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로세움의 흥행
콜로세움이 완공되었을 때, 준공을 기념하는 행사는 100일간이나 지속 되었는데 이때 희생된 맹수의 수만 9000마리가 넘었다고 한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는데 허나 이 콜로세움에서 피를 흘리는 싸움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람들이 동물 위로 올라가 춤을 추거나 체조를 하기도 하고 동물들이 직접 뒷발로 일어서거나 물속에서 곡예를 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바다표범이나 사슴, 영양, 원숭이, 개 등도 조련을 받아 갖가지 쇼에 등장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경기장에 물을 넣어 해전을 본뜬 싸움을 상연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후에는 「박」과 같이 복잡한 무대 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에 이러한 물을 사용한 연출은 불가능이 되었다.
제정기 로마의 시민의 오락시설로써, 여기에서는 검투사의 시합, 맹수연기, 모의해전 등이 시행되었다. 그 중에서는 검투사 시합은 공화정 말기에 세계 정복자로서의 로마군들의 전투정신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생긴 경기이다. 훗날 이 경기를 위하여 검투사를 양성하게 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잔인한 양상을 변모 되었다.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코모두스 등 여러 황제들도 직접 검투에 참가하였다. 그 중에 성격이 포악했던 코모두스에 의해 수많은 검투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 경기를 금지하려 하였으나 이 경기에 대한 열광을 막을 수 없었다. 5세기 초반 동방에서 온 텔레마크라는 수도사가 검투경기 도중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관중들을 향하여 경기를 중단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고 405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격투기를 폐지함에 따라 그 잔인한 역사가 끝났다.
1084년 노르만족의 로마 약탈로 로마는 황폐화되고 콜로세움도 파괴된 채로 오랜 세월 잊혀져있었다. 게다가 지진으로 파괴되자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 재료를 이곳에서 운반해 갔으며 양과 소를 먹이는 방목장으로 전락할 정도로 방치되었다. 이 폐허의 극장 콜로세움에 사용된 건재는 다른 건축물에 유용계속 되었다. 즉 일종의 채석장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 대리석은 산피에트로 대성당에도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박해된 크리스트교도가 여기서 순교 했다고 전해지는 것 때문에 로마 교황 베네딕트14세에 의해서 콜로세움은 신성하다고 해서 보존되게 되었다. 즉 일종의 성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도를 박해하였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