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월간 시와표현 원문보기 글쓴이: 김세영
<인터뷰>
영원한 몽상가의 아트만을 찾아서-김세영 시인
인터뷰 담당, 정리: 허진아 시인
율리우스의 7월과 아우구스투스의 8월이 만나는 시간은 뜨겁다. 그들의 칼끝처럼 날카로운 더위를 뚫고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김세영 시인을 노크한다. 시인은 나무다. 김세영 시인의 나이테가 궁금하고, 나이테를 싸고 있는 부드러운 살, 나뭇가지와 잎의 색, 거침없이 뻗는 뿌리의식이 궁금하다
* 질문: 선생님은 대치동에 김영철 내과를 운영하시면서 2007년도에『미네르바』로 등단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고등학교 재학시절 동갑내기 고종사촌의 영향으로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셨는데 왜 의대에 가게 되셨는지요? 그때 시에 대한 열정과 지금의 열정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답변: 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부전역전 재래시장의 가점포에서 양친이 함께 장사하며 어렵게 살 때여서 대부분의 부모님처럼 장남인 내가 안정된 전문직인 되는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했고, 의사가 되어서도 나중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인척 형의 설득에 나 자신도 동의를 하게 되어 의사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입시에서의 해방과 함께 자유시간이 많아져 수필, 시, 소설 등 인문학 서적과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일찍 문학적 재능을 보인 고종사촌과 자주 어울리며 나도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각장애가 있어 정규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집에서 통신강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시립도서관에 가 하루 종일 책을 보기도 하고, 바닷가나 낙동강 가를 쏘다니기도 하며 시작 수련의 초년기를 보냈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라는 시구에 감흥을 받고 시의 매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이 나의 시작노트입니다. 길을 가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메모하고 참고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시행을 채워나갑니다. 특히 양재천 둑길의 아침산책이 중요한 작품구상 시간입니다. 청탁 마감일이 촉박하면 집에는 심포지엄이 있어 늦는다고 말하고, 진료를 끝낸 후 병원 문을 닫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한 후 글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 질문: 선생님의 시「빨래」,「어머니의 치마」,「후루룩」,「무게」등 여러 시에서 어머니를 그리셨습니다. 「눈 오는 날에」서 "저 눈 다 덮어쓰고 눈사람처럼 서 있어도 어머니, 누군지 알겠지요” 라는 구절에서는 눈이 따가웠습니다. 선생님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는지요?
―답변: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남편을 존중하면서 가정살림에 충실한 전형적인 한국의 가정주부였다고 회상 됩니다. 부친의 사업부도로 가세가 기울어지면서부터 난전 장사를 하게 되면서 부터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 같습니다. 부친이 장티푸스로 일찍 돌아가시어 48세 때 홀로 되셨습니다. 부친이 하셨던 곡물상회를 혼자 꾸려 가시면서 우리 형제들을 키우시느라 무척 외롭고 힘겨운 생을 견디신 것 같습니다.
당뇨병을 앓으시다가 말년에는 대장암 수술로 장루를 가지셨고, 중풍으로 반신마비로 고생하시다가 대장암이 재발 전이되어 제대로 잡수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생전에 어머님은 죽으면 화장해서 산에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유언하셨습니다. 혼은 하늘로 몸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생전의 믿음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 질문: 2007년도에 첫 시집『강물은 흐른다』, 2012년도에『물구나무서다』두 권의 책을 상자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선생님의 왕성한 詩作과 書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선생님의 시 쓰는 스타일이 궁금합니다.
―답변: 어떤 시 소재가 있으면 생각과 연상 그리고 상상을 지속으로 계속합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수면 상태에 들 때까지 시에 대해 생각하다 잠에 빠집니다. 마땅한 소재가 없을 때는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문득 착상을 얻을 때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메모 공책을 지니고 다니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때그때 적었습니다. 스마트 폰이 생긴 후로는 시 쓰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백과사전이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퇴고작업은 PC로 쓰고 지우고 복사하여 마무리 작업해서 파일을 전송합니다.
