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밀해부]怪力! 한국바둑의 비밀
세계 棋戰 20연승 대기록
박치문 중앙일보 바둑전문위원 (daroo@joongang.co.kr)
한 국 바둑이 세계대회 20연승의 대업을 이뤘다. 바둑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지적 게임이라는 말을 인정한다면 한국인의 두뇌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한계를 넘지 못하는
중국, 끝없이 추락하는 일본, 한국 바둑은 실력과 기세와 심지어
운의 측면에서도 세계 최강이다. 정상의 바둑평론가 박치문이 해부한 괴력 한국 바둑의 비밀,
그 14년 간의 정밀한 기록….
한국 바둑이 세계대회 20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창호 9단이 지난달 일본 도쿄(東京)에서 벌어진 도요다·덴소배
세계왕좌전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을 격파함으로써 이
같은 대기록이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이 같은 놀라운 연승 행진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그 선두에는 물론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두 사제가 서 있고 유창혁 9단과 이세돌 3단이 뒤를 받치고 있다.
특히 이창호 9단은 중국이 주최하는 춘란배 세계선수권과 LG배 세계왕좌전의 결승에 진출해 올해 세계대회를 싹쓸이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한동안 침묵하는 듯 보였던 이창호 9단이 용암처럼 뜨겁게 세계 무대를 휩쓰는 모습은 자못 경이적이다. ‘돌부처’라 고 불리는 이창호 9단은 반포에서 같이 기거하는 할머니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어릴 때는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장 싫어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창호는 ‘반야심경’을 들고다니며 스스로를 깊숙이 다스리고 있다. 깊은 우물처럼 바닥을 알 수 없는 천재 이창호의 새로운 변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 바둑사를 주도해온 일본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중국은 전력면에서 한국보다 강하거나 대등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믿었으나-그렇게 믿고 싶어했으나우승컵을 따내지는 못했다. 신기하게도 결정적인 순간, 승리의 여신은 언제나 한국 편을 들어주었다.
지난 10여 년을 돌아볼 때 한국의 우승은 서커스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왔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면서도 기어이 이겨 왔다. ‘운’(運)이 강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한국만 매번 운이 좋은가. 운 대신 기세가 강한 탓일까.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승부란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창호 9단도 20판을 두면 5판은 진다. 조치훈 9단은 일본에서 1인자의 자리에 있을 때 승률이 60%를 밑돌았다.
바둑이란 게임도 이처럼 의외성과 변수가 많은 게임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 바둑은 그처럼 완벽한 승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은 한·중·일 3국의 단체전에서는 10번 모두 우승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한국 바둑과 중국 바둑 그리고 일본 바둑의
총 전력을 비교할 때 한국이 가장 강하다는 것은 3국이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실제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더구나 한국이 최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동양 3국 중 전력이 가장 약한 나라였다. 한국은 다만 소수의 천재들을 앞세워 우승을 일구어냈고 그나마 기적적인 역전승이 태반이었다.
한국 바둑의 역전 우승 스토리를 점검해 보자. 이 스토리를 살피는 일은 세계 바둑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길이며, 오늘의 한국 바둑과 내일의 세계 판도를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1989년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조훈현 9단과 중국의 네웨이핑(衛平) 9단이 맞붙었던 이 대회 당시 한국은 전력이 형편없었다. 16명의 본선 멤버 중 한국은 조훈현 단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당시 한국 바둑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그러나 조훈현은 8강전에서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에게 다 진 바둑을 거의 떼쓰듯 뒤집어 간신히 살아남았다. 결승전에서도 네웨이핑에게 1대 2로 뒤지다 4국에서 네웨이핑의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막판 실수로 1집(한국식으로는 반집)을 이겨 2대 2가 됐고 결국 3대 2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세계 최강자로 지목되던 네웨이핑은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무대 뒤로 사라져야 했다.
반면 조훈현은 40만 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획득하며 한국 바둑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고, 세계 바둑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1992년 동양증권배 결승전=17세 천재기사 이창호 9단과 일본의 린하이펑(林海峯) 9단이 결승에서 격돌, 처음에는 이창호가 밀렸으나 2대 2까지 추격하여 타이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최종국.
