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가짜 태후를 압송하다
위소보가 동쪽 대청으로 들어섰을 때 진근남 등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사부에게 말했다.
[자금성의 상세한 사정을 귀씨 부부에게 이야기하고 방금 그들을 전송 했습니다.]
진근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씨 부부가 설사 오랑캐 황제를 찔러 죽인다 하더라도 돌아오지는 못 할 것이다.]
군웅들은 착잡한 심사에 사로잡혀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간혹 한 두 사람이 몇 마디의 말을 했으나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부터 다시 반 시진쯤 지나자 문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백작 나으리께 아룁니다. 장 제독께서 볼일이 있어 뵙겠다고 하십니 다.] [한밤중에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가? 이미 내가 잠이 들었으니 볼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오라고 전하게.]
그 사람은 대답했다.
[예.]
그러자 진근남이 위소보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혹시 왕궁에서 무슨 소식이 왔는지도 모르니 네가 가서 물어 보려무 나.]
위소보는 대답을 하고 대청으로 나갔다. 조양동, 왕진보, 손사극 세 사 람이 대청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장 용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위소보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히 물었 다.
[장 제독은?]
왕진보가 대답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장 제독에게 사고가 났습니다. 백작부 문 밖에 기절 해 쓰러져 있는 것을 떠메고 와 상방에 눕혀 놓았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기절을 하였단 말이냐?]
그는 서둘러 상방으로 달려갔다. 장용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 데 안 색이 창백하여 가슴이 연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장 제독, 어떻게 된 일이오?]
장용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입을 열었다.
[비....비....]
그러더니 두 눈을 까뒤집고 다시 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의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자신이 쓴 상주문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야단났다고 부르짖었다. 손사극은 말했다.
[조금 전 순라를 돌던 병졸이 와서 백작부 문 밖의 수백 걸음 떨어진 곳에 한 명의 군관이 쓰러져 있다기에 가서 살펴보니 바로 장 제독이었 습니다. 장 제독의 머리에, 무언가에 부딪혀 흘러내린 피가 이미 굳어 있는 것을 보면 기절한 지 오래된 듯합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기절한 지 오래되었고 상주문을 전하지 못했다면 문을 나서자마 자 독수를 입은 것이 틀림없다. 혹시 세 마리의 자라가 사람을 문 밖에 매복시켰다가 내가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 밀고하는 것이 두려워 장 제 독에게 손을 쓴 것은 아닐까?) 그는 여간 초조하지 않았다. 이때 장용이 다시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왕진보는 재빨리 술 주전자를 들고 그에게 몇 모금의 소주를 마시게 했 다. 손사극과 조양동은 소주를 그의 손바닥에 붓고 마구 비벼 주었다. 장용은 약간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비직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문을 나서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갑자기 가슴속이 칼로 에는 듯 아파왔으며 다시....다시 몇 걸음 걷자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대인....대인이 당부하신 일을 처리하 지 못했으니 비직은 즉시....즉시....]
그러면서 몸을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장형, 아무쪼록 누워서 쉬시구려.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켰어도 마 찬가지였을 것이외다.]
위소보는 상주문을 왕진보에게 주어 조양동, 손사극과 함께 위사들을 데리고 급히 왕궁으로 달려가 황제에게 바치라고 분부했다. 그는 몹시 초조해졌다. (귀씨 집안의 세 사람이 간 지 반 시진이 넘었다. 소현자는 이미 목숨 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왕진보 등 세 사람은 즉시 명령을 받들고 달려갔다. 장용은 말했다.
[대인, 서재의 그 영감....그 영감의 무공은 정말 무섭습니다. 제가 서 재에서 나오자 그는 저의 등을....쿨룩....가볍게 한 번 밀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때 이미 내상을 입었지 뭡니까? 대문을 나서자마자 즉시....즉시 발작을 일으켜서....대인의 큰일을 그 르치고 말았습니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귀신수가 이 상주문이 밀고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 지 않았으나 역시 의심하여 암암리에 중수법을 써서 장용으로 하여금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임을 알았다. 장용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말했다.
