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나의 영웅 안정환
기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때는 김민호 윤학길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에 열광했었고,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초 까지는 기아 허동택 트리오
에 열광했던 그저 스포츠 팬이었지요.
안정환을 처음 알게된 것은 1997년의 하이텔 스포츠 게시판이었습니다.
하이텔 스게에서 활약하던 분들. 지금 들으면 참 아련한 추억의 이름들입니다
이 카페에도 그당시 활동하던 열혈 축구팬들이 계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때만 해도 CM이라는 재미난 겜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졌는데 정작 영문판만 돌아다녀서
소수의 메니아분들만 즐기고 매뉴얼도 돌아다닌 기억이 나는군요.
각설하고. 그때 안정환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축협에 지근거리에 있던 걸로 추측되는
고 모 님의 게시물이었습니다. (이분은 98월드컵이후 축협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졌을때 나름대로 축협의 입
장을 풀이, 상세한 축협 내부 사정까지 설명해서 제가 그렇게 추측하는 겁니다. 아니라면 이 지면을 빌어 죄
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내용은 부산대우에서 대물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재미난것은 대물의 기량을 언급하기 보다는
얼굴이 여학생들 책받침에 나오는 남자같이 생겼다. 기분나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킥킥거리면서 책받침? 대체 어찌 생겼길래?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뒤인가? 송 모님의 게시물에서 그 유
명한 아주대 대학리그 결승전 후반 투입 2골 1어시스트라는 아주 유명하고도 놀라운 사건을 전하게 됩니다.
그걸 보고는 어? 정말 대물인가보다 싶었지요. 책받침에서 축구선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좋아하는 스포츠 팀도 기아엔터프라이즈에서 부산대우로열즈로 바꿨던걸로 기억합니다.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저의 영웅은 언제나 안정환이었습니다. 부진하든 잘하든. 남들이 황선홍(물론 황
선홍은 대한민국의 레전드입니다,) 이동국 할때. 저는 무조건 안정환이었습니다.
제가 최고의 대한민국 스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안정환이 부산대우, 페루자. 시미즈. 요코하마, FC 메
츠. 뒤스부르크를 거쳐 다시 수원으로 온 이즈음. 그를 사랑했던 팬으로서 슬프기도 하지만. 그를 추억하고.
길지 않은 남은 선수생활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남다른 플레이를 감상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안정환은 처음 부산대우에서 뛴 포지션은 오른쪽 미드필더입니다 지금의 이천수자리. 김주성을 닮고 싶기도
했지만 본인의 주포지션이기도 했고요. 사실은 리그초의 안정환은 명성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스텟은 잘모릅니다. 굳이 지금 품은 감상을 스텟을 찾느라 소멸시켜버리고 싶지도 않고요. 제가 아
는 1998년의 안정환은 신출내기 그 자체였습니다. 볼을 예쁘게 찬다고 할까요? 간결했지만 스피드 없는 드리
블. 턱없이 약한 몸싸움. 상당히 날카롭기는 했지만. 역시 약한 슈팅..
안정환의 첫시즌은 그렇게 허망하게 갑니다. 당연히 신인왕도 날아가죠.. 그런데요 그당시에는 고종수가 엄
청떳고 뒤이어 이동국. 3번째가 부산경남에서 약간씩 달아오르던 안정환이었는데 이당시만해도.. 그냥 미남
스타였음은 본인도 부인하지 못할겁니다.
제가 안정환에게 강인한 매력과 열혈팬이 된것은 1999년의 안정환과 페루자 시절의 안정환에게서 그의 진가
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발언이 챔피온쉽메니져 싸이트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올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래도 용기내서
써봅니다 그당시 떴던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중에 이동국과 고종수는 가진 재능을 그대로 꽃피우는 선수들이
었습니다.
그냥 만개지요 만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봐도. 뛰어난 선수들임에 틀림없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
은 선수입니다 즉 좋지만 발전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안정환은 천부적인 육체. 감각적인 머리, 빠른 스피드 어느것도 가지고 출발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1997년
과 1998년의 안정환을 아신다면 제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김주성에 견주기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었지요. 물
론 부산대우에서는 마케팅 차원에서 제2의 김주성 운운하기는 했지만 어불성설이었습니다.