이 바둑에서 이창호는 린9단의 페이스에 휘말려 끝내기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큰 차이로 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초읽기 상태에서
이창호는 계속 호착을 연발하고 린9단은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연발한 끝에 차이가 점점 좁혀지더니 이창호가 기어이 반집승을
거뒀다. 그렇게 실수를 연발하고도 린9단에게는 마지막까지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마저 다 놓쳤다.
▶1993년 후지쓰배 준결승전=한국은 1회 잉씨배에서 우승했으나 일본이 주최하는 후지쓰배에서는 매년 참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1993년 세계 바둑을 주도하던 도쿄(東京) 한복판에서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 두 한국기사가 결승에서 맞붙어 유9단이 우승컵을 따낸다. 이 대회의 준결승전에서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은 모두 일본 기사와 맞붙어 필패의 상황에 몰렸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멸적인 실수를 거듭한 끝에 나란히 기적적인 ‘반집승’을 거두고 결승에 오르게 됐다.
▶1993년 2회 잉씨배 결승전=한국의 ‘잡초류’ 서봉수 9단과
일본의 ‘미학파’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이 맞붙었다.
중반전에서 서9단이 대패하여 바둑은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백을
쥔 오타케의 압승 무드. 이후 서9단은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계속 몸을 던지는 강수를 구사하고 오타케는 계속 물러서기를 반복하다 오타케가 허망한 착각을 범해 대마를 죽이고 만다. 냉정히
계산하면 대마가 잡히고도 오타케가 이기는 바둑이었으나…. 수사적인 표현으로는 서봉수가 지닌 ‘잡초’의 생명력이 만들어낸 우승.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운이 좋았다.
*이 무렵까지 한국은 우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실력으로 압도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기적의 연속이었다.
▶1996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1995년 세계 바둑계에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 9단이 새 강자로 등장했다. 그는 두 개의 세계대회를 잇따라제패하며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를 굳혀가던
한국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새 인물 마샤오춘과 기존의 최강자인
이창호 두 사람 중 과연 누가 진짜 강자인가 궁금해했다. 때마침
1996년 벽두에 전개된 한·중·일 3국의 국가대항전인 진로배가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한국은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두 사람이, 중국은 마샤오춘 9단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일본은 모두 탈락한 상태였다. 여기서 마9단과 이창호 9단이 맞붙어 마샤오춘이 승리했다.
그리고 다음 판은 조훈현 9단과 마샤오춘 9단의 최종전. 이 한판으로 우승이 결정되는 판이었다. 당시의 마샤오춘은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였다. 중반전에 접어들기도 전에 조9단은 심각한
집부족증에 몰려 대마를 잡지 않고는 이길 수 없는 위기에 몰렸다. 대마는 살 길이 얼마든지 있었고 마샤오춘의 승리는 결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샤오춘은 얼른 살지 않았다. 마치 스릴을 즐기는 듯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다 실수가 연거푸 튀어나오면서 대마가 진짜 함몰해 버렸다.
중국이 단체전에서 우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이때 사라졌다.
*마샤오춘은 감각이 탁월하고 빠르다. 수읽기도 깊어 기술면에서는 가히 천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샤오춘에게서는 천재의 비틀림이랄까, 괴팍함이 느껴진다. 이 괴팍함이 절정의 승부에서 아주 약간 집중력을 앗아가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조금만 더 담백했더라면 그는 최후의 벽을 넘어 세계 정상에 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장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그게 그의 한계였을까, 운명이었을까. 만약 이 바둑에서 마샤오춘이 승리했더라면 이후의 바둑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1998년 3회 삼성화재배 결승국=이창호 9단과 마샤오춘 9단의
격돌이다. 마샤오춘은 그 전해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 이창호와
맞붙어 필승의 바둑을 반집차로 역전패했다. 이 패배로 마샤오춘은 이창호 9단에게 악몽의 ‘10연패’를 당하며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2년 전인 1996년 세계 1인자의 자리를 놓고 각축을 시작한 두 사람의 대결이 이창호의 완승으로 끝난 장면이었다.