[장형, 안심하고 정양이나 하시오. 이 일은 조금도 그대를 탓할 수 없 소. 제기랄! 그 늙은 자라가 그대에게 암수를 썼으니 우리는 이대로 끝 낼 수는 없소.]
그는 다시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고 심복에게 빨리 삼탕을 끓여서 장 용에게 마시게 하는 한편 의원을 불러 치료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동쪽 대청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궁에서 무슨 소식을 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장 제독이 귀이낭 나으리 에게 중상을 입어 아무래도 목숨을 건지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일제히 물었다.
[그가 왜 장 제독을 때려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 제독이 저택 앞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가 그들 세 사람이 나서는 것 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귀이낭 나으리께서 그만 일 장을 후려치신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같이 생각했다. (어느 누가 신권무적의 새끼손가락 하나를 당해 낼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매우 후회했다. (만약 장 제독이 독수를 당할 것을 알았고, 상주문을 소현자에게 먼저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궁 안의 사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헷갈리게 만들어 뒤죽박죽되도록 이야기했을 텐데. 내 가 산과 바다를 뒤섞어 놓는 식으로 황극전(皇極殿)을 수안궁(壽安宮) 으로 옮겨 놓고 중화궁(重華宮)을 문화전(文華殿)으로 옮겨 놓았다면, 세 마리의 자라는 황궁 안에서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다가 어지러워서 방향도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딱딱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경을 알리는 소리였다. 다시 한참 시 간이 흘렀다. 갑자기 멀리서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칼자루를 잡고 벌떡 몸을 일으켜 귀를 기울였다. 그러 나 개들은 한동안 짖어대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한참이 지난 후 조용한 가운데 은연중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졌고 창문에는 희뿌연 빛이 감 돌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날이 밝았군요. 저는 궁 안으로 달려가 봐야겠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귀씨 부부와 그 아들이 만약 불행히도 실수하였다면 너는 반드시 방법 을 강구하여 그들을 구원해내야 한다. 오륙기 형의 일은 오해에서 비롯 된 것이니 그들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무릇 대의를 중시하고 사사로 운 사귐을 가볍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느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오만한 태도를 지었던 것 역시 마음에 둘 필요가 없느니라.]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의 분부는 제자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그 들이 만약 소황제를 이미 죽였다면 제자가 이 작은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구출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소황제가 지금쯤 귀씨 집안의 세 사람에게 피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아파 대뜸 눈물이 흘러내리고 목이 메어서 말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형은....]
그 기회를 빌려서 울음을 터뜨리는데 목검성이 말했다.
[귀씨 부부가 일을 저질렀다면 성패를 막론하고 오늘 북경성 안은 크게 소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깥에 적지 않은 친구들이 있으니 반드시 나 가서 안배하여 모두들 흩어져 숨도록 한 후에 이 풍파가 지난 후에 다 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렇소. 폐희의 형제들 역시 성내의 각처에 있소. 모두들 흩어져 있으 라고 통지하고 강호의 모든 친구들에게도 조심하라고 이르시오. 오늘밤 유시에 다시 이곳에 모여 금후의 행동을 상의하도록 합시다.]
여러 사람들은 응낙했다. 그 즉시 네 명의 천지회 형제들이 나가서 살 펴보도록 했다. 그들이 되돌아와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전갈을 받고서 야 차례차례로 백작부에서 떠나갔다. 위소보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손사극이 돌아와서 상주문을 궁문을 지 키고있는 시위에게 건네주었으며, 그 시위들을 통솔하고 있는 사람에게 위 대인이 은밀히 고하는 상주문이라고 하여 황상께 바쳤다는 보고를 했다. 그들 세 사람이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오경이 되도록 그 통솔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왕진보와 조양동 두 사람을 여전히 궁문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위 대인이 걱정하실까 봐 먼저 와 서 보고하는 것이라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대는 장 제독을 보살피도록 하시오.]
그는 매우 근심에 차서 친위병에게 가짜 태후 모동주를 조그만 교자에 태우도록 하고 궁으로 들어가 황상을 뵙고자 했다. 궁문 앞에 이르렀을 때 사방은 조용하니 아무런 기색도 없었다. 십여 명의 궁문 시위들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드리고 모두 히죽히죽 웃 으며 말했다.