하지만 데뷔년도 이후 안정환은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습니다. 그 증거로 단박에 1999년에 리그 MVP도 하고
상도 받았지 않습니까? 몸싸움을 여전히 싫어하기는 했지만 슈팅에 몸무게를 실을 줄 알게됬고 선수를 제치
고 돌파하는 방법도 일명 종이접기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자기나름대로 여유있게 선수를 제치는 노하우
도 터득합니다
이즈음 이차만 감독은 몰라보게 달라진 안정환의 슈팅력이 아까워 1999시즌부터 안정환의 포지션을 스트라
이커로 보직 변경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결정이 안정환에게 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 이후 숱하게 많은 골을 기록합니다, 경기당 0.6골의 대단한 페이스였던거롤 기억되네요,
그해 부산대우의 르네상스에는 노장 정재권, 김주성의 활약외에 안정환 마니치의 득점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항간에 안정화 넣은거 그거 죄 페널티다. 이런 식으로 비하하는 분들도 있지만 적어도 부산대우의
팬이라면 그런말씀은 못하실 것니다
그때 패널티를 얻어낸 인물 자체가 안정환이었으니까요.. 수비수 2~3을 젖히고 단독 돌진 4번째 수비수 잡아
채기. 패널티. 이런 수순이었죠 대부분.. 그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1999년의 안정환을 지금도 축협게시판에서 활동중이신 신모님(이분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축구사랑면으
로 존경하는 분중 하나입니다, 나이도 지긋하시고요)은 안정환을 가르켜 ”현재 가장 공을 잘 차는 선수“ 라고
단언했습니다.
그 게시물이 올라온 날이 그분이 가족다음으로 사랑하던 부천이 안정환의 4명 돌파쑈에 이은 김기동의 반칙
으로 패널티를 내주는 바람에 1:0으로 패한날 밤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부산대우에서의 안정환은 마라도나였습니다, 수비가 강한데 비해 미드필드가 약한 부산은 안정환과 마니치
가 부득이 마라도나가 될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단독돌진. 패널티. 단독돌진 패널티....
그해에 안정환과 마니치가 얻어낸 패널티 숫자를 찾아보시면 경악을 금치 못하실겁니다.
1년전의 신출내기 안정환이 나날이 뜨거워지는 인기를 무시하고 오르는 그 놀라운 발전의 페이스에 저는 사
랑을 느꼈습니다. 진득히 목표를 향해가는. “향기로운 남자”를 느꼈으니까요
화려했던 1999년을 정리하고... 2000년이 개인적으로 볼때 2000년 이 해가.. 안정환의 팬으로서 제일 안타깝
고 눈물이 나며.. 지금의 돈밝히는 안정환이라는 오명도 뒤집어 써버린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예 다 아시는군요 바로 페루자입니다. 안정환의 팬으로서 가장 안타까운것이 왜 하필이면 페루자였나입니다.
그때만해도 부자지간이나 다름없었던 안종복 대우로열즈 단장이 안정환 경기테잎 하나만 달랑들고 여기저
기 해외진출을 모색했습니다. 당연히 유럽팀이 받아줄곳이 있었겠습니까?. 변방리그 스타인데요.. 그리고 그
때만 해도 1999년의 활약을 국대에서는 그다지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허정무의 신뢰를 받지 못했거든요, 이
상하게 안정환만은 따돌리는 느낌이 확실히 났습니다. 그렇게 기용안하다가 코리아컵 반짝 활약하니 한두게
임 기용하고 그뒤로 한게임 부진하니 다시 영영 자신의 재임중에는 발탁하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그럴진대. 오라는 팀이 없어 애를 태우던중 한팀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이호진선수가 소속된 레알라싱 산탄데르입니다. 이당시만 해도 스페인 2부리그였고 미드필드가 부실한
팀이라 안정환의 기착지로는 안성맞춤이었는데, 무슨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안정환은 라싱의 제의를 거
절합니다.
아까말한 하이텔 스게의 신모님. 그외 여러분들께서 안정환의 산탄데르행을 지지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1부 승격의 저력이 있는 팀이었고. 무엇보다. 당장은 선수층이 얇았으며 (FM 해보신분들 아
실겁니다 없는 집안에서는 임대도 피같이 반가운거요). 기술을 중시하는 스페인리그. 그리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포지션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한걸로 기억합니다
이같이 좋은 자리를 왜 안정환이 거부했는지 도무지 알수 없는 일입니다,
혹자는 이를 임대였기 때문에 거절이라고 하지만 페루자는 임대아니었습니까?
