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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마테를링크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대본 드뷔시
초연 1902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배경 불특정한 시대, 중세 가상의 나라 알몽드
<2016 취리히 오페라 / 165분 / 한글자막>
필하모니아 취리히 연주 / 알란 알틴글루 지휘 /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연출
펠레아스........아르켈의 손자..............................................자크 임브라일로(바리톤 또는 테너)
멜리장드........신분을 알 수 없는 귀족 여성...........................코린 윈터스(소프라노)
골로..............아르켈의 손자. 펠레아스와 아버지가 다른 형.....카일 케텔젠(바리톤)
주느비에브.....펠레아스와 골로의 어머니..............................이본느 나에프(콘트랄토)
이뇰드...........골로의 전처에게서 낳은 아들..........................다미엔 괴리츠(소프라노 또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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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드뷔시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2016 취리이 오페라 실황
'쎈' 연출가는 '쎈' 오페라를 낳는다
2016년 5월, 취리히 오페라극장 실황의 이 작품은 '드뷔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연출가 '체르니아코프(1970~)'의 작품 같을 정도로 연출의 매력이 돋보인다. 역사적 배경을 과감히 지우고 오늘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듯한 치정극으로 풀어놓아 동시대적 감각을 과감히 취득했다. 해설지(31쪽/영·불·독어)에 수록된 연출가 인터뷰는 프로덕션 이해의 키노트가 된다. 이 작품은 골로(베이스바리톤 카일 케텔젠)와 멜리장드(소프라노 코린 윈터스), 이들 사이에 끼어든 골로의 이복동생 펠리아스(바리톤 자크 임브랄로)의 이야기다. 세 사람은 이 치정극에 숨 쉬는 어두운 드라마를 뜨겁게 연기하면서도 음악적 완성도를 한껏 높인다. 카메라는 그들을 쉴새없이 줌-아웃하며 한편의 오페라를, 한편의 예술영화로 만든다. 강하고 자극적인, 이른바 '쎈' 연출에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드뷔시의 유일한 오페라이다.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무대극에 기초한 이 5막의 오페라는 드뷔시가 10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다.
골로(베이스바리톤 카일 케텔젠)와 멜리장드(소프라노 코린 윈터스), 이들 사이에 끼어든 골로의 이복동생 펠리아스(바리톤 자크 임브랄로). 이들의 애증과 비극을 담은 이 작품은 신비하고 상징적인 분위기인만큼 몽환적이고 탐미로운 드뷔시의 어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영상물(2016년 5월 실황)은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라기보다는 연출가 트미트리 체르니아코프(1970~)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연출가의 힘과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체르니아코프는 마치 미니멀리즘의 명장이 만든 깔끔한 디자인의 가구 몇 점을 놓은 무대로 작품이 지닌 신비적이고 중세적인 분위기를 지워버린다. 그런 무대는 휑하다 못해 썰렁하다. 하지만 그 위에 오르는 캐릭터들을, 그는 늘 광적으로 몰아가 뜨겁다 못해 불타 사라질 것은 같은 온도로 달구어버린다. 전작 <맥베스>(2009, BelAir), <돈 조반니>(2010, BelAir), <룰루>(2015, BelAir)도 그러했다. 그리고 모든 프로덕션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적 배경과 시기를 지우고 현대적인 의상과 배경으로 설정하여 동시대적 공감을 십분 끌어낸다. 따라서 신화나 옛이야기의 오페라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동봉된 해설지(31쪽/영·불·독어)에는 트랙, 작품 소개, 체르니아코프의 깊이 있는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어, 프로덕션 이해의 키노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연출가의 감각을 받쳐주는 것은 당연 성악가들이다. 자크 임브랄로(펠리아스)와 코린 윈터스(멜리장드), 카일 케텔젠(골로)은 치정극에 숨 쉬는 어두운 드라마를 뜨겁게 연기해냄과 동시에 드뷔시 음악의 완성도를 한없이 높인다. 카메라는 이러한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세밀히 따라가며 얼굴과 표정에 집중한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최진영 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클로드 드뷔시(1862~1918)
드뷔시가 기획한 몇 개의 오페라 중에 유일하게 완성되어 현전하는 오페라 작품으로, 드뷔시는 이 작품을 오페라가 아닌 서정극(drama lyrique)이라고 칭하였다. 총 5막으로 되어있으며 대본으로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사용되었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으로