[부총관께서는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 양주 지방은 놀기가 좋았던가 보 지요?]
위소보는 속으로 약간 마음을 놓으며 생각했다. (궁 안에서 큰 소란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나에게 양주의 일을 들먹일 심정이 아닐 것이다.) 그는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동안 모두들 별일 없었소?]
한 명의 시위가 말했다.
[부총관님의 덕택으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편안합니다. 다만 오 삼계 늙은 녀석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황상께서는 매우 바쁘시며 삼경 야밤에도 대신들을 궁으로 불러서는 이 일을 논의하고 계십니다.]
위소보는 다시 한 번 속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시위 가 웃으머 말했다.
[총관 대인께서 북경으로 돌아오셔서 황상을 도와 큰일을 처리하게 될 테니 황상께서는 이제 좀 한가하시게 되었습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들은 아첨떨지 말게. 나는 양주에서 가져 온 물건들을 모두 여러 형제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안배했네. 그 누구도 받지 못하는 사람 은 없을 것이네.]
시위들은 모두 기뻐하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위소보는 작은 교자를 가 리키며 말했다.
[저것은 태후와 황상께서 분부하여 잡아오라 하신 국사범이네. 그대들 이 한번 보게나.]
그는 시종들로 하여금 교자의 휘장을 들추게 하고 궁문의 시위들이 수 색하도록 했다. 시위들은 평소의 예에 따라 흉기 등 금지된 물건이 있 는가를 살펴본 이후 말했다.
[부총관 대인께서는 이번에 적지 않은 공로를 세우셨으니 또 벼슬이 오 르시고 축하 술을 얻어 마시게 되었군요.]
위소보는 궁 안으로 들어서서 건청문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위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황상께서는 양심전(養心殿)에서 대신들을 불러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을 논하고 있으며 아직도 의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위소보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서 생각했다. (어젯밤 황상께서는 바쁘셔서 잠도 주무시지 못했구나. 대신들을 불렀 을 때는 자연히 사방에 삼엄한 경계망을 치기 마련이다. 양심전 사방에 는 수백 수천 개의 등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을 데니 귀씨 집안의 그 세 마리 자라들이 어찌 황상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소현 자가 일찌감치 침대 위에서 잠을 잤고 등불도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었 다면 어젯밤에 이미 화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야 말로 홍복제천(鴻福齊天)이로구나. 다행히 오삼계 늙은 녀석이 싸움에 이기는 바람에 황상께서는 마음의 초조함을 느끼시고 밤이 새도록 일을 논의하신 모양이구나.) 그는 양심전 밖에 이르러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강희의 총애를 받고는 있었지만 황제가 왕공 대신들과 군국대사를 논하는 자리에는 감히 들어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반 시진 넘게 기다려서야 내반숙위(內班宿衛)가 대전의 문을 열었다. 강친왕 걸서, 명주, 색액도 등이 차례로 나왔다. 대신들은 위소보를 보 자 모두 미소를 짓고 두 손을 맞잡아 보였으나 그 누구도 감히 말을 건 네지는 못했다. 태감이 통보하자 강희는 즉시 그를 불렀다. 위소보는 위로 올라가 큰절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강희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신수가 훤해 보였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황상, 소신이 황상을 뵈올 수 있게 되다니 정말....정말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하룻밤 내내 걱정을 했는데 강희가 무사한 것을 보니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강희는 웃으며 물었다.
[왜 멀쩡한 사람이 우는가?] [소신은 기뻐서 웁니다.]
