 증언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듯이,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목적에 국한해서 볼 때 전혀 불필요한 공격이었다. 실제로 이미 다 이긴 전쟁에서 일본으로부터의 항복을 겨우 며칠 일찍 받아내는 효과 이외에 군사적인 효용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인구가 밀집된 일본의 두 도시의 상공에서 실제로 원자탄을 터뜨렸고,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아비규환의 지옥도였다.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10만명, 며칠 후 나가사키에서 8만명이 즉사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죽은 자의 ‘행운’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전후(戰後) 6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때의 방사능 피해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다는 사실은 원자탄이라는 가공할 무기가 얼마나 끔찍스러운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일본의 항복을 촉구하려는 1차적인 목적 이외에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 나라에 대하여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겁을 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른바 원폭의 아버지라고 하는 오펜하이머를 위시해서 맨해튼 계획에 참가했던 여러 과학자들이 히로시마 원폭투하의 뉴스를 듣고,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저질러놓은 참상에 충격을 받으면서, 그들이 만든 폭탄이 왜 하필 도시를 공격대상으로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고 하지만, 과시적 목적을 위해서도 미국은 도시를 공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떤 증언에 의하면, 이미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도시들이 완전히 초토화될 만큼 미군의 재래식 폭탄에 의한 맹렬한 공습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미군 지휘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일체의 공습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예정대로 원폭이 투하될 경우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주는지를 좀더 극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두 도시가 그때까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결코 파시즘에 대한 투쟁이라는 명분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너무도 어이없이 반인간적이며 반문명적인 전쟁 종결 방식이었다.
히로시마의 경험은 삽시간에 10만명이 넘는 인명을 희생시키고,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불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남부 아시아가 겪은 재앙에 그나마도 가장 가깝게 비교할 수 있는 비극적인 재앙인지 모른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전쟁으로 인한 재앙과 자연적 재앙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것이 단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할 만한 측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견해가 표명되고 있지만, 설혹 그런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진도 9에 가까운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으킨 위력적이고 급격한 바닷물결의 사태(沙汰) 앞에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기경보 체계가 확립되고, 잘 작동하였다면, 인명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그런 점에서 그러한 쪽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인위적인 대책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결국 한계를 노정할 뿐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지진해일을 영어에서 쓰나미(tsunami)라고 표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본래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는 나라, 즉 일본 사람들의 말[津波]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은 작년에도 니가타(新瀉) 지방에 닥친 지진으로 엄청난 재난을 경험했고, 1995년 한신(阪神) 지방을 휩쓴 대지진은 전후 수십년 동안 쌓아올린 고도 경제성장의 성과를 일시에 붕괴시킴으로써, 양심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경제대국 일본의 진로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성에 관련하여 일시적이나마 치열한 논의를 촉발하는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여하튼 일본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크고작은 지진에 의해 시달림을 받아왔고, 그 결과로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생활수칙들이 발달되어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끊임없는 예측불허의 지진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내면적, 정서적 삶이 일정한 영향을 받아왔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일본의 저명한 보수적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梅原 猛)는 언젠가 일본문화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괄목할 만한 일본 특유의 정서로 ‘천연(天然)의 무상감(無常感)’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러한 정서의 존재를 빈발하는 지진에 대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지진의 파괴력 앞에 속절없이 노출됨으로써 일시에 자신들의 삶과 삶의 기반이 손상되거나 송두리째 소멸해버리는 사태를 되풀이하여 경험하는 동안에, 결국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자신들의 삶 역시 덧없고 일시적이라는 의식이 그들의 내면 속에 깊이 각인되어왔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이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보다도 더 농후하게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문화감각과 생활 스타일을 발전시켜온 것도 이런 점에 관계되어 있는지 모른다. 