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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나라,경주 남산 답사(5) /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삼릉계 석불①
경주시내에서 나정,포석정을 지나 배리 삼존불을 지나면 삼릉골(냉골)입구가 나타난다.
도로변에 빽빽히 우거진 노송길을 한 번 지나본 사람이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고, 길 건너
송림숲을 들어서면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기가 싫은 곳이기도 하다.
어귀에 3기의 왕릉이 있으므로 지금은 보통 삼릉계(三陵溪)라 부르는데 원래 이름은 잣밭골(栢田谷)이고,상류
(上流)는 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깊은 계곡이라 하여 옛날부터 냉골(冷谷)이라 불러온 것이라 한다.
이 골짜기에는 9곳의 절터가 있고 10체의 불상이 있는데,남산에서 집중적으로 유적 유물이 제일 많은 곳이다.
그런고로 한 페이지당 제한된 사진매수 때문에 3회로 나누어 자료를 정리하였다.
삼릉(三陵)
서남산 주차장(주차료 2,000원)을 건너 커다랗게 서 있는 남산안내판을 따라 들어서면 울창한 노송숲 사이로
세 개의 능이 있어 삼릉(三陵)이라 부르는 왕릉이 보인다. 삼릉의 오른쪽 지척간에는 후백제 견훤에게 포석정에
서 죽임을 당한 경애왕릉이 있다
제일 앞의 무덤은 경애왕의 형님인 경명왕(景明王:917~924) 능이라 전해오고,가운데 능이 경애왕의 아버지인
53대 신덕왕(神德王:912~917) 능이라 전해오고 있다. 맨 뒤의 것은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154~184) 능이라
전해오고 있는데,초기 임금의 능이 왜 이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무덤들은 원래 봉분 둘레에 호석(護石)을 쌓고 큰 자연암석을 둘러놓은 태종무열왕릉(太宗武烈王陵)과 같은
양식이었는데 지금은 다 파괴되어 원형토분(圓形土墳)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앞에 있는 경명왕릉에서는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경명왕릉의 둘레는 52.5m이고 신덕왕릉 둘레는 63m이며,아달라왕릉 둘레는 41.6m로서 신라왕릉으로서는 모두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능들이다.
탐방로
삼릉에서 동쪽방향의 남산을 향하여 나있는 탐방로는 목재판석을 깔아 송림의 운치를 한층 편안히 즐길 수 있도
록 해 놓았다. 부처를 찾아 한 걸음 내딛는 현세의 시간은 코끝을 스치는 솔향에 녹아 마비된 듯 정지되고, 움직
이는 것은 송림 사이를 오가는 바람의 흔적뿐이다....
석불좌상(石佛坐像)
탐방로를 따라 약 300m쯤 들어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없는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앉아 있다.
현재의 높이가 1.6m이고 무릎너비가 1.56m되는 큰 좌불이다.
근년까지도 계곡에 묻혀있던 것을 파내어 지금 장소에 않혀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없고
옷주름들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다만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괴되어 손 모양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편안히 앉은 자세며 기백이 넘치는 가슴이며 넓은 어깨는 신라 전성기(8세기 중엽)
의 위풍당당한 불상이다.
가사(袈裟)의 영총(纓總)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袈裟) 끈을 매듭지어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영총(纓總)수실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우리 나라의 특색있는 장식품인 매듭은 먼 신라때 부터 전해 왔다는 것을 이 가사끈이 말
해 주고 잇다. 부처의 아래옷(군의:裙依)을 동여맨 끈도 예쁜 매듭으로 매어져 있다.
석불의 뒷면
이 불상은 용장사(茸長寺)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처럼 가사끈이 있기 때문에 존명을 정하기
어려우나 여래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총을 늘인 여래상이 중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부근을 발굴 조사하면 머리도 발견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머리를 찾아 얹는다면 통일신라의
대걸작불상이 될 것이다.
석불좌상(石佛坐像) 불단(佛壇)
차려진 불단 위의 손님은 "청설모"다....
또, 업(業)짓는 소린줄 알지만 산 속 불상 앞에 저렇게 불단을 설치해야만 하는지...종교적 경외심은 둘째치고
흉물스럽다는 인상이 더 남는 광경이다. 바위 속에 숨은 남산의 부처는 마음 속 굳은 믿음의 촛불에서만 나투실
것이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불법(어떤 것이 정당한 지는 모르겠지만)으로 설치된 시설물은 물론, 환경과 미관을
해치는 조악한 시설물의 철거도 과감하고 스스럼없이 시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애관세음보살상
머리없는 석불좌상에서 북쪽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뾰족한 기둥바위들이 높고 낮게 솟아 있는
데 그 중 한 바위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下界)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약간 남으로 치우친 서향(西向)으로 서 있는데, 석양이 질 때 불상의 모습이 가장
경이롭다고 한다.붉은 해가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돌아갈 때 하늘도 산도 냇물도 온 누리가
금빛으로 바뀌는 찬란한 순간 서방의 아미타여래를 향해 맑은 웃음을 보내는 이 보살의 모습에
는 누리의 환희가 차고 넘친다.
