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취임하자마자 양국 신경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15년 부통령이던 바이든이 뮌헨안보포럼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모습이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화해 모드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미국과 독일 사이가 삐걱거리고 있다. 갈등의 씨앗은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용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건설 공사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힘을 키워준다며 이 공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독일은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일 발트해에서 노르트스트림2 송유관 설치 공사를 하고 있는 러시아 선박 ‘포르투나호’를 제재 대상으로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날 취해진 조치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제재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역시 2016년 이 공사를 가리켜 “유럽에 나쁜 일”이라고 했다.
‘노르트스트림2’ 사업은 러시아 서부에서 출발해 발트해를 지나 독일 북부에 이르는 길이 1225㎞의 해저 가스관 건설 공사다. 2018년 착공해 현재 공사가 94% 완료됐다. 한해 수송량이 550억㎥로, 연간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4분의 1에 이른다. 독일은 탈원전에 따른 대체 에너지를 확보하고, 남는 천연가스는 유럽 다른 나라에 되팔아 차익을 챙기려고 하고 있다.
독일은 노르트스트림2에 대해 경제적 차원의 사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유럽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무기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2006년과 2009년 우크라이나로 가는 천연가스관을 잠가버리는 실력 행사를 한 적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프랑스·이탈리아 등이 공장 가동 중단 등의 피해를 봤다.
바이든 행정부가 노르트스트림2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보이자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섰다. 메르켈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이 사업에 대한 내 기본적인 입장은 바뀐 게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새로운 팀과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메르켈은 미국이 러시아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올린 것에 대해 “미국이 자신들의 영토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이런 조치를 가하는 건 내 관점에서는 옳지 않다”고 말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난 17일 체포한 일이 독일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EU의회는 21일 나발니를 러시아 정부가 석방하지 않으면 노르트스트림2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만 유럽 전체가 노르트스트림2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에너지 공급량이 넉넉하지 않은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EU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독일 정부가 가스관을 원한다면 우리가 저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