강희는 그가 진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좋아, 좋아! 오삼계 늙은 녀석이 정말 반란을 일으켰네. 그는 이미 몇 번 싸움에 이겼는데 내가 그를 두려워하여 내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일세. 제기랄! 나는 이미 오응웅의 머리를 잘 랐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황상께서는 이미 오응웅을 죽였습니까?] [그렇다네. 대신들도 나에게 오응웅을 죽이지 말라고 권하더군. 뭐 왕 사가 출전을 해서 불리하다면 오삼계와 강화를 할 수도 있고, 그를 번 왕 자리에서 철수시키지 않고 영원히 운남을 지키도록 하면 된다나. 그 리고 어떤 사람은 오응웅을 죽이면 오삼계가 더욱 흉악하게 날뛸 것이 라 하더군. 쳇, 모두 겁쟁이들이야.] [황상의 영단이십니다. 소신은 군영희(群英會)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 습니다. 주유와 노숙이 손권에게 신하들은 조조에게 투항을 할 수 있으 나 주공께서는 투항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왕공 대신들은 오삼계와 강화를 하려고 하지만 황상께서는 강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희는 크게 기뻐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내 려오면서 말했다.
[소계자, 그대가 하루라도 더 일찍 와서 그 도리를 대신들에게 설명해 주었다면 그들은 감히 나에게 강화하라고 권하지 못했을 것이네. 그들 은 오삼계에게 투항을 하면 똑같이 상서나 장군을 하게 될 것이니 무슨 손해를 보겠는가?]
그는 대신들이 사사로운 욕심을 가지고 자기만을 위하고 있는 반면에 위소보는 학문은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위소보의 손을 잡고 커다란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탁자 위에는 커다란 지도가 놓여 있었다. 강희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미 정규병을 거느릴 장군을 내려보냈네. 한길은 형주(荊州)에 서 상덕(常德)까지 지키도록 했고, 다른 길은 무창(武昌)에서 악주(岳 州)까지 지키도록 하였는데 순승군왕(順承郡王) 늑이금(勒而錦)을 영남 정구대장군(寧南征寇大將軍)에 봉하여 장수들을 이끌고 적을 소탕하라 고 했네. 조금 전 나는 형부상서 막락(莫洛)에게 서안(西安)을 지키라 고 했네. 오삼계가 운남, 귀주, 사천성을 얻은 후 호남성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해도 우리들은 그를 겁낼 필요가 없네.] [황상, 소신에게도 일을 맡겨 주십시오.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오삼계 라는 늙은 녀석을 해치우겠습니다.]
강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을 통솔하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장난이 아닐세. 그대는 궁에서 나 와 함께 있도록 하세. 더군다나 이번에 내보낸 사람들은 모두 만주의 장수들과 관원들이며 만주의 병졸들이라네. 아무래도 그들은 그대의 지 휘를 따르지 않을 걸세.] [예.]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삼계는 한인들에게 봉기하여 오랑캐들을 무찌르자고 했다. 나는 가 짜 만주인이니 황상께서는 자연히 나를 믿지 못하실 것이다.) 강희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대의 충성심을 못 믿는 것은 아니네. 소계자, 오삼계의 병마는 무섭 기 이를 데 없네. 삼 년이나 오 년, 심지어는 칠, 팔 년이 걸려야 그를 정벌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처음 몇 년은 우리가 반드시 패할 걸세. 이번 토벌은 처음에는 우리가 고달프겠지만 뒤에는 좋아질 걸세. 먼저 패하고 뒤에 승리를 거둘 것이네. 그대는 패전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승전을 좋아하는가?] [물론 승전을 좋아하지요. 투구와 갑옷을 내던지고 황망히 도망치는 맛 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그대가 나에게 충성을 다하니 나 역시 그대에게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네. 처음 삼 년이나 오 년 동안은 패전을 할 것이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싸우도록 하는 것이지. 그리하여 오 역적이 지칠 대로 지쳐서 대국이 이미 판가름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대를 다시 운남으로 보내 친 히 그 늙은 녀석을 잡아오도록 하겠네.]
위소보는 크게 기뻐 말했다.
[황상의 은혜는 정말 하늘보다 높고 깊습니다.] [나는 누구든지 오삼계를 사로잡은 사람에게 오삼계의 벼슬을 내리겠다 고 했네. 소계자, 이번에야말로 그대의 재수를 두고 봐야 할 것이네. 제기랄! 그대의 꼬락서니는 평서왕답지 않은데? 하하하하!]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참 동안 위소보를 들여다보더니 웃었다.
