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호랑이가 살고 있는 반야사(般若寺) / 달이 머물다 가는 월류봉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지장산(地藏山)에 있는 절.
충북 영동군 황간면 마산리 산 44-15 (월류봉주차장)
2022-08-21(넷째 일요일)
경북 상주시 옥산면에서 벌초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달도 머물고 간다는 영동 반야사와 월류봉을
잠시 들려 봅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720년(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464년(세조 10)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백화산 석천 영동 반야사 반야사 서쪽 백화산 너덜지대
호랑이 한 마리 꼬리를 높이치켜 세우고변함없이 반야사를 지키고 있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들러 9일 동안의 법회를 끝낸 뒤, 신미(信眉) 등의 청으로 이 절의 중창된 모습을 살피고 대웅전에 참배하였다. 이때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세조에게 따라오라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동자는 “왕의 불심(佛心)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한다. 세조는 황홀한 기분으로 절에 돌아와서 어필(御筆)을 하사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다. 이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높이 1m의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각 72㎝의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경주 옥석으로 제작하여 개금(改金)한 것이다. 또, 대웅전 안에는 탱화 6폭이 봉안되어 있는데, 1890년 청주 보국사(輔國寺)에서 제작한 후불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神衆幀畫), 1753년(영조 29) 지례(知禮) 봉곡사(鳳谷寺)에서 조성한 지장탱화(地藏幀畫)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이 밖의 유물로는 높이 315㎝의 삼층석탑과 석조 부도(浮屠) 2기, 영위판(靈位板), 목사자, 청기와, 법고(法鼓), 범종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원래 절 동쪽 500m 지점의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경에 주지 성학(性學)이 대웅전 앞으로 이건하였는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창건 당시에 상원이 세웠다는 칠층석탑은 어느 때 없어졌는지 흔적이 없다.
영위판은 왕이 죽었을 때 영위를 봉안하는 판구(板具)로서 높이 105.5㎝, 너비 15㎝이다. 문수동자가 탄 목사자는 세조를 영천으로 인도하여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을 상징하는데, 높이 45㎝, 길이 45㎝, 너비 15㎝의 작품이다. 청기와는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용마루기와이다.
반야사삼층석탑(般若寺三層石塔)
반야사삼층석탑(般若寺三層石塔)
보물 제1371호. 전체 높이 315㎝. 반야사는 728년(성덕왕 27)에 의상대사의 10대 수제자인 상원화상(相願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1950년 경에 인근의 “탑벌”에 있던 탑을 운반하여 재건하였다고 한다.
기단부(基壇部)는 각 면석(面石)을 별석으로 조합하였고, 두 개의 우주(隅柱)와 하나의 탱주(撐柱)를 모각(模刻)하였다. 초층 옥신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흩어져 있는 탑재를 수습하여 세운 탑이다.
지대석(地臺石)을 양각하고 1층 기단석(基壇石)을 이루고 기단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양각하고 1층 옥신은 석등(石燈)의 화사석(火舍石)과 같이 전후로 꿰뚫리고 2, 3층 옥신에는 우주각(隅柱刻)이 명확하지 않다.
옥개(屋蓋)의 처마는 둔중(鈍重)하며 옥개 받침은 4단을 이루고 있으며 상륜부(上輪部)에는 4각의 노반부(露盤部)가 남아 있다.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옥개석의 전각(轉角)과 낙수면(落水面)의 경사 옥개석 받침 등 전체적인 구성이 신라 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계곡 아래로는 ‘차가운 물’이란 뜻의 한천(寒泉)이 달빛을 받아 더욱 차가운 빛을 발하며 휘돌아 간다.‘보름밤이면 달님도 머물고 간다.’는 충북 황간의 월류봉(月留峰) 밤풍경이다. 충북 내륙의 대표적인 오지. 깨끗한 계곡수와 빼어난 자태의 산을 찾는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은근히 잦은 곳이다. 혹시 달빛과 함께 하는 늦여름 휴가를 계획하는 당신이라면 황간에 주목하시라. 잘 뚫린 고속도로 덕에 수도권에서 두 시간 반이면 닿는다.
황간의 자랑인 ‘한천8경’은 이 월류봉을 비롯한 산줄기들이 품고 있는 여러 비경들을 이르는 말에 다름아니다. 월류봉이 한천과 몸을 섞는 끝자락에는 서수(瑞獸)의 뿔처럼 기암 하나가 솟아 있다. 그 위에 단청 곱게 칠한 정자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한천8경의 백미는 단연 월류봉이다. 말 그대로 ‘달이 머무는 봉우리’. 월류봉을 타고 오른 달이 서편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월류봉 주위에 시립해 있는 사군봉 능선을 따라 흐르듯 사라진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월류봉 아래를 흐르는 한천은 물이 차다해서 붙은 이름이다.“물한계곡 등 깊은 계곡을 돌아 나온 물이 도무지 덥혀질 틈이 없어 여느 계곡수에 비해 차다.”는 것이 고형청(66) 영동군청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냉천(冷泉)이라고도 불리는데, 지금은 사라진 한천8경의 하나인 냉천정도 거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얼음장처럼 차지는 않다. 그저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
비교적 수심이 얕은 곳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모래밭과 미루나무가 있는 풍경과 마주한다. 어릴 적 마을 앞 개천에서 흔히 보았던 낯익은 풍경이다. 모래밭을 가로질러 산자락을 20m쯤 오르면 정자에 닿는다. 이 곳에서 바라 보는 풍광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월류봉은 맞은편에서 보면 암릉들로 이뤄진 악산이지만, 뒤편에 보면 산세가 유순한 토산이다. 지레 겁먹고 등산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천리를 들머리 삼아 월류봉을 거쳐 원촌리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4시간 정도 걸린다. 월류봉 정상에서는 한반도를 빼닮은 원촌리 마을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