마샤오춘은 그러나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회광반조(廻光反照)라고 할까. 10연패를 당하고 심장이 갈갈이 찢긴 그 순간 오히려 그는 환하게 타올랐으니 그게 바로 이 결승전이었다.
마샤오춘은 첫판을 이기며 시종 앞서나갔으나 이창호도 줄기차게
따라붙어 2대 2. 최종국에서 서로 실수가 오갔으나 막판 마샤오춘에게 기회가 왔다. 그것도 연속 몇 번의 기회가 이어졌다. 그러나
마샤오춘은 눈이 먼 듯 그 쉬운 수단들을 외면했고 결국 우승컵은
이창호에게 돌아갔다. 당시 관전기의 제목은 이렇게 붙어 있었다.
‘마9단의 두뇌는 작동을 멈췄는가.’
네웨이핑 이후 한국 바둑의 최대 적수였던 마샤오춘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2001년 삼성화재배 결승전=조훈현 9단과 중국 창하오 9단의 대결이다. 창하오는 준결승에서 천적 이창호 9단을 꺾어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고 때마침 대국 장소도 ‘서울’에서 자신의 고향인 ‘상하이’(上海)로 변경돼 그는 우승의 모든 조건을 구비한 듯 보였다. 신중한 중국 언론조차 ‘조훈현은 늙었다. 창하오에게는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가 모두 따르고 있어 우승의 염원을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호언했다. 3번기의 첫판은 과연 창하오의 승리. 두번째 판에서도 창하오는 필승의 국면을 맞이했다. 평소 실력의 절반만 발휘해도 이길 수 있는 국면. 그러나 창하오는 결정타를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렸고, 순간 조훈현의 섬광 같은 흔들기가 이어지면서 국면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결과는 조훈현의 ‘반집’ 역전승.(왜 한국 바둑은 그토록 반집 역전승이 많은 것일까.) 3국에서는 낙담한 창하오를 조훈현이 밀어붙여 낙승. 그 스토리가 12년전 조9단이 네웨이핑을 이길 때와 비슷했다.
*창하오는 이창호 9단보다 한 살 어린 27살이다. 그러므로 아직 ‘사라짐’을 운위하기에는 너무 이른 느낌이다. 하지만 창하오는 이 패배 이후 줄곳 슬럼프를 보였고 중국에서도 랭킹 1위 자리를 왕레이(王磊) 8단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올해 도요타·덴소배 결승전에서 이창호 9단과 만난 창하오의 모습은 그가 더 이상 이창호의 적수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싸우기도 전에 지고 들어가는 전형적인 패자의 모습이었다. 네웨이핑·마샤오춘에 이어 창하오마저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웨이핑은 조훈현 9단과 동갑이고 마샤오춘은 유창혁 9단과 동갑인 37세다. 조훈현과 유창혁은 여전히 건재한데 반해 네웨이핑과 마샤오춘이 사라지고 만 것은 승부세계의 부침이 실력이나 나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웅변해 준다. 이기면 자신감이 생기고 상승한다. 패배는 ‘큰
상처’를 만들고 가라앉게 만든다. 패배는 결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란 치유약이 없는
바이러스처럼 위험한 것이다.
▶2002년 삼성화재배 8강전=조훈현 9단과 중국의 뤄시허(羅洗河) 9단이 격돌했다. 느닷없이 8강전을 예로 든 것은 이 대회에 몰아친 ‘중국돌풍’ 탓이다. 이 대회에서는 예선전부터 중국이 바람을 일으켰다.
*삼성화재배는 예선전을 오픈하여 한·중·일의 기사들이 직접 대결하는 대회. 이 대회에 한국은 180명이 출전하여 겨우 6명이 본선 티켓을 얻었고 일본은 70명이 참가하여 전멸당하고 말았다. 반면 중국은 불과 32명이 나서서 10명이 본선 티켓을 움켜쥐었다. 이 대목은 중국 바둑의 ‘허리’가 얼마나 강한가를 확인시켜 준다. 중국에는 강자들이 아주 많고 한국의 프로들에 비해 평균적인 수준이 높다.
