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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는 충남 청양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장곡사에는 특별함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유래가 어찌 되었는지 절에 계시는 스님도 잘 모르는 그런 특별함이 있다. 바로 대웅전이 둘이라는 것인데, 그 대웅전도 사실 대웅전이라고 하기에 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래 있어 하대웅전이라고, 그보다 높은 곳에 있어 상대웅전이라고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두 대웅전 모두 석가모니불을 모신 게 아니라 하대웅전에는 금동약사여래불을 상대웅전에는 철조비로자나불과 철조약사여래불과 소조아미타불을 모셨다. 사실 장곡사를 찾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대웅전 때문일 것이다.
상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장곡사 전경
칠갑산 등산로에서 바라 본 장곡사전경
장곡사 일주문
운학루는 옛날 삼곡사(마곡사, 장곡사, 운곡사)의 하나인 운곡사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운곡사는 지금 폐사되었다.
운학루 예전엔 천왕문으로 사용
장곡사 상대웅전 전경
상대웅전
보물 제162호 고려시대 목조건물
장곡사 경내의 언덕 위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물. 보물 제162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의 건물이나 근세에 들어와 개수했기 때문에 많이 변형된 것으로 짐작 된다. 높은 돌기단 위에는 자연석의 원형 초석을 바탕으로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포작(包作)을 짜올렸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평방(平枋) 없이 창방(昌枋)만 설치하고 그 가운데에 공간포(空間包)를 하나씩 배치하여 주심포(柱心包)와 다포(多包)가 절충된 양식을 보여준다. 공포는 외일출목(外一出目)이며 특히 굽받침이 달린 주료(柱料)와 첨차(遮) 형식은 고려시대 주심포 계통의 건물에서 보이는 고식이지만 쇠서[牛舌] 위에 연꽃을 조각한 것과 보아지[樑奉] 형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에서 보이는 수법이다. 건물의 앞면에는 가운데 칸에 3짝의 살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2짝의 정(井)자 살문을 달았으며 다른 면은 회벽으로 막았다. 내부에는 고주(高柱)가 없고 다만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서 종보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중앙 및 동북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천장은 판자로 짠 우물천장으로, 후대에 가설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방전(方塼)을 깔았는데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연화문전(蓮花紋塼)도 섞여 있다.
상대웅전 배흘림기둥
상대웅전 처마와 공포
장곡사 상대웅전 어칸문
장곡사 상대웅전 창방 + 주두 (오목굽)
상대웅전 가구 연등천정이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의 方塼 (연화문)
상대웅전에는 부처님이 세 분 계신다. 사진의 왼쪽에 계신 분이 비로자나불이고 오른쪽이 약사불이다. 왼쪽의 아미타불은 사진에 나와있지 않다. 사진의 두 부처님은 모두 철불이신데 지금은 완전히 금을 씌워서 재료가 무엇인지 육안으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제 174호
장곡사 상대웅전에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함께 봉안되어 있는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의 철불좌상. 보물 제174호. 높이 불신 61cm, 대좌 165cm. 이 불상은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하체에 비해 상체가 약간 긴 편이어서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짙은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 세부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나발로 표현된 머리 위에는 낮은 육계가 얹어져 있고, 얼굴은 거의 3각형으로 눈이 작고 아래로 약간 처져 있어 순진한 인상을 주지만 생동감이 전혀 없다. 불신도 마찬가지로 각이 진 어깨와 밋밋하게 처리된 가슴과 허리,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경직된 자세, 형식화된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위축되고 빈약한 느낌을 준다.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대좌는 가늘고 긴 간주석(竿柱石)이 있는 석조대좌로 원래는 석등대석(石燈臺石)이었던 것을 후대에 대좌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목조광배는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마찬가지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색채가 아름답게 남아 있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제 174호 ( 대좌는 석등의 ! )
철조약사여래좌상부 석조대좌
국보 제58호. 통일시라시대. 쇠로 만들어짐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목조광배와 석조대좌를 갖춘 특이한 불상으로 현재 왼쪽 무릎과 양 손의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호분이 두껍게 입혀져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머리 위에는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걸쳤는데, 얕은 선각으로 처리된 옷주름은 몸에 밀착되면서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의 주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중엽의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형식적으로 따른 것이다.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다리 한가운데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나, 이전에는 왼손에 약합이 놓여져 있어 약사불이라고도 불렀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중·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각형과 호형(弧形)의 5단 받침 위에 놓여 있고 각 면에는 큼직한 안상이 2개씩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중대와 하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앙련과 복련이 받치고 있다. 목조광배는 불신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로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며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등에 색채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불상은 근엄한 얼굴표정이나 비교적 당당한 체구,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전성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이어받은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조각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를, 테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 핀 연꽃. 하대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의 네 귀둥이에는 다시귀꽃으로 장식하였다.