드뷔시의 친구인 모리스 엠마누엘은 이 오페라에 대한 연구를 남겼는데, 그의 기록에 따르면 드뷔시는 ‘사물을 반 정도만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여지를 주는 시인, 때와 장소가 한정되어 있지 않는 등장인물을 구사하며 작품의 완성을 자신에게 맡겨주는 시인’의 희곡을 대본으로 사용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1893년 5월, 드뷔시는 메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상연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친구였던 문인 앙리 드 레니에에게 부탁하여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곡을 붙여도 된다는 허락을 구두로 받아내었다. 드뷔시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딱 들어맞았던 메테를링크의 희곡을 선택하면서, 원작자가 걱정하지 않도록 ‘음악이 마음대로 뽐내는’ 기존 오페라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음악이 극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생각 끝에 드뷔시는 당시 일반적이던 넘버 오페라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막 사이를 끊지 않고 장면을 연결해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또한 음악적 모티브들과 악상들을 극 전개에 가장 적합하도록 작품을 꾸렸다. 이런 방법은 바그너의 무한선율을 모방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드뷔시의 오페라에서는 보다 빈번하게 전조를 이용한 단락 짓기가 사용된다. 또한, 드뷔시는 단어를 전달하는 데 더욱 열중했다. 그 결과물은 드뷔시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아닌, 낭송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자신의 오페라에 새로운 명칭을 붙였을 것이다.
순탄치 못했던 초연
같은 해 11월에 메테를링크와 회동하여 오페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개편에 대해서 상의 했고, 이후 드뷔시가 작곡하고 있는 상황을 원작자에게 알리면 회답이 오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1895년 첫 번째 버전이 완성되었고, 메테를링크는 드뷔시에게 상연에 대한 권리를 일임하였다. 그러나 초연은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1901년 5월에야 다음 시즌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의 상연 계획이 잡혔다. 이듬해 1월 관현악 총보가 완성되었고 배우들은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배역을 정하는 데 원작자의 사심과 드뷔시의 견해가 충돌하여 공개적으로 논박하는 일이 일어났다. 한편 무대 전환의 문제로 드뷔시는 몇 개의 간주곡을 더 작곡해야만 했고, 예술관계당국의 간섭 때문에 극의 일부가 삭제되었으며, 초연 이틀 전 총연습 때는 메테를링크 측의 시위로 방해를 받는 등의 난항을 겪으며 1902년 4월 30일 드디어 초연 무대에 올랐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명백히 나뉘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 때에는 큰 호응을 받았다.
꿈같은, 그러나 인간적인
드뷔시는 이 희곡이 몽상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인생보다 더욱 인간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던 바에 딱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뜻이 아니라 어떤 ‘운명’에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의 의지보다 강한 무언가 때문에 좌절하는데, 이러한 것을 인간적이라고 읽어낸 듯하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막
골로는 사냥 중에 금관을 샘물에 빠뜨린 멜리장드를 우연히 만난다. 멜리장드는 길을 잃은 골로를 안내해 줄 것을 약속한다. 반년 후, 아르켈 성에서 아르켈 왕과 제네비에브는 골로가 동생 펠레아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된다. 이 둘은 모두 제네비에브의 아들로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지만 역시 모두 아르켈 왕의 손자였다. 골로는 편지에서 아르켈 왕의 허락도 없이 멜리장드와 결혼했지만 용서해 준다면 성으로 함께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르켈 왕은 펠레아스에게 골로의 배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성의 망루에 불을 밝히도록 한다. 한편 성에서 살게 된 멜리장드는 자신을 안내해 준 펠레아스를 사랑하게 된다.
제2막
펠레아스는 멜리장드와 샘터에서 물장난을 하다가 그만 골로가 준 결혼반지를 동굴의 샘에 빠뜨리고 만다. 골로는 날뛰는 말에서 떨어져서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성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멜리장드의 손에 결혼반지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멜리장드는 바닷가 동굴에서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골로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게 당장 그 반지를 찾아오도록 한다. 둘은 동굴로 가보지만 음산한 분위기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제3막
펠레아스는 탑의 창가에 앉아 빗질을 하는 멜리장드에게 다음날 여행을 떠난다는 작별을 알린다. 멜리장드는 창문 너머로 펠레아스와 키스를 나누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런데 골로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그만 불안에 빠진다. 골로는 동생 펠레아스를 성의 지하실로 데려가 훈계한다. 펠레아스는 곧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멜리장드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골로는 전처의 아들인 이뇰드에게 자신이 없을 때 둘이 만난 것을 듣게 되고, 계속 이뇰드를 추궁한다.