마애관세음보살상
오른손은 설법인(說法印)을 표시하여 가슴에 들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군의(裙依)를 동여맨 끈은 배 앞에서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그 자락이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따스한 촉감을 일으키는 복련(伏蓮) 위에 서 있는 이 불상의 높이는 1.54m이고 양 팔굽 너비가
0.45m로 우리나라 소녀들의 키에 해당되는데, 이 불상 뒤에는 높이 2.5m 너비 약 1m되는 기름한
바위가 비스듬히 높게 솟아 있어 하늘과의 연결을 암시하고 있다.
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이 바위를 불상의 광배로 삼은 신라인의 넘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살결이 풍만한 얼굴은 미소를 머금었고,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화불(化佛)을 배치하여
관세음보살임을 표시하였는데 목걸이와 팔찌 등 여러가지 장신구들로 화려하게 몸을 꾸몄다.
입술은 지금도 피가 통하는 듯 붉은 빛인데,암석의 붉은 결정이 있는 부분에 입술을 조각하였다
고 하니 바라볼수록 그저 감탄과 경이로움 뿐이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여래의 사랑을 받들어 세상을 제도하시는 보살이다.
정성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청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거나 그 소리(音)를 들으면 곧
구원의 손길을 뻩쳐 주신다고 하는 위력이 큰 보살이다.
그런데 이 관음상이 서 있는 자리에는 집을 지을 만한 곳도 없고 기와조각도 떨어진 것이 없으니
처음부터 노천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을 비바람이 치는 노천에 세운 것은 무슨 뜻일까?
산벼래에 불상을 새기고 산기슭에서 올려다 보며 예배함으로써 이름을 부를 때 마다 그 소리를
듣고 하강하여 주시는 그 감격을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려 함이 아니었을까?
이 불상이 진정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은 석양 해질 무렵이다.
단풍이 드는 가을철 석양 때가 더욱 좋다고 한다.
석불좌상과 마애관세음보살상
마애관세음보살상 입술의 붉은 생동감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붉은 결정이 박힌 암석을 발견했다.
이후 이런 모양의 암석들을 부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 무엇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참 무섭다.
언제 내가 나뒹굴고 있는 산길의 돌멩이에 이토록 눈길 한 번 준 적 있었던가....
선각삼존불(線刻三尊佛)
마애관음상에서 석불좌상으로 돌아나와 100m쯤 더 올라가면 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절벽 바위가 동서로 두 곳에
잇다. 서쪽 바위는 높이가 약 4m이고 너비는3.6m인데 바위면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
동쪽 바위는 서쪽 바위면에서 3m 뒤에 서쪽 바위와 같은 방향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높이는 역시 4m 정도
이고 너비는 7.3m가 된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상단면의 눈에 보이는 길이만 약 30m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덩이다.
이 거대한 바위의 끝쪽 남면(南面)에 아미타삼존상과 석가삼존상이 새겨져 있다.
↑ (서쪽 암면:아미타삼존상) ↑ (동쪽 암면:석가삼존상)
"경주 남산의 불적" 도록 그림.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
서쪽 암면에는 아미타삼존상을 동쪽 암면에는 석가삼존상을 새겼다.
다듬지 않은 자연 바위면에 자유로운 필치로 그린 그림을 선각으로 새겼으니 조각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림이라
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구김살 없는 늠름한 필치는 능숙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들은 바위면을 다듬지 않고 선각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에 한층 더 구수하고 신령스러운 느낌을 풍기게
한다.
석가삼존상
동쪽 암면에 새겨진 본존 석가여래는 넓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문수(文殊),보현(普賢) 두 협시보살은 본존의
양 옆에 서 있다. 여래상은 편단우견(偏袒右肩: 한 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의 매무새)으로 가사를 입고 오른손은
설법인으로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선정인(禪定印)으로 놓여있다.
둥근 원으로 신광(身光)과 (頭光)을 나타내었는데 단숨에 그어진 유창한 곡선은 한없이 시원스럽다.
왼쪽의 문수보살은 마멸이 심하여 모습을 잘 알 수 없으나 연꽃 위에 서서 오른손은 설법인으로 가슴에 들고 왼
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천의(天衣)자락을 잡고 있는 듯하며 얼굴은 여래쪽으로 돌리고 있다.
오른쪽의 보현보살은 손등을 밖으로 하여 손가락 끝을 아래로 드리우고 연꽃 위에 서 있다.
두 보살은 모두 세 개의 구슬을 꿴 목걸이를 걸고 팔과 손목에 팔찌를 끼었을 뿐 상의는 입지 않았다.
두 보살이 여래쪽으로 비스듬히 향하고 서 있으므로 바위 분위기는 아늑하게 통일되어 있다.