대회 8강전에는 한국 2명, 중국 6명이 올라갔는데 다른 한 명의 한국 기사인 최명훈 8단은 일찌감치 탈락하고 조훈현 9단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조9단마저 중국의 ‘감각파’ 뤄시허의 묘수에 걸려들어 중반에 이미 대패의 형세에 직면했다. 해설자들조차 “화타가 살아와도 구할 수 없는 바둑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바둑에서 뤄시허는 수십 번의 이길 기회를 모두 놓치고 끝내 반집을 졌다. 조훈현 9단조차 “이 판을 내가 이기려면 실전의 코스 외에는 없을 것이다. 뤄시허가 수많은 길을 다 놔두고 그 코스로만 찾아와준 것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100% 진 바둑이었는데 이후 뤄시허가 120% 협조해준 특이한 한판이었다.
나는 이 판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귀신이 돌보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허망한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조훈현은 기적적인 역전승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다. 그의 생애는 ‘기적과 역전’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점철되어 있다.
이 대국은 울산 방어진에서 열렸는데 대국날 저녁 조9단이 기분이
좋았던지 바닷가로 가 일행에게 자연산 생선회를 실컷 샀다. 그날
조9단은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역전승을 참 많이 해봤지만 그 중에서 오늘의 역전승이
가장 심한 케이스 같다. 반집 이긴 결과를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왜 또 하필이면 반집이란 말인가. 반집은 운이라지만 그렇다고
패배의 멍에가 벗겨지지는 않는다. 패자는 이 반집이라는 수치에
더욱 크게 상처를 입는다.)
▶2003년 농심배 마지막 라운드=농심배는 과거 진로배를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대항전이다. 한·중·일 3국이 5명씩 대표선수를 내세워 대결하는데 한국이 이 대회 전까지 9번의 우승컵을 모두 휩쓸었다. 특히 이번 대회는 일본이 랭킹1~5위까지의 최상급 기사를 총출동시켰고 중국도 그들이 자랑하는 ‘신예 3강’을 모두 출전시킴으로써 3국의 실력비교에는 더없이 적합한 무대이기도 했다.
*농심배는 예선전이 재미있다. 1, 2차 구분 없이 누구에게도 프리미엄을 주지 않고 똑같이 토너먼트로 대결한다. 한국은 5명의 대표 중 4명을 이 같은 예선으로 뽑는다. 나머지 한 명은 추천 케이스. 그런데 몇년간 예선전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탈락하지 않은 기사는 이창호 9단 한 사람 뿐이었다.
한국기사들이 지난 몇 년 사이 매우 강해져 조훈현 9단이나 유창혁 9단, 이세돌 3단도 추풍낙엽으로 떨어져나갔다. 이들은 다시 추천 케이스로 구제되기도 했지만, 이번 예선에서는 3명이 동시에 탈락하는 바람에 치열한 경합 끝에 조훈현 9단이 구제됐다. 물론 이창호 9단이 탈락했으면 그가 추천 ‘0순위’가 된다.
