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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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시킨 지 두 달이 넘었다. 폐차가 처음은 아닌데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전에는 폐차하고 다음 차를 마련할 때까지 잠시 차 없이 지내긴 했지만 두 달 지나도록 차량 무 보유 상태는 처음이다. 지난 9월초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운전경력 33년 만에 처음으로 앞차를 들이받는 추돌사고를 낸 게 폐차의 직접원인이었다. 앞차가 갑자기 속력을 줄여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완벽한 제동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는데 나중에 보험사로부터 통보받은 대인대물 보상비가 1천여만 원이란다. 외관상으로는 그랜저 범퍼만 파손되었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하게 보였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전방주시 태만과 안전거리 미확보로 발생한 일방과실사고이기에 100% 내가 책임을 졌다. 내 차는 자차보험에 들지 않은데다가 문제를 야기한 제동장치와 범퍼 본넷 등을 손보자면 비용이 족히 백만 원은 넘을 것이다. 게다가 보름 뒤면 보험갱신일이다. 차기 보험료 할증도 보나마나다. 그리고 이젠 내 운전 실력도 믿을 바가 못 된다. 단박에 폐차를 결심했다. 폐차를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먼저 고려해야할 사항이 지금 내게 차가 꼭 필요한지이다. 출퇴근할 것도 아니고 가족나들이할 일도 없으니 당연히 필요치 않다. 무임전철과 버스로 웬만하면 해결이 된다. 다음은 그럼에도 차를 가져야할 체면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차에 대한 애착이 그다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돈과 내 의사로 구입한 차가 아니라 작은아이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미 답은 나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폐차 고철값 40만원에 20만원을 더 보태어 ‘속도위반 신호위반 주차위반으로 밀린 과태료’를 처리했다. 삼년 남짓의 죄값치고는 비쌌다. '쓰러지는 법'의 대가를 제법 호되게 치렀다. 다행히 ‘BMW’ 족에 편입되고 두 달이 넘었는데도 큰 불편은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는 습관을 생활화한지도 꽤 된다. 어디 멀리 가거나 할 때 차가 정 필요할 경우 렌트하면 될 일이고 생활 속에서 걷는 습관이 일상화되었다.
1,2,3 운동이란 게 있다. 1은 ‘버스 한정거장은 걸어가기’, 2는 ‘2km까지는 걷기’, 3은 ‘3층까지는 계단으로 걸어가기’이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1,2,3 레벨을 상회한다. 약속시간 여부, 정거장 간 거리에 따라 다르겠으나 버스 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간다. 달리 운동이라고 하는 게 없으므로 하루에 3km는 늘 걷는다. 내 사는 곳이 승강기 없는 집의 4층이므로 매일 4층 계단을 오르내린다. 지하철에서도 가급적 계단을 이용한다.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운동습관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하루 평균 1만보는 거뜬하다. 만보계 기록을 유지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걷는 동안 전에 그냥 지나치던 것들과도 마주하고 ‘방하착’도 생각한다.
권순진(2019.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