제4막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다시 몰래 만나며 마지막 만남을 기억한다. 아르켈이 멜리장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골로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들어와 자신의 칼을 가져오라고 고함을 지른다. 멜리장드가 칼을 가져오자 그는 아내의 머리채를 쥐어흔들며, 고함을 치는 아르켈 왕에게 ‘그녀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멜리장드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노래하고, 화가 치민 골로는 화를 내며 사납게 방을 뛰쳐나간다. 그날 밤, 펠레아스는 이전에 기약한 마지막 만남을 위해 약속된 장소로 나가고, 멜리장드가 등장하여 둘은 마음을 확인한다. 이 때 골로가 칼을 들고 등장하여 펠레아스를 죽이고, 달아나는 멜리장드를 뒤쫒는다.
제5막
멜리장드는 예쁜 딸을 낳는다. 골로는 지난 일을 후회하면서도 지난 일에 대해 궁금해 한다. 출산으로 빈사 상태가 된 멜리장드를 추궁하자 그녀는 펠레아스를 사랑했지만 죄지을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용서를 빈다. 골로는 계속해서 멜리장드를 다그치고, 멜리장드는 아기를 안아보고 싶어 하지만 안지 못한다. 끝내 왕 아르켈도 골로도 알지 못한 채 멜리장드는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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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10월 14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문학과 클래식
죽어가던 멜리장드의 창문으로 들어온 현대음악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세기말의 프랑스를 사로잡았던 건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였다. 바그너는 자신이 직접 대본 집필과 작곡을 도맡아 오페라의 전통적 관습에 의문을 던지고 ‘음악극’으로 재정립하고자 했던 야심가였다. 그는 이야기의 내용을 전달하는 레치타티보와 노래에 치중한 아리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드라마와 음악의 강력한 통합을 주창했다. 또한 바그너는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상징하는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로 오페라 전체를 촘촘하게 직조해냈다.
중세 전설에 대한 탐닉, 매혹적이면서도 불안한 반음계까지 예술가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바그너와 사랑에 빠졌다. 중세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 뒤늦게 쏟아졌고, 바그너 풍의 낭만적인 가곡과 오페라가 만개했다. 청년 시절 바그너가 성공을 거두기를 열망했지만, 좌절만 안은 채 씁쓸하게 되돌아갔던 도시가 파리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뒤늦은 열풍이었다.
바그네리언 드뷔시, 오페라에 빠지다
프랑스의 청년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역시 바그너를 향한 경배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파리 음악원에 재학하던 스무 살 무렵, 드뷔시는 차이콥스키의 후원자로 유명한 폰 메크 부인의 피아노 반주자이자 부인 자녀들의 가정 교사로 러시아와 유럽 일대를 여행했다. 당시 여행 도중에 그는 빈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관람했다. 드뷔시는 편지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은 분명히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 깊은 감정은 애무처럼 당신을 껴안고,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라고 적었다.
드뷔시는 3년 뒤 바그너의 장인이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를 만나면서, 바그너의 자장(磁場) 안으로 더욱 강하게 끌려 들어갔다. 드뷔시는 당시 70대에 접어든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접한 뒤 “마치 페달을 숨 쉬게 하는 것만 같다”라고 극찬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 대상을 수상한 뒤 로마에 머물던 무렵 드뷔시는 집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곡을 수차례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는 “예절 규범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바그네리안(Wagnerian, 바그너 애호가)”이라고 자처할 지경에 이르렀다.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인 그의 가곡들에도 바그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드뷔시는 부유한 예술 애호가 에티엔 뒤팽의 후원으로 1888년과 1889년 두 차례 바그너의 성지(聖地)인 바이로이트 축제를 방문했다. 첫해는 [파르지팔]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이듬해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관람했다. 하지만 바그너의 작품만을 상연하기 위해 바그너가 직접 구상한 이 전용 극장에서 드뷔시는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맹목적 숭배의 위험성을 감지했다. 결국 그는 바그너의 음악을 “여명으로 오해 받은 황혼”으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대의 서광(曙光)이라기보다는 이전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음악에 가깝다는 결별 선언이었다.