[지금은 그저 원숭이 같아. 조금도 닮지 않았네. 그러나 육, 칠 년이 지나서 그대가 스무 살이 된다면 왕야에 봉해진다 해도 어울릴 듯하군. 하하하하 ! ]
위소보는 웃었다.
[평서왕인가 하는 벼슬....소신은 아마 그만한 복은 타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상께서 저를 대장수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운남 으로 가서 오삼계를 잡아오라고 하시면 정말 대장수의 위풍당당한 모습 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소신은 그야말로 손에 장팔사모를 쥐고서 큰소 리로 부르짖는 것이지요. '오삼계, 나서서 장수의 이름을 밝히도록 해 라.' 그러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천지신명께서 보살피시 어 오삼계가 일찍 죽지 않고 소신이 친히 그를 잡아 이곳에 데려와 무 릎을 끓리고 황상에게 큰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희는 웃었다.
[좋아, 좋았어!]
그는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소계자, 우리 처음 몇 년 동안은 정말 외로운 전쟁을 하게 될 것이네. 전쟁에 져도 상관은 없지만 나라가 어지럽지는 않아야 하네. 반드시 대 장수의 재주를 가진 사람만이 지더라도 나라 안을 어지럽히지 않고 버 티어 나갈 수 있다네. 그대는 복을 타고난 장수이지만, 용장이나 명장 은 못되고 더군다나 대장수감은 아닐세. 아, 애석하게도 조정 안에는 대장수감이 없단 말일세.] [황상 자신이 바로 대장수가 아니십니까? 황상께서는 이미 우리가 처음 몇 년간은 반드시 질 거라고 인정하였습니다. 패구 노름을 하는 것처 럼, 황상께서 전주가 되어 처음에는 그에게 일곱 번 여덟 번 패하는 척 하면서 조금도 손해에 연연해하지 않아야죠. 우리들은 본전이 두둑하여 태산(泰山)의 석감당(石敢當)과 다를 바 없으니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돈을 잃었을 때 그저 그에게 빌려 주는 정도로 여 기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들은 좋은 패를 마구 내는 것이지요. 한 쌍 의 인패(人牌), 한 쌍의 지패(地牌), 한 쌍의 천패(天牌), 그리고 지존 보(至尊寶) 등 좋은 패들을 마구 내놓고서는 상대방을 통째로 죽이고 먹는 겁니다. 그럼 오삼계라는 늙은 녀석은 나자빠져 말은 땅바닥에 구 르고, 손안에는 아무것도 쥘 수 없으며 주머니는 하늘을 향하고, 뒤집 어 놓은 패는 하나같이 별십이 되는 거지요.]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조정에 대장수가 없으나 내 자신이 대장수라 한 말은 정말 틀리지 않 다. 진다 하더라도 침착하게 견뎌낼 만한 사람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 다.) 그는 탁자 위에서 위소보가 올린 그 비밀 상주문을 집어들고 말했다.
[그대는 누군가 나를 찔러 죽이려고 하니 나에게 조심해서 경계하라고 했는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너무 긴급하고 소신이 또 찾아온 사 람들에게 잡혀 있던 까닭에 사야로 하여금 상주문을 쓰게할 수가 없어 서 부득이 그와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황상께서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으시니 한 번에 알아보셨군요. 그 자객은 눈을 뜨고서도 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만세야께서는 홍복제천이 시니 반역자가 역모를 꾸민다하더라도 헛되이 고생만 할 뿐이지요.] [어떤 자객인가?] [오삼계가 서울로 보낸 자들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역적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나는 즉시 세 배로 시위들을 늘렸네. 어젯밤 그대의 상주문을 보고는 다시 내관숙위들을 더 강화시켰지.]
위소보는 말했다.
[이번에 오 역적이 보내 온 자객의 무공은 정말 무섭습니다. 비록 성천 자(聖天子)에게 백신(百神)이 있어서 보호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백 배 더 조심해야 황상께서 놀라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말했다.