불상은 좌대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놓고
왼손에는 질병과 무시를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는 나무로 된 배 모양인데 연꽃과 모란과 장식한 두광과 신광의 주변을
불꽃문양으로 꾸몄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 제 58호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조대좌의 최고의 걸작품.
상대웅전 철조약사여래 석조대좌 중대석의 정면 쌍 안상
장곡사 상대웅전 석조좌대 중대석의 측면 홑안상
장곡사 상대웅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부 석조대좌 (탑의부재로 옥개석은 거꾸로 놓여져 있다 ! )
사각형의 얼굴에 소라형의 육계이며, 비교적 넓어 보이는 어깨에는 우견편단으로 걸치고 있는데 허리는 잘록하고 하체가 빈약. 수인(手印)은 아미타정인. 佛身 높이는 61cm,
▲ 하대웅전이며 좌측이 설선당 드리고 위쪽으로 점화실이 보인다.
하대웅전
장곡사 상대웅전 아래에 위치한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81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맞배지붕의 건물로 높은 축단 위에 세워져 있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多包系)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좌우 옆면에도 창방과 평방을 마련하고 공포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공포는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에는 가운데에 공간포를 2개씩 배치한 데 비해 옆면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두었다. 바깥 공포에는 밖을 향한 쇠서가 달려 있고, 안에는 들보를 받치고 있는 맨 위의 살미첨차가 보아지와 같은 형태이고 건물 앞면 가운데 칸에는 사분합(四分閤)의 정(井)자 살문을, 양 옆 칸에는 이분합문(二分閤門)을 달았으며 서쪽 옆면에만 1개의 출입구가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그 위에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이 안치 되어 있다.
장곡사 하대웅전 창방과 + 평방 + 공포 (주간포)
보물 제 337호 고려시대
장곡사 하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금동불좌상. 보물 제337호. 높이 88cm. 이 불상은 1955년 복장유물 조사에서 여러 경전과 함께 "至正六年丙戌六月十六日誌"라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1346년(충목왕 2)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현재 광배와 대좌는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며 처음부터 이 전각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리와 조그만한 육계(肉)는 나발(螺髮)로 표현되었으며 그 사이에 둥근 계주(珠)가 장식되어 있다. 얼굴은 갸름한 편으로 눈·코·입이 단정하고 작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어깨에 비해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 안정된 비례를 보여준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두꺼워 신체의 곡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많이 드러난 가슴 위로는 군의(裙衣)와 띠매듭, 꽃무늬가 장식된 마름모꼴의 금구(金具) 장식이 보이는데 이러한 착의 형식은 고려 후기의 불·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올려서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으며 왼손은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채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이 불상에 보이는 온화한 얼굴 표정, 균형잡힌 신체, 간략하고 부드러운 옷주름 표현 등은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문수사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의 대표적인 예로 고려조각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설선당
장곡사 설선당 : 강설과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이란다. 본래 일자형 건물이었으나 건물의 남,서쪽에 승방을 증축하여 현재는 'ㄱ'자형 구조이다. 공양간(부엌)으로 쓰고 있는 남쪽 1칸은 맞배지붕 부분을 고쳐지은 것인데 공양간에 잇대어 동서로 승방 3칸을 늘려 지었다. 공양간은 마치 민가의 부엌을 보는 듯 하다.
응진전
칠갑산 장곡사 염화실
염화실(拈花室)은 염화미소(拈花微笑)에서 온 말로 염화미소(拈花微笑)는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이고 삼처전심의 하나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라고도 한다.