드뷔시의 파랑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그 무렵 드뷔시가 발견한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작곡가가 간절하게 찾아 헤매던 ‘파랑새’와도 같았다. 중세 왕실을 배경으로 한 삼각관계라는 작품 구도나 남편의 질투가 죽음을 부른다는 비극적 결말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흡사했다. 하지만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작품을 감싸고 있는 모호한 분위기였다. 바그너의 이졸데는 주저 없이 자신의 사랑을 토로했지만, 멜리장드는 당장 나이와 출신, 신분부터 불분명했다. 희곡 1막 2장의 첫 등장에서 멜리장드는 “난 이곳 사람이 아니에요.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어요”라며 샘가에서 마냥 울고만 있다. 멜리장드는 물속에 떨어뜨린 왕관 같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어렴풋하게 신분을 암시할 뿐이다.
19세기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희곡 작가답게 마테를링크의 작품에는 직설적인 대사로 표현하지 않는 언외언(言外言)이 유독 많았다. 멜리장드가 결혼반지를 우물가에 빠뜨리거나, 성탑의 창밖으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펠레아스가 입맞춤하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애정이나 무관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불륜을 의심한 골로 왕자는 진실을 말하라고 멜리장드를 몰아세우지만, 돌아오는 건 멜리장드의 죽음과 침묵뿐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금지된 사랑을 나누고 죽어간 것일까, 그조차 이루지 못했던 것일까.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죽음이 환희와 열락을 나타냈다면, 마테를링크의 희곡에서는 공허함과 허무의 상징에 가까웠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마테를링크는 괴어 있는 물처럼 극도로 목소리를 줄여서, 시와 침묵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마테를링크는 수동적인 등장인물들이 죽음과 같은 운명을 묵묵히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자신의 작품을 ‘정적(靜的) 연극’으로 표현했다.
18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 연극을 관람한 드뷔시는 오페라로 작곡하기 위해 작가의 고향인 벨기에 겐트로 찾아가 정식 승낙을 받았다. 드뷔시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사랑을 담은 4막 4장부터 빠르게 초고 작업을 마쳤지만, 이내 완성된 분량을 스스로 폐기하고 말았다. “바그너라고 불리는 늙은 클링조르([파르지팔]의 마법사)와 바이로이트의 유령이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라는 이유였다. 그 뒤로도 악보를 썼다가 지우고 버리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됐다. 작곡가는 “감정의 맨살에 닿기 위해선 얼마나 창조했다가 파괴해야 하는가”라며 괴로워했다. 그에게도 바그너와의 결별 과정은 지난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완성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의 초연
오페라 초연까지는 더 많은 난관이 남아 있었다. 당초 작곡가는 원작자 마테를링크의 연인인 소프라노 조르제트 르블랑을 여주인공 멜리장드 역으로 염두에 뒀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괴도 뤼팽』 시리즈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여동생이었다. 드뷔시는 마테를링크의 집에서 그녀에게 작품을 지도하기도 했다. 르블랑은 “드뷔시가 언제나 내 발음을 칭찬했다”라고 했지만, 드뷔시가 스코틀랜드 출신 성악가 메리 가든의 목소리를 들은 뒤 작곡가가 배역을 교체하기로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뒤늦게 신문을 통해 배역 교체 소식을 접한 마테를링크는 드뷔시에 대해 앙심을 버리지 못했다. 프랑스 일간지에 “자의적이고 어리석은 삭제 때문에 작품이 이해 불가능하게 됐다”라고 비판하는 기고를 싣기도 했다. 당초 작곡가가 재량껏 원작에 손대도 좋다고 허락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마테를링크는 “이 작품은 내게는 기이하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작품이 분명하게 실패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마테를링크는 드뷔시가 타계하고 2년 뒤인 1920년에야 처음으로 이 오페라를 보았다.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내가 틀렸고 그가 천 번이고 옳았다”라고 뒤늦게 고백했다.