[황상, 소신에게 한 가지 보물과 같은 조끼 잠방이가 있습니다. 몸에 걸치고 있으면 칼과 창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소신이 벗어서 황상 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는 장포의 단추를 끄르려고 했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배의 집에서 몰수한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 가죽이 아무리 두텁더라도 느닷없이 그러한 질문을 받게 되자 그만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다. 즉시 무릎을 끓고 말했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황상을 속일 수가 없군요.]
강희는 웃었다.
[그 금사배심(金絲背心)은 전 명나라 궁에서 얻은 것이네. 당시 오배가 많은 공을 세웠고 적진을 함락시키느라고 몸에 칼이나 창, 화살, 돌에 입은 상처가 적지 않았네. 그렇기 때문에 섭정왕께서 그에게 그것을 내 리신 것일세. 내가 자네를 오배의 집으로 보내 가산을 몰수하였을 때 그 몰수한 재산 목록에는 이 금사배심이 없더군.]
위소보는 헤, 하고 웃어 보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희는 웃었 다.
[그대가 오늘 벗어서 나에게 주겠다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그대의 충성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네. 그러나 나의 몸은 깊은 궁궐 안에 있고 수 백 수천의 자객이 들어오더라도 내 가까이에는 다가오지 못할 것일세. 그러므로 그 배심은 필요가 없네. 그대가 나를 위해 바깥에서 일을 처 리할 때 종종 위험한 일에 부딪힐 것이니 그 배심은 내가 오늘 그대에 게 하사한 것으로 해 두세.]
위소보는 다시 꿇어앉아 은혜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이 미 식은땀이 등줄기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큰일이다! 내가 사십이장경을 훔친 일은 황상께서 모르셔야 할터인 데...)
[소계자, 그대가 나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네. 그 러나 그대가 일을 할 때에는 좀 얌전하게 처리해야 하네. 만약 그대의 몸에 걸치고 있는 그 금사배심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면 그야말로 좋지 않은 일이야.] [예, 예. 소신이 어찌 감히 그런 일이 있도록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다시 몇 번 큰절을 하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양주의 일은 이후에 다시 말하도록 하게.]
그는 하품을 했다. 지난 밤 잠을 자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척 피곤한 모 양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태후와 황상의 덕택으로 극악무도한 늙은 갈보를 소신이 잡아 왔습니 다.]
강희는 이 말을 듣자 외쳤다.
[빨리 데려오게. 빨리 데려오란 말이야!]
위소보는 나가서 네 명의 시위에게 명하여 모동주를 끌고 대전 안으로 들어와 강희 앞에 꿇어앉혔다. 강희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호통 을 쳤다.
[고개를 들어라!]
모동주는 잠시 주저하더니 고개를 들어서 강희를 바라보았다. 강희는 그녀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웠다. (이 여자는 나의 친어머니를 죽이고 부왕을 슬프게 하여 출가하게 만들 어 나를 부모가 없는 천애고아로 만들었다. 그녀는 태후를 수년 동안 몰래 감금시키고 괴롭혔으니 이 세상에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도 이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그러나 어릴 적에 어머니 를 잃은 후 그녀가 나를 줄곧 키워왔다. 그녀는 실로 나에게 많은 은혜 를 베풀었으며 나의 친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깊은 궁궐 안에서 진정으로 나에게 잘 대해 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인 과 교활하고 일을 잘 저지르는 소계자밖에 없으리라. 만약 그녀가 동악 비와 동악비의 아들인 영친왕을 죽이지 않았다면, 부황께서 동악비를 지극히 총애하셨으니 대위(大位)는 반드시 영친왕에게 전해 주었을 것 이다. 그러면 나는 황제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목숨까지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나에게 공이 있다고 할 수 있 지 않은가?) 수년 전만 하더라도 강희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한스 러운 일은 조실부모한 자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몇 년 동안 친히 정권을 잡고 보니 대위를 만약 남에게 빼앗기면 만사가 끝장난다 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제왕의 권위가 부모의 인자한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 은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일이고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 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동주는 그의 안색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다 해도 황상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초 조해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무쪼록 몸을 보존하셔야 합니다. 매일 아침 복령연와탕을 잡숫고 계시겠지요?]