이걸 거부하고 안정환은 독자 에이전트를 고용 다시 물색에 나서고 페루자로 떠나갑니다.
이때부터 안종복 단장과의 삐걱임이 시작되었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안정환은 거치 세리에A서 무진장 고생을 합니다.. 새삼 페루자나 그곳으로 간 안정환을 비
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여기서 안정환은 제2단계 업그레이드를 한다는 것입니다
설움과 설움속에서요. 히딩크가 안정환을 각성시켜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안정환은 페루자에서 다시금 월
드클레스로 발전합니다 안정환을 지켜본 분들은 제말을 아실겁니다.
거기서 골 띵하다고 안하던 헤딩슛을 즐기게 됐고. 거기서 박성화도 칭송한 거친 몸싸움을 이악물고 버티는
법을 배웠으며, 예의 그 종이접기가 사라지고 원터치 20도 슛을 완성했으며, 쓸데없는 멋 플레이가 없어졌습
니다. 머 과장해서 유벤투스전에 누구를 발랐네 이런 과장섞인 발언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확실하고 명백한 것은 2000년의 안정환은 고통속에서 다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역경을 이겨냄은 물론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한단계 더 발전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안정환을 좋아합니다.
노력파 박지성 노력파 이영표 하지만. 저는 그들이 정확히 무슨 노력을 얼마나 해서 정확히그 노력이 플레이
스타일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모릅니다. 그저 노력을 해서 그 자리에 갔으니 노력파라는데 토를 달지 않을 뿐
입니다.
하지만 그해까지의 안정환은 꾸준하게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생긴거 답지 않게요. 그건 저에게 인간의 능력에 대한 하나의 경외였습니다.
히딩크는 그저 그에게 지치지 않는 묘약인 독기를 넣어줬을 뿐입니다.
물론 지금은 망가졌습니다. 더 이상의 제가알던 안정환도 한국의 최고 축구선수 안정환도 아닙니다.
하지만 1999년에서 2001년까지의 안정환은 한인간의 노력과 발전의 파노라마를 시연해줬습니다. 저에게요.
처음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안정환을 다시 볼 수는 없겠지만. 제발 돈만 밝히는 안정환 돈정환. 공도 못차면서. 깝친
다는 둥 이런 비난은 삼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도 박지성 이동국 이영표이 듯이 안정환을 사랑하는 팬도 있으까요 그리고 그는 돈은 좀 바라는지
몰라도 재능자체를 의심받는다는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저 이제 고생 끝에 자리를 잡았으니 동갑내기 나의 영웅이... 더 이상 필요이상으로 굴욕당하지 않고. 그답
게 정말 제가 알던 그 노력파 안정환 답게 내년 K 리그 골문을 시원스레 갈라주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안정환형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산대우 써포터였습니다..그때 구덕경기 거의 다 갔었는데...ㅜ ㅜ아직도 생각나는건, 경기중 부상 당해서 밖에 실려나와 다시 들어가려고 준비할 때 저랑 제 친구가 "안정환 화이팅!"하고 외치자 저희를 보며 웃으며 손 흔들어주던 안정환 선수..비록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갔지만 그의 부활이 기대됩니다...ㅠ
안정환 선수 솔직히 저에게 실망을 안겨준 선수이기는 합니다..;; 더 큰 선수로 나아갈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수원 삼성에 입단한 이상. 그의 이름값에 걸 맞는 활약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나 그당시 수원 대 부산 경기에서 .. 수원시민이였는데 부산 응원 했습니다. 비도오고 춥고..경기는 졌지만. 안정환은 MVP.
안정환선수 팬으로선 마음에 와닿는글..
안정환화이팅!
저 역시도 제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제일의 축구선수... 정말 플레이를 볼때마다 하나하나가 센스가 느껴지는 터치들... 정말 대성할줄알았지만 그래도 케이리그에서라도 레전드로 남아주세요...제발...
내 기억속 k리그 레전드 중 한 명, 안정환....
전 안정환 98년도 부산있을때 안양 서포터 에게 'ㅗ'한 기억 밖에 그리고 그걸 봐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