과연 ‘천연의 무상감’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철학자 우메하라의 설명이 얼마나 견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전통사회에서 일본의 문화가 인간의 삶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테두리로서의 자연적인 한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는 바탕 위에서 구축되어 있었다는 지적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져보면, 이것은 비단 일본의 경우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지금은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큰 재앙이 닥쳐야만 비로소 잠깐 의식하게 되지만, 전통적으로 농경을 토대로 생활과 문화를 일구어왔던 사회에서는 인간생존의 자연적인 한계에 대한 의식은 일상적 생존방식에 뿌리로부터 빈틈없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복한 삶은커녕 단순히 생존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따로 있었으며, 농번기가 있고, 농한기가 있었다. 땅도 겨울이면 사람처럼 쉬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가을이 되어 나락이 여물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합병되었음을 지리산 기슭에서 한달 뒤에야 처음으로 알고, 한편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黃玹)은 생전에 조선의 농촌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적지않은 시를 지었다. 그런 그의 소품의 한 대목에 “궁촌(窮村)이라 오이가 더디 익는구나”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지만,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오이라도 따먹고 싶은 간절한 사람의 심정을 여실히 담고 있는 이 표현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당시의 궁핍했던 농촌 살림만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아무리 사람의 욕구가 절실하다 하더라도 자연의 질서는 사람의 인위적인 행위로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근원적인 인식이 흔들림 없는 전제가 되어있는, 한 오래된 문화에 뿌리박은 소박한 감수성이다. 매천의 시가 씌어진 지 거의 100년이 경과한 지금, 우리는 아무 때나 계절에 관계없이 우리가 먹고 싶은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한겨울에 수박과 참외, 혹은 딸기를 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바나나, 키위, 파인애플과 같은 과일을 보아도 그런 것들이 우리와 기후풍토가 너무도 다른 먼 나라에서 값비싸고 긴 수송과정을 거쳐 도달한 수입농산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사람도 드물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이며,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어 확대순환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권장되는 것은 투자와 소비이다.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의 식탁에 도달하는가를 아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먹는 것에 관련해서 이따금 도시 사람들이 특별한 관심을 드러낼 때는 대개 자신의 건강문제에 연결되었을 때이다. 수십년에 걸친 산업화된 농사 관행의 결과, 국산이든 수입농산물이든 대체로 거의 모든 식품이 안심하고 먹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은 누구든 아는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기계화와 화학물질 남용으로 토지 자체가 오염될 대로 오염되고, 농촌공동체가 사실상 소멸되어 가는 오늘의 상황에서 오염되지 않은 농산물의 생산이란 지난한 목표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소비자들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구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친환경 유기농산물’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법칙에 따르는 또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품’의 생산에, 근본적으로 인위적인 노력의 범위를 넘어가는 자연적인 제약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강을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식품이란 토지와 기후와 같은 자연적인 조건에 조화를 이룬 지혜롭고 책임있는 농사의 소산이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농사는 건강한 농촌공동체의 존재를 떠나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흙이라는 근원적인 존재의 지평을 벗어날 수 없는 한, 아무리 수준 높은 과학기술 시대에 있어서도 변함없는 진실이다. 좋은 농사는 땅의 성질을 잘 알고,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땅에 대한 상호협동적인 충성과 보살핌이라는 덕행(德行)의 실천 없이는 기대할 수 없고, 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오래된 농촌공동체 속에서 쌓여온 깊은 지혜와 기술의 바탕 위에서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지금과 같은 사고의 불능(不能) 상태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설혹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두배, 세배가 된다 하더라도―아니, 그러면 그럴수록―믿을 수 있는 농산물의 지속적인 공급은 허망한 꿈 속의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혹한의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딸기와 수박을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토지와 기후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재배되는지, 그 결과 토지를 황폐하게 하고 지하수를 고갈시키는 데 이것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러한 반자연적인 ‘상품’생산의 지속가능성은 처음부터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오늘날 산업화된 농업은 여타의 근대적 산업방식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일시적 풍요를 위해서 장기적인 생존의 토대를 끝없이 갉아먹고 있다. 