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려면
정동식
요즘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내가 책과 친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책이 좋은 줄 알면서도 교과서 말고는 읽을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
이다. 사실 그때는 책이 귀한 시절이라 위인전이니 그리스·로마신화니, 문학 전집을 대하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책이란 걸 처음 받아보았다.
유학의 가풍이 살아있는 집안인데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계시지 않아 추억이 전혀 없고, 선친께서 책 읽는 모습을 본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는 신문을 책처럼 생각하신 것 같다. 이 세상을 다하실 때까지 신문은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잠자리 들기 전, 신문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셨다. 배고픈 설움보다 못 배운 설움이 더 크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신 것으로 보아 글이 주는 기쁨은 이미 알고 계신 듯 보였다.
1학년 교과서를 받자마자 신문지로 책커버를 해 주시던 아버지, 나는 그 기술을 배워 동생들에게 전수했고 고학년이 될 무렵에는 신문지 대신 달력으로 바꾸는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신문지로 입힌 책커버는 온통 활자뿐이니 미적 감각은 없었다. 오로지 책의 내구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2장으로 된 달력은 신문지보다 두껍고 풍경 사진이나 그림도 있어 책 커버를 씌우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그래서 여동생들에게 우선으로 해 주고 나와 남동생은 남는 달력과 신문지로 책 커버를 만들어 씌우곤 했다.
책과 친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나의 다양한 취미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운동을 잘했고 음악도 좋아했다. 따로 배우지는 않았어도 공과 노는 것에 친숙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형들과 야구를 하러 다녔고, 축구도 하고 핸드볼도 했다. 책과 있는 시간보다 공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음악 시간도 즐거웠다. 하모니카도 꽤 잘 불고 합창부 활동을 했으나 운동에 쏟은 비중이 훨씬 높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한 건 아니다. 수업을 마치고 오면 일단 숙제부터 먼저 하고 복습만 조금 했다.
예습은 별도로 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공부시간은 짧았으나 집중력으로 커버했다. 노력한 시간에 비해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성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 우물을 팔 정도로 특별히 잘하는 분야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다양한 방면에서 조금씩 잘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으니 책과의 밀월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갈구하는 욕구는 늘 넘쳐 있었다. 어쩌다 서점을 들르거나 인터넷 책 쇼핑을 하게 되면
여성들이 백화점에 들러 이런저런 물건을 대량으로 충동 구매하듯, 나도 그런 성향을 보였다. 책 욕심이 많아 한꺼번에 많은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막상 독서로 연결되는 책은 한두 권에 불과했으니 나머지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읽으면 되지 라며 흐른 세월이 벌써 강산을 서너 번 바꾸게 되었다.
이제 일흔 꽃을 영접할 시점이 성큼 다가왔다. 늦게나마 꿈이 생겨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이 꿈은 잠시라도 책을 떠나 이룰 수 없다. 요즈음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다. 이럴 때 내가 서슴
없이 다가가는 친구가 생겼다. 바로 책이다. 약속 일정은 주로 내가 잡는 편인데, 데이트 신청을 하더라도 거절
하는 경우가 없다. 온종일 같이 있어도 밥 사달라, 커피 사달라 보채지 않는다. 가끔은 제 몸에 뾰족한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얼굴에 삼색의 화장을 해도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그와 함께 뒹굴다가 거기서 나온 깨알 같은 양식을 머리에 전해 주면 될 일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다 어느 순간, 내가 길을 잃어 표류할 때는 등대를 밝혀 뱃길을 안내해 줄 고맙고 영원한 친구
이다. 이런 의미에서 책이 나에게 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이 친구는 만남과 대화의 광장을 마련해 주는 역할도 한다.
까마득히 먼 문조, 테스형을 만날 수 있고, 영웅호걸들을 쥐락펴락한 사마천과 대화를 나누는 아량을 베푼다.
시간과 시대를 초월해 침어낙안과 폐월수화의 절세미인과 무릉도원을 호방하게 함께 거닐 수도 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살더라도 나와 멀리 있는 현인, 가까이 있더라도 나랑 다른 분야를 경험한 분들과 담론을
나눌 기회를 주니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내 눈이 허락하고 내 몸이 말을 들어준다면 얼마든지 많은 책을 만나고 그 열정으로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호기가 생기기도 한다.
베르디가 85세 때 ‘아베마리아’를 작곡했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83세에 완성했듯 말이다.
책은 진리와 지혜의 보고이며 나의 미래인 것 같다.
내가 찾고자 하는 참된 이치와 삶의 해답이 그 속에 온전히 담겨 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원석을 캐내 보석으로 만들고, 책은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세상사는 원리와 핵심을 제공해 주는 인생 길잡이가 된다.
그 손바닥 하나, 둘 만큼 자그마한 공간에, 지은이의 고뇌와 번뜩이는 혜안이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어찌 최고의
보물창고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 분야일 것이다. 그것이 취미든 전공이든 책은 나의 지식과 정보를 업데이트시킨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두 권이 낫고,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물론 읽은 책이 양서라는 전제가 있다.
그렇게 독서가 누적되어 체계화되면 붓끝이 유려해지고, 비로소 그 분야의 최고봉에 서지 않을까 싶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남자는 태어나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읽은 책이 얼마나 될까? 소장하고 있는 책이 겨우 책장 하나 채울 정도의 미량이다. 헤아려 보진 않았으나 읽은 책이 아직 한 수레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책이 좋은 건 알았지만 책을 벗 삼지는 못했다.
책을 사랑했지만 혼자 짝사랑만 하지 않았나 싶다. 이젠 환경을 탓할 수 없을 만큼 여건이 좋아졌다.
읽을 책이 없다던 예전의 핑계가 이젠 통하지 않는다. 부자는 아니라도 책을 살 수 없을 만큼 궁핍한 편도 아니다. 필요한 책은 사면 되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구립 도서관이 있으니 구하지 못할 책이라면 여기서 읽으면 될 일이다. 내 삶의 어느 기간에 이처럼 책 읽기 좋은 시절이 있었던가?
아무리 예쁜 책장에 책이 꽂혀있더라도 읽지 않으면 종이편철이나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내 서재 같은 동네 도서관에서 지혜의 보고를 범접할 수 있는 사실 자체가 행복 아니고 무엇이랴. 이 황금 같은 시기에 마냥 생의 뒤안길에서 무의미한 회환을 반복하지 말자.
책은 나의 미래이다. 나의 미래는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좋은 책을 보면 멀리서 옛 친구가 찾아온 듯 기쁘고, 배우고 익힐 설렘에 마음 둔 정인을 만나듯 가슴이 쿵덕거린다. 책 속에 사랑이 있고, 책 속에 우주가 있다.
멋진 책에서 나오는 지혜로 내 허한 마음을 채우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것보다 든든하고 혜안과 천지의 만물을 얻은 듯 뿌듯하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내 삶을 이 상태로 여전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 볼 것인가? 봄꽃이 아우르는 호시절에 잠만 자고 꿈을 꿀 것인가, 아니면 지금 책을 읽고 꿈을 이룰 것인가? 이는 오로지 나와 여러분의 정성에 달려 있다.
(2023.3.24.)
첫댓글 책을 읽게 되면 언젠가는 글을 쓰게되고 훌륭한 작가가 됩니다.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