* 질문: 박남희 시인은 선생님의 시집 『물구나무서다』서평에서 “몸은 그에게 있어서 생명이고 사랑이고 모든 관계의 결정체”라 했습니다. 시「해우」에서 볼 수 있듯이 현상을 한 꼬치에 꿰어 몸에 통과시킨 다음 존재 의식으로 확장하십니다. 몸과 시, 어떤 말씀을 해 주 시겠습니까?
―답변: 이 세상에 지적 존재로 태어나서 세계와 우주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히 시인에게는 필요하디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저 나름의 개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몸은 인간존재의 기본 단위의 처소라고 봅니다. 몸은 근원적으로 물질세계에 연계되어 있으며, 의식의 집입니다. 의식은 몸의 중추인 뇌의 작용현상이며 영혼의 수용체 즉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은 영적존재로서의 기본단위로서 의식의 수용체에 접속되어 할당된 우주의 섭리, 신성 또는 성령으로서, 그 본원인 영성세계와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몸과 의식의 연계 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염통을 마음 心 자를 써서 심장이라고 표기한 것도 이런 연유입니다. 또 의식과 영혼을 총칭해서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시 특히 서정시와 관련된 마음의 한 형태가 정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몸에서 싹이 터서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몇 단계의 가지를 거쳐 영혼과, 궁극적으로는 우듬지가 영성세계에까지 닿아있어, 시의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개념으로 쓴 시로는,「너」,「바람의 시제」,「어둠의 결」,「허공의 어부」,「나비의 창세기」,「강」,「튀기」,「각인」등 일련의 시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질문: 선생님의 시는 따듯합니다. 생물에 대한 동정(sympathy)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멸의 알레고리인 몸을 다루기 때문일까요? 죽음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답변: 최근의 제 시의 소재와 주제 때문인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이어지는군요. 인간은 물질세계에 속하는 몸과 영성세계에 속하는 영혼의 일시적 결합체입니다. 죽음이란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멎고 뇌기능이 정지된 상태, 즉 의식도 소멸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말씀드린 개념과 같이,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의식과의 수용체 결합이 풀린 영혼은 다시 영성세계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의 지상에서의 흔적은 기억으로 산 사람의 의식 속에 저장되거나 여러 매체에 저장될 것입니다. 또한 그 기억은 압축 형태로 영혼 속에 보존 될 것으로 상상해 봅니다.
* 질문: 예술과 종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종교가 있으신지요. 있다면 종교가 시에 미치는 영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인간은 원초적으로 종교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므로, 완전하고 무한한 절대적 존재에게 의존하고 구원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 불안에 떠는 원시인의 샤머니즘도 종교의 원시적 전단계라고 볼 수 있겠지요. 온갖 첨단의 문명의 이기를 갖춘 현대인에게도 불안의 덫은 여전하여 오늘날에도 종교가 실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도 삶의 버팀목이 되어 줄 구원의 믿음과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자연과 우주의 오묘한 섭리에서 신이나 절대자의 힘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 법칙은 그 자체로 신의 의지(말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설혹 신의 존재가 없다고 해도 그의 존재를 믿고 싶습니다.