그것은 현세대의 터무니없는 욕망을 위해서 미래 세대의 생존을 극히 위태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근본적으로 무책임한 폭력의 체제이다. 미래 세대뿐만 아니다. 지금 산업화된 농업이 강요하는 단작(monoculture)에 의해서 주곡 생산은 방기된 채 미국과 유럽과 일본과 그밖의 제3세계 엘리트 계층을 위한 기호품을 생산하는 데 골몰함으로써 스스로는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 도처의 이른바 저개발 지역 농민들의 상황은 구조적으로 실제 식민지적 상황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적 상황에서 땅을 사랑하는 농민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슈마허는 옛 로마가 망한 가장 큰 이유가 토지를 잘못 다룬 데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로마 문명은 본질적으로 정복의 문명이었고, 따라서 끝없는 영토확장과 이민족 정복을 위해서 로마의 농민들을 병사로 징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로마 본토의 토지는 방기되어 폐허가 되었고, 로마인들의 식량은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식민지에서 조달되었다. 그러나 그 식민지의 농토는 정복된 사람들, 즉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진 현지 주민들이 로마의 압제 밑에서 아무런 애착 없이 억지로 경작할 수밖에 없었기에 토지는 난폭하게 다루어지고, 엄청나게 혹사당했으며, 그 결과 특히 북아프리카의 땅은 어느덧 빠르게 사막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의 문화와 생존에 닥쳐오고 있는 가장 위협적인 것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미 세계 전역에서, 세계화 경제의 지배논리가 강요하는 농산물 시장개방이라는 미증유의 폭력에 의해서 수많은 농민과 토착민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누려온 자립적 생존기반을 근원적으로 상실해 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가트(GATT)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닥치기 전에, 그리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 이전에 이미 농민과 농촌공동체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록적인 한국의 고도경제성장은, 간단히 말해서, 전면적인 농업의 희생을 기초로 달성된 ‘성과’였다. 수십년에 걸친 경제개발,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촌은 무엇보다 산업활동이 필요로 하는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이 때문에 곡가는 늘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수준을 감내해야 했고, 날로 텅 비어가는 농촌에서 농업노동력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기계와 화학물질의 사용이 광범위하게 도입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런 과정에서 농토는 끊임없이 잠식되고, 남아있는 땅은 심각하게 혹사당하거나 오염되었고, 안심하고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푸념이 일상적으로 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식량자급률은 갈수록 떨어져 25% 수준에 지나지 않게 되고, 전인구의 8% 이하로 떨어진 농촌인구는 그나마도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어 조만간 다른 요인이 가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동체로서의 농촌과 그 문화는 한국사회에서 저절로 소멸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이러한 농업의 전면적인 쇠퇴와 농촌공동체의 소멸이라는 위협적인 현실에 직면해서 이 사회가 이것을 타개하고자 하는 방책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것을 다급한 위기로 인식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농업문제는 주로 임박한 쌀 개방을 둘러싼 논의에 집중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이슈는 단순히 농민들의 소득문제에 국한되어 있다. 농민들은 쌀 개방이 되면 외국 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많이 드는 국내 벼농사가 몰락하는 것은 필연적이며, 그 결과 지금까지 그나마 농민들의 생계를 지탱해주었던 마지막 근거가 사라질 것에 대한 절박한 두려움 때문에 차가운 겨울의 거리로 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과 언론과 대부분의 도시 소비자들은 한국의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는 토대 위에서 쌀 개방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한국농업도 언제까지나 보호막에 갇혀 있을 게 아니라, 세계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운―수십년 동안이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공허한 얘기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정부의 농정계획 가운데는 앞으로 농가의 소득배가를 위한 방책으로 농업종사자 수를 대폭 더 줄이고, 그 대신 10만 내지 20만명의 전업농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한국의 농업을 전담케 한다는 시나리오가 들어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농업종사자의 수를 줄이면 농가의 소득은 확실히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농촌공동체가 사라지고, 따라서 진정한 농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수의 농업 전문 인력에 의해서 기계화, 화학화의 농법으로 대규모 경작은 얼마동안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농사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것은 농업 전문 기술자들이 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마치 전업농 10-20만명 육성이라는 시나리오가 대뜸 우리들에게 유명한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養兵說)을 연상시켜주듯이, 그러한 농업 전문 기술자들은 더이상 농민이 아니라, 한국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식량확보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서 선발된 전사(戰士)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암울한 상황이다. 