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과 패티 페이지
弱冠, 그러니까 스무 살의 나이에 진해 대야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었다. 임시 교사로. 나 참, 120명 중 5등으로 졸업했는데 말이다, 4등까지는 부산시내에 5등부터 진해와 마산 등지로 임시라는 딱지를 붙여, 교단에 세워 줬던 것이다.
엄청나게 방황했다. 스포츠 칼라 머리에다가 해군 카키복을 뒤집어 개량한 옷을 입고 다녔다. 출퇴근도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가끔 재건복이라고 하는 요즘의 김정은 인민복 비슷한 모양의 옷으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거리에는 한명숙의 '노란 샤스의 사나이'가 울려 퍼졌다. 레코드 가게에서 특히 심했다. 노오란 샤스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나는 좋아/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저런 인연으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쇼단이 들어오면 무조건 극장을 찾았고말고. 거듭 말하지만 한명숙이 특히 좋았다. 몸매도 그만이었고 얼굴도 예뻤다. 동명의 영화도 개봉되고 있었다. 엄앵란보다, 공연한 미스 코리아 손미희자보다 훨씬 한명숙이 좋았다. 가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내가 가수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일단(?) 가수 길로 가는 걸 포기하고 초등학교에 몸담았다가 교장으로 퇴임한다.
그로부터 딱 50년 뒤에 나는 정식 가수로 데뷔한다. 회장이 남진, 송대관, 태진아, 김흥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돈을 버는 대신 쓰면서-그러니까 일종의 봉사다-노래를 어지간히 부른다. 게다가 그들 가수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되었다. <실버넷뉴스>! 최고 수준의 인터넷 매체다.
한 달 전에 그 한명숙 선생을 인터뷰했다. 여전히 미인이었고, 얼굴에 주름살조차 찾기 힘들었다. 입을 열기 무섭게, 노오란 샤스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둘이서 노래를 불렀다. 동행한 편집국장도 흥얼거렸고. 그게 세 시간이나 이어졌지만 그는 지칠 줄 몰랐다. 마침내 패티 페이지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패티 페이지 하면 올드 팝송 I Went To Your Wedding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둘이서 그걸 입에 올렸다. 그리고 Changig Partners/ Tennessee Walz 등도--.
그런데 한명숙 선생의 발음(발성)이 너무나 정확해서 놀랐다. 정말 패티 페이지의 노래를 든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엇디.
"어떻게 그토록 정확하게 발음을 익혔습니까? 그리고 목소리가 정말 패티 페이지를 닮았습니다."
"노력이었지요. 미 8군 부대를 통해 데뷔했는데, 미군들은 그 당시 패티 페이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 흉내, 그러니까 模唱을 그렇싸하게 하는 바람에 인기도 얻었고--.당시는 텔레비전도 드물었어요. 녹음기에다 패티 페이지 노래를 담아서 밤낮으로 연습하는 거야."
"영어를 잘했습니까?"
"웬걸요. 내가 남한으로 올 때에는 영어 ABC도 몰랐습니다. 한글로 가사를 적어 그걸 영어로 발음하는라 얼마나 고생했는지--아니 원 투 유어(원츄유어) 웨딩/ 올도우 아이 워즈 드레딩/ --( I went to your wedding / Although I was dreading--) Although 발음이 얼마나 어려워요? 그걸 미군들한테 배운단 말씀이야. 죽자사자 하니 어느 정도 익혀지더군. f 발음 발음 They의 th 발음 등도 그렇게 익혔어."
"대단하시군요.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 부르실 수 있겠지요."
"그럼, I can't stop loving you/ I' ve made up my mind--내 발성이 어때요?"
'제가 보기에 나무랄 데 없습니다. 'can't stop'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놀랐습니다.
그에게 지금은 영어를 아느냐고 물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한 어떻느냐는 자문자답으로 인터뷰의 막을 내릴 준비를 했다.
아무튼 한명숙 가수는 아직도 쟁쟁한 최고 가수다. 그리고 품격 있는 노래만 부르는 가요계의 거목이다. 수원시 팔달구 우면동에 그의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있다. 쪼들리는 것 같은데, 그는 그런 소릴 잘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에 팝송 가수가 더러 있으리라. 패티 페이지의 노래를 갖고 한명숙 선생과 대결을 시켜 보면 정말 기막힌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의 말대로 노래를 영혼으로 부른다는 의미에서 보면 승자는 한명숙 선생 쪽이리라. 그래도 그의 노래는 역시 '노란 샤스의 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