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또 한 번의 기적에 도전
필리핀에 있을 때, 오른쪽 눈에 출혈이 다시 시작되어 지난 5월 7일에 서울로 급히 귀국해서, 다음 날 강남 대치동에 있는 누네안과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치료했던 서울대병원 안과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검사를 받고, 동공에 망막 주사를 맞았습니다. 두 번째 주사는 한 달 후, 6월 5일이었습니다. 그래서 6월 5일 병원에 갔는데, 의사로부터 상상하지 않았던 말을 들었습니다. “주사를 맞으셨지만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동공에 더 많은 피가 고여 있어서 급히 수술해야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수술이냐고 물었습니다. 동공을 여는 수술이며, 병원에 3일 입원해야 하고, 퇴원 후에는 1주일 동안 엎드려 생활해야 하고, 잘 때도 엎드려서 자야 하고, 한 달 동안 절대 안정이 필요하기에 비행기도 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위해 초음파 검사까지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수술 날짜가 급하게 잡혔습니다. 그 일정대로 한다면, 눈앞에 있는 미얀마 선교와 필리핀 선교 모두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누네병원은 대학병원 다음가는 안과 전문병원이었습니다. 그런 병원에서 저에게 허튼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잠시 복도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술만 담당하는 부서를 찾아갔습니다. 병원 규모는 대단했습니다. 강남 대치동에 세워진 15층 빌딩 전체가 안과병원이었고, 의사도 많고, 의료진도 많고, 수술 상담사만 10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7번 방 상담사에게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저의 결정을 전하고, 이미 정해진 수술 일정을 취소해달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모니터를 켜고 제 눈의 상태를 보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상태라고 저를 다시 설득했습니다. 저는 수술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실 선교사인데 눈앞에 미얀마와 필리핀 선교가 있어서 수술이 아니라, 주사를 맞고 선교지로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상담사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치료받았던 서울대병원으로 직접 연락을 했습니다. 누네병원에서는 이미 담당 의사가 [수술만 가능]이란 차트가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누네병원에서는 주사를 맞을 수 없었습니다. 그 상담사는 제 앞에서 전화기를 들고 매우 급한 환자라고 설명하면서 진료를 부탁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상담사는 잠시만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1분 후에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제 카톡으로 먼저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6월 10일 월요일 오후 3시 45분에 예약되었다는 문자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상담사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그 상담사는 저보다 더 기뻐하면서 서울대병원에서 좋은 치료가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6월 6일 목요일 저녁 7시에 충격적인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6월 17일부터 모든 진료 과목에 대한 휴진을 결의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뉴스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6월 7일 금요일 아침에 서울대병원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6월 10일에 예약된 안과 진료가 취소되었으니, 가까운 안과로 가라는 안내 문자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무게를 느꼈습니다. 아내는 누네병원을 제외한 서울에 있는 다른 안과병원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유명하다는 병원들은 최하 3개월에서 5개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1개월 후에 예약이 잡힌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 서울대병원에서 맞았던 동일한 주사를 맞을 수 있느냐고 먼저 문의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주사약은 오직 대학병원에서만 줄 수 있는 약이라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누네병원에서 맞았던 주사도 [2급 주사약]이었던 것입니다.
6월 9일에 서울 종로 인사동에 있는 승동교회 주일예배로 나아갔습니다. 백정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무엘 무어(Samuel F. Moore)선교사가 131년 전에 설립한 제1호 교회였습니다. 약속도 없이 찾아간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 6월 16일이 교회창립주일이라고 했고, 그때 장로, 권사 임직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담임목사님과 함께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시간이 길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최영태 담임목사님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찾아온 목적만 1~2분 말씀드리고 가려고 했었습니다. 저는 내년에 필리핀 바농목사와 미얀마 리안목사를 한국에 데려오려고 합니다. 1주일 동안의 한국교회 방문을 통해서 그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싶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시작으로, 한국초대교회 순교자 교회들을 방문하고, 전남 광주에 있는 서서평선교사 묘지를 방문하고, 여수 애양원교회, 애양병원, 소록도교회, 기장 창대교회를 방문한 후에, 마지막 날에는 서울로 올라와 승동교회를 방문해서 평생 버려진 백정들을 위해서 살다가 결핵으로 조선 땅에 묻힌 사무엘 무어선교사의 생애와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들이 다시 필리핀으로, 미얀마로 돌아가 사무엘 무어처럼 버려진 한센인들을 위해서 그들의 남은 삶을 온전히 헌신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목사님께서 너무 기뻐하시며, 승동교회에서 그 마지막 투어에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맛있는 점심까지 대접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 가슴에 한가지 확신이 들어왔습니다. 약속도 없이 승동교회로 무작정 들어가 예배하고, 끝까지 기다렸다가 최영태목사님까지 만나서 생각도 하지 않는 선교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우리 병원으로 오지 말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그 서울대병원으로 내일 들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6월 10일 월요일, 오지 말라는 서울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썰렁했습니다. 간호사들도 없었습니다. 분주했던 식당에도 사람이 없었습니다. 안과 접수 창고에도 사람이 없었습니다. 입구에 도착 접수대 키오스크(Kiosk)가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안내자가 항상 그 앞에 있었는데, 그 사람도 없었습니다. 혹시 하여 제 서울대병원 ID 카드를 스캔하는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니터에 [접수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고, 밑에서 안내문이 빠져 나왔습니다. 42번, 41번, 44번에 가서 망각 검사를 받고, 7번 방으로 가서 박운철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대기 끝에 오후 4시 30분 드디어 의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검사받은 모든 사진을 보고 의사는 “피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누네병원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교수님, 다음 주에 제가 미얀마로 가야 합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수술을 받으라 하시면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십시오. 오늘 주사를 맞고, 한 달 후에 와서 재검했을 때, 제 상태가 악화하여 수술해야 한다면, 그때는 모든 일정을 접고 무조건 수술받겠습니다. 오늘은 주사를 원합니다.” 의사는 “미얀마에는 얼마나 있습니까?” “1주일입니다.” “그러면 오늘 주사를 드릴테니 일단 미얀마를 다녀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동공에 주사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6월에 미얀마 선교, 7월에 필리핀 선교, 8월에 대구집회, 9월에 미주집회, 10월 필리핀 의료선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플 수 없는 일정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순간(the last minute)에 일어나는 주님의 “영광의 터치(the touch of glory)”를 굳세게 믿습니다. 다음 달에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굳세게 믿습니다. 서울대병원의 다음 진료일은 7월 8일입니다. 저는 수술이 아니라 다시 주사를 원합니다. 그래야 선교의 일정들을 차질 없이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꼭 그리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6월 19일에 미얀마로 갑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양한갑선교사의 오른쪽 동공에 피가 가득한 사진을 올립니다.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