침묵의 마력에서 음악적 매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1902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는 당대 청중을 당혹스럽게 했다. 시원(始原)과 결말을 짐작하기 힘든 마테를링크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드뷔시의 오페라 역시 뚜렷하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나 아리아도 없이 그저 한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1907년 이 오페라를 접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여기엔 음악이 없다. 차라리 음악 없이 마테를링크의 희곡을 듣는 편이 낫다”라고 불평했던 것도 억지만은 아니었다. 평소 드뷔시의 음악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작곡가 생상스는 이 작품을 본 뒤 “흉보고 다니려고 휴가 출발을 늦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프랑스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작가 로망 롤랑)라거나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음악의 물결이 숨은 의미까지 드러낸다”(작곡가 뱅상 댕디)는 격찬이 쏟아졌다. 요컨대 이 작품은 유럽 예술계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드뷔시 자신은 언론 인터뷰에서 “감히 말하자면 멜로디는 반(反)서정적이다. 선율로는 영혼이나 인생의 복잡다단한 상태를 표현할 수 없다. 요컨대 멜로디는 단순한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에나 어울릴 뿐”이라고 선언했다. 악보 전체에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가 등장하는 대목은 네 군데에 불과하다. 성악가의 노래를 뒤덮는 관현악이나 대규모 합창도 없이 작품은 지극히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음악이 흘러가도록 음표와 음절을 섬세하게 조응시킨 것이야말로 드뷔시 오페라의 매력이었다. 마테를링크가 희곡에서 보여준 침묵의 마력은 드뷔시의 오페라에서 음악적 매력으로 되살아난 것이었다. 오페라 1막에서 펠레아스가 부르는 노래는 작품의 특징을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극도의 침묵이 감돌고 있지. 심지어 물이 잠든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거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1막에서 펠레아스의 노래
오페라 초연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앙드레 메사제는 “마지막 장면에서 죽어가는 멜리장드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방 안으로 들어왔던 건 석양의 햇살만이 아니라 현대음악 자체이기도 했다”라고 회고했다.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구분처럼 세잔(회화), 말라르메(문학)와 더불어 드뷔시(음악)의 등장으로 바야흐로 현대 예술에서 모더니즘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성현 조선일보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 또한 저서로는 『클래식 수첩』과 『스마트 클래식 100』, 현대음악 작곡가 40인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오늘의 클래식』,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시네마 클래식』등이 있다. 블로그 ‘클래식 네버랜드’(blog.naver.com/classicandme)를 통해 책과 음악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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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희곡 해설 ===
고전해설ZIP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리스 마테를링크 / 희곡
운명적인 사랑으로 인한 죽음을 다룬 <펠레아스와 멜리장드>(1892)는 단순하게 보면 남편-아내-정부(情夫)라는 삼각관계로 이루어진 치정극(drame passionnel)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구도는 메테르링크라는 작가의 손에 의해 신비의 색채를 띠게 되고 운명이 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모호함으로 가득 찬 극으로 변하게 된다.
모호함은 우선 주인공들의 성격으로부터 온다. 멜리장드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물의 요정을 상기시키며, 또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녀는 어느 날 숲 속의 샘가에서 물속에 떨어뜨린 왕관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가, 사냥하러 왔다가 길을 잃은 골로에 의해 알르몽드(Allemonde) 왕국에 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남편 골로에게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은 곧 죽게 될 것이라며 흐느낀다.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 그녀의 고백을 골로는 말 그대로 해석하여 곧 여름이 올 것이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꿈꾸는 또 다른 세계(ailleurs)에 대한 갈망의 표현 혹은 그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펠레아스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절망의 감정을 대신하는 말일 것이다.
펠레아스는 ‘울음’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여성적이고 몽환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다. 그는 항상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지만 떠나지 못한다. 죽어가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자 하지만 아버지의 병환을 이유로 만류하는 할아버지 아르켈에 의해 좌절되고, 이후에는 멜리장드에 대한 사랑이 그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아버지의 병환이 호전되면서 결정적으로 멀리 떠나고자 하였지만 멜리장드와의 마지막 밀회 장소인 ‘장님의 샘’ 가에서 질투심에 눈먼 골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죽음은 어찌할 수 없이 운명의 덫에 빠지게 되는 인간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다.