저는 장년기까지는 종교에 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세계관이나 우주관은 불교적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의 많은 시에서도, 생사의 문제나 세계와 존재의 문제에 이르면 이러한 사상적 편린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적을 두기 전에는 주일 날 교회에 가는 아내와 딸들에게 “나는 높은 산에 가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고 농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가족 내에서 종교적으로 따로국밥 같은 처지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 후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대해서 나는 하이브리드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을 나름대로 제 안에서 융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믿음과 깨달음은 종교적 구원의 양 날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질문: 몸은 소멸하지만 생산하기도 합니다. 선생님 시에서 순환을 발견하곤 합니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야한다는 것이 더 절실한 요즘 환경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답변: 개체로서의 몸은 소멸하지만, 나의 존재는 염색체로서 또는 기억으로서, 인간세계가 완전 소멸하기까지는 자손의 몸으로 재생성 되거나, 다른 개체의 의식으로 전파가 되겠지요. 나의 영혼 또한 철이 되면 꽃이 다시 피듯이 어떤 몸의 수용체에 재접속하여 환생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허공 속에 무로서 완전 소멸된다는 것보다, 이런 믿음은 현생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사는데 도움이 되는 상상적 믿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당연히 공생공존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연은 매일 쉼 없이 먹이로, 또 물과 공기로 우리 몸속에 들어오고, 내 몸속의 것은 쉼 없이 배설물로, 또 물과 공기로 자연 속으로 다시 내보내지요. 요즈음 같이 산업폐기물로 오염이 극심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제 환경 문제는 바로 생존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생태에 관심을 가져서 「나미브의 양서류」,「사막 코끼리」,「방울의 생태」,「섬이 가라앉고 있어요」,「황사 바람 앞에서」등 일련의 생태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 질문: 오랫동안 대치동 주민의 건강을 보살펴 대치동주치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심장전문 병원인 부천의 세종병원에서 내과과장으로 재직 시,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나에게서 심장판막증으로 진단 받고 흉부외과에서 수술 후 약물치료를 받던 중. 제가 서울시 강남구에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세종병원에서 입원하고 있을 때 믿음과 정이 들은 탓인지 병원 직원에게 수소문해서 나의 클리닉을 찾아왔습니다. 집이 강서구라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계속 치료를 받겠다고 간곡하게 원해서 한 5년간 제가 진료를 해드렸습니다. 나중에는 심근장애로 인하여 심부전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종병원으로 다시 전원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 후 일 년 쯤 후에 아들이 찾아와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오실 때는 언제나 과일이나 케이크를 사들고 왔습니다. 다소곳한 모습에 정이 많으신 분으로 오랫동안 잊히지 않습니다.
보람을 느끼고 있는 점은, 개원 초 유아 환자로 와서 각종 예방접종을 맞았고, 소아기에는 감기, 설사 등으로 치료를 받기도 하고, 고교 시에는 공부 스트레스로 과민성 대장염으로 고생하였으며, 대학 진학해서는 MT에 가서 과음으로 급성위장염이 생겨 치료 받기도 하였으며, 졸업 후 직장에 다니다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데리고 인사하려 왔을 때, 동네 주치의로서, 동네 아저씨로서 마치 내 자식을 보는 듯해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 질문: 시를 쓰시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그리고 시가 의사라는 직업에 끼친 영향과 의사라는 직업이 시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답변: 시를 쓰면서 제일먼저 달라진 것이 서재입니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자리를 의학 관련 서적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시인이 된 후에는 대부분 문학 특히 시 관련 책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모임이나 만나는 사람이 의학 관련 세미나이거나 의사 또는 동창생들이었는데. 이제는 문학행사나 시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성별에 있어서도 전에는 남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제는 여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덕분에 퇴근 후의 생활이 정서적으로 더 부드러워지고 활기 있고 재미있어졌습니다.
젊은 의사시절, 해리슨 내과학교과서의 서문에 적혀있는 'medicine is art of science' 라는 글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생명 없는 물체를 다루는 다른 과학 분야와는 달리 의학은 생명과 정신을 소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예술적 과학이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의사와 시인은 이질적 결합이 아니라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의사로서 환자와 내면적으로 더 잘 소통하면서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할 수 있으며, 의사시인으로서 인간의 내면탐구에 해부생리학적, 심리학적 지식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질문: 문효치 시인이 선생님을 “이미지 낚시꾼”이라고 하셨습니다. 詩作을 위해 특별히 하시는 일이 있으신지요.