한국기원은 예선전 때 이창호 9단이 겪는 미묘한 입장(져도 선발되는데 프로로서 열심히 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을 고려하여 앞으로 추천 케이스는 이창호 9단으로 고정시키기로 했다. 다른 기사는 더 이상 구제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회는 연승전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한 사람이 10연승하면 그대로 우승할 수 있다. 실제로 몇년전 서봉수 9단이 혼자 9연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따낸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초반부에는 신예들을 앞세워 탐색전을 벌이다 마지막 장면에 승부가 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최종주자, 즉 주장을 누구로 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대회다. 이창호 9단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천적이 많기 때문에 대회가 막판에 이르면 누가 최종 주자로 나갈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의 신예 박영훈 3단이 초반 4연승으로 기세를 올렸다. 중국의 구리(古力) 7단과 창하오 9단, 일본의 기성 왕리청(王立誠) 9단과 NEC배 우승자 장쉬 7단이 그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박3단은 중국의 신예 강자 쿵제(孔杰) 7단에게 패배했고 쿵제는 일본의 고바야시(小林光一) 9단에게 무너졌다. 고바야시는 한국의 윤현석 7단을 꺾은 다음 중국의 신예 후야오위(胡耀宇) 7단에게 꺾였는데, 후야오위는 이후 한국의 김승준 7단과 일본의 본인방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에 이어 막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고 온 한국의 조훈현 9단과 일본의 마지막 주자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마저 꺾고 파죽의 5연승을 기록하게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의 ‘신예 3강’을 얘기해 보자. 구리 7단과 쿵제 7단, 그리고 후야오위 7단은 다같이 20~21세의 신예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4천왕(중국은 한국의 4인방을 이렇게 부른다)을 여러 번 이긴 경험이 있다. 구리와 쿵제는 이창호 9단을 한 번씩 이겼고 후야오위는 지난해 이창호 9단과 두 번 싸워 두 번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운좋게 이긴 것이 아니라 내용도 충실하게 이겼다. 이리하여 후야오위는 이창호의 새로운 천적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농심배가 시작되자 후야오위를 ‘이창호 저격용’으로 아꼈다. 그러나 5명 중 3명이 초장에 떨어져나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를 내보냈는데 기대를 어기지 않고 5연승의 수훈을 세웠다.
이로써 농심배는 막판에 중국이 우세해졌다. 한국은 한 명(이창호 9단), 일본은 전멸했고, 중국은 후야오위 외에도 뤄시허 9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창호 9단 대 후야오위 7단의 한판승부는 중국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국영 CCTV가 하루 종일 중계했고 여러 개의 인터넷 사이트도 생중계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다.
대국은 흑을 쥔 이창호의 우세로 출발했으나 중반무렵 후야오위가 흑진영을 철저히 유린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번에 백우세로 바뀌었다. 한국쪽에서는 TV해설에 나선 유창혁 9단조차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후야오위의 별명은 ‘둔도’(鈍刀)다. 무딘 칼이라는 뜻인데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건너지 않는 신중함과 조훈현의 강한 흔들기에도 끄떡없는 뱃심 그리고 어린 시절의 이창호를 연상시키는 탁월한 계산 능력 등이 그런 별명을 만들어냈다. 이창호 9단을 중국에서는 ‘석불’(石佛)이라고 부른다.
'둔도’가 계속 이기자 중국 사람들은 “석불은 오직 무딘 칼로만
동강낼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둔도는 드디어 석불을 동강내기 일 보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또 예의 그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 침착하던 후야오위가 승리가 눈앞에 닥치자 갑자기 미쳐버린 것이다.
그는 돌연 수없는 손해를 자초하는 지리멸렬의 행동 끝에 자멸해
버렸다. 이 판이 실질적인 결승전이었다.
이9단은 다음 판에서 뤄시허를 가볍게 제쳐 한국의 단체전 10연승을 이끌었고 며칠 뒤 도요타·덴소배 우승으로 ‘한국바둑의 세계대회 20연속 우승’이라는대기록을 달성했다.
실력과 기세, 운의 3박자
지금까지 살펴봤듯 한국의 연속 우승은 압도적 실력의 우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조훈현과 이창호가 만들어낸 운과 기적의 파노라마’라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만을 애호하는 ‘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방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나는 감히 ‘승부에서의 운이란 기세가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고 싶다. 강한 기세에 운이 따른다는 얘기다. 특히 조훈현의 강렬무비의 기세는 그의 오버페이스, 실수 등을 채워주는 보약이 되고는 한다.
그리하여 중국의 네웨이핑·마샤오춘·창하오 등 실력에서는 차이가 없는 고수들이 차례로 이 두 사람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실력과 기세 그리고 운, 이것이 승부의 3박자인 것이다(이창호 9단은 “승부란 당일의 기세”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세계 바둑계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한국 내부를 돌아보면 이미 이세돌 3단(20)이 이창호에 이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를 확보한 듯 보인다. 한국 바둑은 밑바탕이 부실한 가운데 이창호·조훈현·유창혁·서봉수 등 발군의 실력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행운 덕에 이들을 앞세워 세계를 정복했다. 서봉수가 근래 부진하지만 어느덧 이세돌이 더욱 충실하게 그
빈틈을 메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신예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송태곤 3단(17)은 올초 조훈현 9단에게 3대 2로 승리하며 천원전 우승컵을 따냈다. 그는 발군의 활약으로 2002년 신인왕이 됐는데, 그의 장점은 조훈현이나 이세돌 같은 ‘큰 싸움꾼’들에게 뒤지지 않는 전투 능력에 있다.