아미타삼존상
서쪽 암면의 아미타삼존은 석가삼존과 반대로 여래가 연꽃 위에 서고 양쪽 협시보살(脇侍菩薩)은 연꽃 위에 앉
아 있다. 여래는 오른손 바닥을 아래로 하여 가슴에 들고 왼손 바닥은 위로 하여 배 앞에 들고 있다. 가사는 편단
우견으로 몸에 걸쳤는데 신광은 없고 두광만 둥근 원으로 나타나 있다.
왼쪽의 관세음보살은 여래쪽으로 향하여 윤왕좌(輪王坐:한 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 법)로 앉아 꽃쟁반을 들었고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반대 모습으로 앉아 역시 꽃쟁반을 들고 있다.
두 보살은 같이 둥근 구슬 목걸이를 걸었고 팔과 팔목에 팔찌를 끼었다. 어깨에는 얇은 천의를 걸쳐 천의자락이
나부낀다. 여래가 앉아 있고 협시보살들이 서는 예는 보통 있지만, 여래가 서 있고 보살들이 앉아 있는 예는
극히 드물다.
살아서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부르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죽으면 아미타여래가 보살들을 데리고 죽은 사람의 영
혼을 맞으러 지상으로 하강한다.그때 여래는 서고 보살들은 앉는데 이러한 모습을 내영아미타상(來迎阿彌陀像)
이라 부르니,서쪽 암면 삼존상은 내영아미타상(來迎阿彌陀像)인 것이다.
석가여래는 살아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부처이고 아미타여래는 극락의 부처이다.
아미타여래는 지상에 하강하여 "이 때까지 당신께서 거느리고 계시던 이 생명을 극락으로 데려갑니다"하고 석가
여래로부터 생명을 인계받아야 한다.
이 곳에 석가삼존과 내영아미타삼존이 새겨진 것은 이승에서 저 세상인 극락세계로 생명이 인계되는 중요한 장
소라는 뜻이다. 즉,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이 바로 이 곳이란 의미다.
그 옛날 신라 때는 얼마나 많은 효자 효녀들이 이곳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극락에 모시기 위하여 나무아미타
불을 부르면서 눈물을 뿌렸을까?
불상이 새겨진 바위 위에는 홈을 파서 빗물이 바위면을 적시지 않게 물길을 돌려 놓았다.
또한 바위 양쪽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서 기둥을 세웠던 흔적도 있고 많은 기와조각도 흩어져 있었다 하니
바위 위에 빗물을 가리는 시설이 있었던 모양이다.신라시대 조각품은 많이 볼 수 있으나 그림은 별로 볼 수
없는데, 이곳에서 신라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귀한 유적이 아닐 수 없다.
선각삼존상이 새겨진 바위 등성이를 타고 150m 정도 올라가면, 높이와 너비가 가각 10m쯤 되는 넓은 절벽바위
가 서향(西向)으로 서 있다.
암벽 중앙에는 지름 2.5m되는 연꽃 위에 설법인을 표시하고 앉아 있는 여래상과, 이 여래상의 북쪽에는 오래
헤어졌던 부부가 부처님 은공으로 다시 만나 반가움에 껴안고 있는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부부바위(夫婦岩)
가 있다.
마애불과 부부바위 앞에는 부처를 향한 쪽을 누르면 손끝으로도 흔들리는 흔들바위(浮動石)가 아슬아슬한 모습
으로 아랫돌에 얹혀져 있다.
여래의 몸체는 모두 선각(線刻)으로 나타내었는데 얼굴만은 윤곽을 밖으로 깎아내어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두 눈썹과 눈은 아주 가깝고 코는 길고 입술은 두텁고 커서 균형잡힌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소박
한 위엄이 있다. 머리 뒤에는 신광(身光)을 표현하였다. 중요한 선은 굵게 그었고 옷주름 같은 것
은 가는 선으로 변화를 주었다.
상(像) 전체에서 재주를 부리지 않는 소박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신라 사람들은 부처님이 바위
속에 숨어 계시다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실 때는 언제나 누추한 차림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깊이 신앙하고 있었다.이 불상도 그러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불상이라 하겠다.
이 불상이 내다보는 시야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시원하고 넓게 펼쳐진다.삼릉의 푸른 송림이 구름
처럼 깔렸고 그 너머로 부드러운 망산이 맵시있게 솟았으며, 그 사이로 은빛을 뿜으며 기린내(川)
가 북(北)으로 흘러간다.
참고자료: 윤경렬 著 "경주남산/ 겨레의 땅 부처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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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너머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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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설명,,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 되세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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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金鰲山.금오산)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신 세상너머님 늘 고마움에 감사 드립니다~고청 선생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늘 새로운 느낌으로 재미가 솔솔나는것 같습니다~세상너머님~~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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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익은 사진들... 설명까지 즐감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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