―답변: 시는 어떤 느낌이나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독자 나름대로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작업이 중요하겠지요. 어떤 정서나 관념을 연상적으로 잘 느끼게 할 수 있는 구체적 사물이나 메타포를 찾는데 고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가할 때 조용한 공원의 벤치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의 끈을 풀어놓고 구름이 떠가듯이 연상적 상상을 해보거나, 때로는 눈을 감고 안개 속을 헤매 듯 몽환적 상상, 즉 몽상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을 몽상가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 질문: 살아오시면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것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나 신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과도한 욕심으로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 왔다고 생각하며, 늦게나마 시인이 되어 내면적 안정감과 충만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며칠 동안 산통을 하듯 끙끙대다 좋은 시 한 편을 건지면, 인생의 최고 가치인 행복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오늘 좋은 시 한편을 쓸 수 있다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신념이 있으면 진정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잘못한 것으로는, 수련의사 시절과 종합병원 시절 바쁘다는 구실로 아이들 보육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좋은 아빠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 늘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 질문: 선생님은 여행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곳(가장 시적인 곳)이 어디입니까?
―답변: 몇 년 전 여행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역사와 예술이 잘 조화를 이룬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열정적 국민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사성은 톨레도의 천년 고성,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800년의 찬란한 문화, 세비야의 웅장한 대성당, 신대륙의 꿈을 연 까보다로까 등에서 볼 수 있었고, 예술성은 세르반테스의 몽상의 자유인 돈키호테,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구엘 공원과 성가족 성당, 천재화가 고야와 피카소의 미술품들, 안달루시아지방의 열정과 애수의 플라멩코 등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감흥으로 4편의 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질문: 詩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고 앞으로 선생님이 향할 시세계를 말씀해주십시오.
―답변: 시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낮 시간에는 하루 종일 진료에 매여 있고, 저녁 시간에는 각종 세미나나 모임과 약속이 있습니다. 집에 일찍 퇴근해도 혼자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또 밤 11시나 늦어도 12시 전에는 취침해야 됩니다. 몸이 아프지 않는 한 아침 6시에는 반드시 일어나서 양재천 운동을 나가야 하는 것이 저희 집의 생활규칙입니다.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詩作의 방향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의미 부여로 텅 빈 물질세계의 시공간에 영성세계와 연계된 시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 질문: 선생님의 건강 비결이 궁금합니다. 의사시인으로서 건강을 위해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참고로 선생님의 블로그에 건강 정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 다.
―답변: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30분까지 아파트 뒤편 양재천 걷기와 간단한 기구 운동을 합니다. 물론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적당히 합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은 “과욕을 하지 말라”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욕심은 건강에 제일 해로운 스트레스의 주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에 <김영철 내과>를 검색하면 제 블로그의 클리닉 정보 즉 그 동안 <오늘의 한국>과 <중앙뉴스>등에 연재한 건강 에세이 등이 실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문에 현답이 이런 걸까요? 답을 읽으며 내내 따듯했고 김세영 시인나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모든 시인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더 깊이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멸을 체험하셨고 수많은 질문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답이 선생님의 시에 고스란히 담기겠죠. 옥타비아 파스가 “찰나적으로 멈춘 시의 번갯불”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양재천을 걸으며 그런 번개를 맞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시는 나이테로 몸과 같이 살고 죽으리라 생각합니다. 同時代 시인으로서 가슴이 촉촉해집니다. 잘 알고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물구나무서다」는 강한 울림이 있나봅니다. 전문을 다시 읽으며 어려운 시간 내주심에 뜨겁게 감사드립니다.
물구나무서다
김세영
오랜 강직성 직립으로 체증이 생겨서
머리통이 건기의 물탱크처럼 말라갈 때
알갱이 가라앉은 과즙병을
뒤집어 놓듯 물구나무선다
오줌통을 위로 올리고
염통을 아래로 내리니,
머리통의 물이 시원해지고
눈이 맑아진다
단전의 피가 따듯해지고
하초가 충만해진다
사막의 미어캣처럼 불안한
직립을 하느라 잊고 있던
손바닥 바코드를 땅에 인식시키자
아기 팔뚝 같은 새순이 솟아올라
입술 속으로 천연가스를 불어넣는다
물구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목어들이
굳었던 지느러미가 우화하는 날개처럼
다시 부풀어 올라 파닥거린다
물구나무는
물푸레나무처럼 싱그럽고
수초처럼 부드러워진다.
『 미래시학』 2015 가을호
첫댓글 하이브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