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 동안 사느라고 바빴다. 나를 위한 준비는 하나도 하지를 못했다.
옆을 볼 여력도, 사람들과 마주 볼 여력도 없이 오로지 눈물과 한숨과 외로움으로 살았던 시간들이였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할 수 없었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당장 내 앞에 산재 되었는 숙제들.
두 아들을 성년이 될때까지 키워야 했었다. 그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부모 잃고 살아야 하나. 자식을 둔 에미로서 자식의 미래를 망칠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피하고, 그 어떤 사치도 피하고,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도 피하고 오로지 앞 길만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의 노후를 준비없이 마주 하게 된 것, 이제 무엇을 하고 싶어도 나이의 제한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체력과 건강이 받춰주지 않은다는 것이다. 평생을 살림을 멀리하고 일만 하고 살아왔기에 중년 여성들의 우울증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하고 그들을 조금은 경멸했다. 지금은 내가 이 처지가 되다보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대해선 함부로 이야기를 하면 안되다는것을 다시금 깨닫고 그들을 아픔을 조금은 이해하며 나의 혼란과, 무방비 상태,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나는 재주가 정말 하나도 없다.
글쓰는 재주
그림 그리는 재주
뜨게질 하는 재주
운동을 하는 재주 등등 취미도 특기도 없다. 혼자 여행하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영화를 보고 늘 혼자의 삶을 즐겼다.
그러다보니 주위에 친한 벗이 없고, 또 누가 옆에 있다면 그 자리가 엄청 부담스럽다.
나하고 코드가 안맞는 사람들은 외면하고, 쳐다도 보지 않고, 지금의 윤석열을 보는 것만 같다.
내 마음에 안들면 단절하고, 외면하고,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통크게 밀어주고, 타인보다는 나 위주로 편한 삶을 살았던 것 겉다. 아마도 꼬마 대장이 하고 싶었던게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누구에게도 신세지고 싶어하지 않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동탄 송동 성당은 매주 금요일은 10시 미사가 있다. 어제 저녁에 실수한것이 있어서 정정하려고 성물방을 갔는데 이쁜 자매님이 미사보를 제일 비싼것으로 두 개를 구매한다고 한다. 그 이쁜 자매님은 항상 성당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