염화미소(拈花微笑)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을 보기로 하고 염화실이란 절에서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시는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계시는 방을 염화실이라고 한다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은 참선을 지도하시는 스님이시고 염화미소는 이 참선의 기원이 되는 故事이기 때문에 그 방을 염화실로 부르는 것이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장곡사미륵불괘불탱(長谷寺彌勒佛掛佛幀)
용화수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장곡사에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99m, 세로 8.69m로 미륵불을 화면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인 미륵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하고 살찐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를 가지고 있다.
좌우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각각 두 손을 맞잡은 손모양과 어깨높이까지 두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으며 10대 제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방향이나 표현을 달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록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조선 현종 14년(1673)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의 승려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인물들과 배치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많은 작품이다.
충남 청양 七甲山 長谷寺
조계종 제 6교구 마곡사의 말사로서.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 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정조원년(丁酉 1777)에 중수,고종 43년(1906) 및 1960년에 중수,
1995년 상진주지스님이 지장전과 심검당을 증축 하였으며. 일주문.운학루.범종루.봉향각.
염화실..심검당.설선당.지장전.응진전.상,하대웅전등의 전각으로 아담하게 이루어져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
홀어머니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텅 빈 가슴속을 태웠소.
이 노래는 처음 윤상일이란 가수가 불렀으나 별 반응이 없어...다시 88년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주병선에게 주어 다시 부르게 했으나 역시 ! ? 그후 주부가요대회에 한 주부가 불러주목을
받게 되자 뒤늦게 히트를 ... 국민 가요로 되었다고 한다.
☎ 상대웅전 보물 제 162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단층 맞배지붕이다. 엔타시스가 뚜렸한 기둥과 기둥사이 창방 위에는 평방을 두지 않았으며,공간포는 1개씩을 드문 드문 배치하여 주심포집과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특히 굽받침을 둔 곡주두(曲柱頭)와 첨차의 양식은 우리나라 주심포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古式을 보이고 있지만, 쇠서 위에서 연꽃을 조각한 것과 내부에서 보여지는 형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정면은 중앙 칸에 세 짝의 살문을 달고 양쪽 협칸은 두 짝의 정자(井)살문을 하고 있다. 바닦에 方塼이 깔려 있는데 이 중에는 신라 때의 연화문전도 있다.☆상대웅전 앞에는 수령이 850년쯤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있어 고찰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석조대좌 국보 제58호 나말 려초에 조성된 철불좌상으로 높이는 91cm, 석조대좌(石造臺座)의 높이는 약 140 cm이다. 사각형의 석조대좌는 그 깔끔하고 단아함이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불상이 대좌에 비하여 작게 느껴질 정도로 대좌의 조작이나 비례 등이 뛰어난데 양질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대좌는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되어 하대가 넓고 중대 상대는 작은 편이다 지대석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자리가 있어 원래 불상이 목조 공간안에 봉안 되어 있었음을 알수있다,불상은 대좌에 비하여 작은편이나 얼굴은 단정하며 이목구비도 단아하여 전체적으로 당시 선사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쪽을 드러낸 어깨와 젖가슴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약간 딱딱한 느낌을 준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는데,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불로 통칭되어 왔다.
석조광배 였을 것이나 조선시대에 목조광배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 주형광배로 중심부에 꽃무늬, 테두리에 불꽃무늬를 표현하여 나말 려초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철조 비로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174호
고려 전기의 불상과 대좌로 불신높이 61cm,대좌높이 165cm이다.이 불상은 높은 석등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 긴 눈썹과 가는 눈,작은 코와 입, 가슴과 배는 밋밋하며, 어깨 역시 수평일 뿐만 아니라 허리와 가슴이 일직선으로 굴곡없이 처리되어 있고 반듯한 사각형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 두 손은 지권인을 짓고 있다,
☎ 소조 아미타불좌상
사각형의 얼굴에 소라형의 육계이며, 비교적 넓어 보이는 어깨에는 우견편단으로 걸치고 있는데 허리는 잘록하고 하체가 빈약. 수인(手印)은 아미타정인. 佛身 높이는 61cm,
☎하대웅전 (下大雄殿) 보물 제181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인데도 다포계 형식이고 평방위에 공포를 배치한것이 특색이다.민흘림 기둥으로 圓柱이다.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의 건축은 임진왜란 이후에 유행한 건축양식이다.