명백히 파국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근본적인 방향전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산업화를 시작하여 농민의 급격한 감소를 선진적으로 경험했던 영국에서조차도, 더욱이 온 세계에 방대한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던 대영제국의 번성기에도 영국사회에는 전인구의 20%를 넘는 농민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영국에서도 농민인구가 극도로 감소하여 1%가 조금 넘는 비율이 되었지만, 식량자급률만큼은 거의 100%를 넘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소위 선진국들에서 농민인구의 극적인 감소현상에도 불구하고, 100% 이상의 식량자급률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대규모 기계화와 화학화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도 최근의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이 명백히 보여주듯이 장기적으로는 매우 불안하고 위태로운 농사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농민과 그들의 공동체가 바탕이 되어있지 않은 농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식민지가 따로 있지도 않은 한국이 세계 제일의 낮은 식량자급도(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를 기록하면서, 농민이 사라진 사회를 향해 나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과연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인지 묻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인 문제로,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간다면, 우리가 먹는 식품은 대부분 수입을 통해 들여와야 할 것인데, 그것은 결국 세계 어디선가의 농토와 농민들을 수탈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쌀이 개방되는 날 세계시장에서의 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토지에 갈수록 무겁게 가해질 압력은 한국의 경작 가능한 모든 땅을 사실상 식민지로 만들어버릴 공산이 크고, 끝내 토지의 광범한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말할 것도 없이, 수출의 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발전이라는 전략이 허용되는 세계무역의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인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벌써 심각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 고용문제, 점점 가망 없어 보이는 사회복지 시스템, 빈부격차의 심화와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적 갈등, 그리고 깊이와 교양이 갈수록 상실되어 가고 있는 정신적 삶의 공간…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러한 풀기 어려운 인간적 재난들이, 농민과 농촌공동체의 죽음을 대가로 한 더 많은 수출, 경기부양, 성장경제의 확대에 의해서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실제로 전무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재난과 사회적 모순은 본질적으로 농민과 농촌공동체의 쇠퇴와 더불어 발생하거나 심화되어온 현상들이라 할 수 있고, 그런 한에서 사태의 원인을 외면하고 이루어지는 기술적 대책의 한계는 처음부터 명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도 지금 어김없이 다가오는 생태적 재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른다. 남아시아의 지진해일은 예를 들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여파가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킬지 우리더러 상상해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아시아의 이번 참사에 관련하여, 그동안 리조트시설을 확대하여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산호초와 망그로브 숲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데 앞장서온 국가와 기업들의 탐욕과 개발 이데올로기 때문에 지진해일의 피해가 더 컸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경이냐 경제냐 하는 양자택일을 늘 강요하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고를 단순화시키고 비판적인 물음을 봉쇄하기 일쑤인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들이 세계화의 이름으로 지금 우리더러 가자고 하는 방향은 공멸의 길이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은 무엇보다 사물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되풀이하여 물어볼 수 있게 하는 우리 자신의 비판적 상상력에 달려있다. 농민과 농촌공동체가 사라지고, 수천년 동안 인간문화의 핵을 구성해왔던 농적(農的) 가치들의 재생산 기반이 돌이킬 수 없이 상실되어버린 뒤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이것은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도 먼저 물어보아야 할 물음이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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