강희는 넋을 잃고 있다가 그녀의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그렇소. 매일 먹고 있소.]
모동주는 말했다.
[내가 지은 죄가 너무 크오니.... 친히 나를 죽여 주십시오.]
강희는 속으로 괴로운 것을 느끼고 고개를 저으며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녀를 자녕궁으로 데리고 가 태후를 뵙도록 하게. 태후께서 성단(聖 斷)을 내려 처리하시라고 전하게.]
위소보는 오른쪽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예 !]
강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 보게.]
위소보는 품속에서 갈이단과 상결이 쓴 두 장의 상주문을 꺼내서 두 걸 음 앞으로 나서며 강희에게 바치고 말했다.
[황상께서는 기뻐하십시오. 서장과 몽고의 병마는 이미 오삼계와 반목 하여 황상을 위해 힘을 다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강희는 연일 군사를 움직이고 장수를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서장과 몽고 의 병마가 오삼계의 반란에 호응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소 보가 이와 같은 말을 하자 놀라고 기뻐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는 상주문을 펼쳐 보고 더욱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그는 손을 저어 시위에게 모동주를 대전에서 데리고 나가도록 한 후에 위소보에게 물었 다.
[이 큰 공을 그대가 어떻게 해서 이룰 수 있었는가? 제기랄! 그대는 진 정으로 커다란 복을 타고난 장수야.]
이때 서장과 몽고의 병력은 무척 강한 편이었다. 강희는 상결과 갈이단 이 오삼계와 결탁하고 이미 많은 군사들을 대기시켜 놓고 유사시에 움 직이려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주문에는 매우 공손하고 간절한 어조로 오히려 오삼계를 토벌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겠다고 하니 어 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일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 루어진 일이라 일시 진실로 여겨지지 않았다. 위소보는 매번 소황제가 자기에게 제기랄이라고 말할 때는 그가 마음이 흡족할 때임을 알고 헤 벌죽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황상의 홍복이십니다. 소신은 그들과 의형제를 맺어 상결 대라 마는 큰형이 되고, 갈이단 왕자는 둘째 형이 되었으며 소신은 셋째 동 생이 되었습니다.]
강희는 웃었다.
[그대는 정말 신통력이 대단하군. 그들이 나를 도와 오삼계를 치는 데 자네는 그들에게 어떤 이득을 주겠다고 응낙하였는가?] [황상께서는 밝게 살피셨습니다. 우리들이 의형제를 맺은 것은 그저 명 색일 뿐이지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황상 께서 벼슬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상결은 활불이 되고 싶어 하고 달뢰활불과 반선활불 외에 황상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그에게 다시 상결활불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갈이단 왕자는 전체를 좋 아한다고 했는데 소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체를 좋아한다고? 아, 그는 준갈이한이 되고 싶은가 보군. 이 일은 어렵지 않고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닐세. 그때 가서 칙서를 내리고 어보 (御寶)를 찍어 그대를 흠차대신으로 삼아 그곳으로 보내 선포하면 되는 일일세. 그대는 그대의 큰형과 둘째 형에게 힘을 써주기만 한다면 그들 이 원하는 일을 내 모두 응낙한다고 말하게나. 그러나 결코 이랬다저랬 다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네.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실제 행동은 저 렇게 나오는가 하면 바람 따라 키를 돌리는 것처럼, 어느 쪽에서 승리 를 하면 그쪽을 돕는다는 방식은 용납할 수 없네.] [황상의 말씀이 옳습니다. 두 의형의 성품은 결코 고명한 편이 못되니 황상께서도 완전히 믿지 마시고 방비하셔야 할 줄 압니다. 황상께서는 우리가 처음 몇 년은 패전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 두 사람이 오히려 전주를 돕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을 도와 천문(天門) 쪽에 걸 것을 방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먼저 못을 박아 둠으로써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강희 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옳아. 그러나 우리 역시 그들이 두렵지 않아. 그들이 만일 공 격해 온다면 천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서 모조리 잡아먹 자.]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속으로 매우 탄복했다. (황상은 패구 노름에 있어서도 매우 노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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