☎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제337호
고려시대의 금동불좌상으로 佛身의 높이가 88 cm. 왼손에 약 그릇을 ,머리카락은 나형,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반달모양의 눈썹, 오똑한 코,예쁜 입, 근엄한 얼굴 표정이 나타나 있다. 1959년에 복장품(腹臟品)에서 至定6년(충목왕2년, 1346)의 축원문이 발견되었다..
結跏趺坐 즉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발등을 각각 반대쪽 허벅다리 위에 얹고 발바닥이 위를 보이도록한 자세를 말하는데 이때 먼저 오른발을 꺽고 그 위에 왼발을 얹는것을 항마좌降魔坐 ,그 반대이면 길상좌吉祥坐라고 한다. 또한 왼발이 오른발 밑에 숨어 오른쪽 발바닥만 보이는 모양을 半跏趺坐라 한다
☎彌勒掛佛幀 국보 제300호 5.99*8.69 m
☎설선당 (說禪堂) 유형문화재 제151호
건물 앞 오른쪽 3칸은 기둥,창방,도리,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이어 당초 건물임을 알수 있고 남쪽 2칸은 후보 개축한것으로 보인다.
☎說禪堂 조왕탱)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南無八萬四千조王大神). 좌보처담시역사(左補處擔柴力士) . 우보처조식취모(右補處造食炊母)
☎봉향각(奉香閣 ) 1969년 건립 즉 향(香)을 피우고 담당하는 승료.
☎운학루 대법고 (雲鶴樓 大法鼓)
코끼리 가죽으로 만든 양쪽의 당면(撞面)은 185cm*135cm로 원형이 아닌 타원형에 가깝다.
이 법고에는 흑서명문에 충청우도 덕산에 사는 한성문이 다녀간 기념으로 기록한 것이다.
☎木槽 (구유)
통나무로 만든 이 구유는 옛날 장곡사 승려들이 밥통 대신 사용하던 생활 도구로 전해지고 있다. 길이 7m, 폭 1m, 두께 0.1m.
장곡사의 가람 배치
장곡사는 칠갑산 자락에 절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는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장곡사의 중심불전이 있는 하대웅전 영역은 칠갑산 해발 150m 지점에 터를 닦고 대웅전을 배치하였다.
대웅전 전면에는 마당을 두었고 마당을 마주보고 설선당과 봉향각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과 마주보는 자리에 누각인 운학루를 배치하여 중정중심의 가람배치를 취한 셈이다. 운학루 좌측으로 종루와 공양간을, 대웅전 우측에는 지장전을 두었다. 현재 주출입은 누각 하부 보다는 누각 우측으로 난 길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 같은 중심영역 뒤로 보다 높은 지대에 또 다른 불전영역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른바 상대웅전 영역이다. 여기에는 상대웅전과 그 오른쪽에 응진당을 두었는데 아래쪽 불전 영역과는 축을 달리하였다. 하대웅전 영역과 상대웅전 영역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대웅전 오른쪽 산기슭에는 찻집으로 사용하는 슈쟈타 건물을 짓고, 그 뒤로 좀더 높은 곳에는 삼성각을 지었다. 이쪽 출입은 하대웅전 오른쪽으로 열린 도로를 이용해서 출입할 수 있으며, 상대웅전 쪽에서도 연결 도로가 나 있다. 이밖에 하대웅전에서 상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도로 왼쪽에는 염화실 현판을 건 요사 1동이 자리 잡고 있다.
장곡사 가람배치의 특성은 무엇보다 지형에 따라 상, 하 두 곳에 대웅전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즉 사역(寺域)의 북단인 상부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상대웅전과 응진전 일곽을 조성하였고, 그 서남쪽 기슭에 조금 넓은 도량을 일구어 하대웅전과 설선당 및 승방, 봉향각 운
이처럼 상하로 대웅전을 경영한 것은 지형적인 조건을 활용하여 『화엄경』에 나온 천상(天上)에서의 설법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상대웅전을 조성하고, 지상에서의 설법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하대웅전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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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있는 장곡사 네요
아늑하고 산세가 참 좋은 장곡사에 지난주
일요일에 작은 아들과 같이 다녀왔네요..
장곡사 사진 잘 보고갑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