조한승 5단(21)은 조훈현 9단을 2대 0으로 꺾고 국수전 도전권을 손에 넣은 뒤 이창호 9단과 맞붙어 0대 3으로 졌다. 그는 2년 연속 다승왕에 오르는 등 탁월한 감각과 두터운 바둑 스타일로 서서히 정상에 다가서고 있다.
박영훈 3단(18)은 이미 2000년도에 천원전에서 우승했고 이번 농심배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활약을 보였다. 박3단은 적어도 이번 농심배 전적만으로 평가한다면 중국과 일본의 1인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최철한 5단(18)과 원성진 4단(18)은 박3단과 함께 ‘송아지 3인방’으로 불리는 신예 강호들이다. 최5단은 지난번 농심배에서 3연승을 거둔 전력이 있고 원4단은 조한승과 함께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이외에 숱한 신예들이 뒤를 이어 달려오고 있다. 윤준상 초단(16)은 지난해말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조훈현 9단과 일진일퇴하다 1대 2로 진 새내기. 입단 2개월만에 세계 32강에 오른 박진솔 초단(16)과 얼마전 ‘입신과 수졸의 대결’에서 서봉수 9단을 꺾어 화제를 모은 열네 살짜리 강동윤 초단도 큰 재목으로 꼽힌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열거한 숱한 신예 강자들이 최근 종료된 왕위전 예선전에서 모두 탈락했다는 사실이다(조한승 5단은 본선 시드). 한국 바둑의 숲은 깊어졌고 그 속에 강자들이 우글거려 이제는 누가 누구 칼에 맞을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바둑의 저력은 그만큼 강해졌고 튼튼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신인들은 최상급 기사들과는 아직 거리가 있으며, 이들이 최강자들만큼 자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해석도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최명훈 8단이나 안조영 7단 등은 아직 20대로 젊고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이다. 종종 조훈현이나 유창혁을 꺾고 도전기에 나선다. 그러나 이들은 마지막 한 겹을 벗지 못하고 이창호 9단에게 번번이 무너졌다. 비록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이 ‘종이 한 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 무대에서는 우승하기 어렵다. 신인들 중에서 현재 정상급에 확실히 이름을 올린 기사는 이세돌 한 사람뿐인 것이다.
개혁 시작 일본 바둑, 불운했던 중국 바둑
한국에 맞서고자 하는 중국과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은 이제 막 개혁을 시도하며 분위기 일신에 노력하고 있으니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에도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 7단이 1인자 자리에 도전하는 등 신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나 한국기사들은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일본은 한국과 20명씩 단체전을 펼칠 때 5승을 거두면 다행인 처지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다르다. 20명이나 30명이 대결한다면 누가 이길지 모른다. 다만 한국은 최상급의 소수가 불세출의 천재들일 뿐 아니라 승부에 턱없이 강하고 운도 턱없이 강한 기사들인 데 반해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거듭 얘기하지만 중국은 실력은 부족하지 않은데 흔히 ‘정신력’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지금까지 한국에 크게 밀렸다.
그러나 중국에도 한국의 최상급 기사들과 겨룰 만한 한 명이 나타난 듯 보인다. 바로 후야오위 7단이다. 그는 이번 농심배에서 이창호 9단과 내공을 겨루다 그만 막판에 불타버리고 말았지만 그 직전에 조훈현 9단이나 요다 9단을 꺾을 때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후야오위는 부동심을 지닌 기사였다. 이창호에게는 밀렸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것 같은 강한 부동심을 지닌 기사라는 뜻이다.
한국 바둑은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이 아직도 더 강해질 여지를 보이는 데다 조훈현·유창혁이 건재하고 송태곤·조한승 등 신진세력이 대거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도 세계 최강의 자리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