펠레아스와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 골로는 거구이며 사냥을 좋아하는 남성적인 인물이다. 처음 그의 커다란 몸을 보고 멜리장드가 “당신은 거인인가요?”라고 물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의 큰 몸은 상대적으로 그에게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영혼의 깊이가 결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함께 있을 때 멜리장드의 방문이 닫혀 있는지 혹은 그들이 침대 곁에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여 매복하고 염탐하는 모습은 오셀로처럼 의심 많은 남편의 모습이다.
이 극의 모호함은 또한 풍부한 상징으로부터 온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짙은 숲,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 태풍에 쓰러져 꿈쩍도 하지 않는 나무, 이뇰드가 들어 올리지 못하는 바위, 멜리장드가 샘에 빠뜨리는 결혼반지, 그리고 반지가 물에 빠지는 순간 들려오는 정오의 종소리 등은 앞으로 닥칠 어두운 운명을 암시한다. 또한 저녁 무렵 이뇰드가 목격하는 양떼는 운명에 순종하며 말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 나아가 우리 인간들에 다름 아니다. 골로가 사냥을 하다가 길을 잃고 멜리장드를 만난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인생이라는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운명의 손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늙은 왕 아르켈이, “나는 결코 운명에 반대한 적이 없어”라든가 “나는 단지 곧 무슨 일이 닥칠지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부탁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살아오면서 획득한 지혜란 결국 운명이 우리를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펠레아스가 멜리장드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하게 되는 것도 운명이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기다려보자는 아르켈의 권고 때문이었던 것이다(제2막 4장).
하지만 지혜의 상징인 늙은 아르켈조차 다가올 운명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는 펠레아스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으면서도 결국 스스로는 운명을 예감하지 못함으로써 젊은 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순된, 아니 오히려 운명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샘(fontaine)과 문, 빛과 어둠의 상징을 들 수 있다. 골로가 멜리장드를 처음 발견한 장소이면서 또한 펠레아스가 죽는 장소이기도 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샘은 욕망의 상징이 된다. 멜리장드가 샘에 손을 담그기 위해 손을 뻗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도 물에 잠기고, 이어 그녀는 골로가 준 결혼반지를 물속에 빠뜨리고 만다(제2막 1장). 반지를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행동은, 그녀가 전에 왕관을 샘에 빠뜨린 것처럼 그것을 준 사람에 대한 미련의 상실이자, 새로운 인물, 즉 펠레아스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후 펠레아스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목에 감고 입을 맞추며 도취하게 된다(제3막 2장).
샘은 또한 그 투명함과 깊이로 인해 진실과 순수를 상징한다. 멜리장드가 샘의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마치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을 응시하는 모습처럼 보이며, 샘을 연상시키는 멜리장드의 눈에서 아르켈은 순수만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는 그 눈은 또한 신비로워서 어린 이뇰드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막연히 응시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기조차 두려워한다. 이처럼 이 극에서 샘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
문은 이 극의 첫 장면이 시작되는 곳이다. 하녀들은 이른 아침, 문과 문지방과 계단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성문을 열라고 문지기에게 소리친다. 다분히 상징적인 이 장면은 문지기가 노아 때의 대홍수의 물로도 그 피를 다 씻지 못하리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상징성이 뚜렷해진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어두운 사건들을 예고하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성안으로 들어올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골로는 이 문을 사실적인 의미로만 보고 있어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함께 있을 때 왜 문 때문에 논쟁을 하는지, 왜 문을 열어놓으려 하지 않는지 알기 위해 아들 이뇰드를 다그친다(제3막 5장). 그는 두 사람의 육체적인 관계만을 생각하고 그들의 영혼 세계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빛과 어둠은 매우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바다를 바라보던 주느비에브의 “우린 빛을 찾고 있었어.”(1막 4장), 멜리장드의 “맑은 하늘을 전혀 보지 못해요.”(2막 2장), 이뇰드의 “밝은 곳으로요, 아버지.”(3막 5장)와 같은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빛에 대한 추구와 어둠이 대립하고 있다. 석양 무렵의 어두운 하늘과 등대 빛의 대조(1막 4장),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으러 나왔을 때 그들의 유일한 등불이 되어주는 달빛과 별빛(2막 3장), 멜리장드가 실을 잣고 있을 때 실내의 어둠과 창문으로 비치는 별빛과 달빛의 대비(3막 1장), 멜리장드가 밤중에 창문을 열어놓고 머리를 정돈할 때의 빛과 어둠의 대조(3막 2장), 골로와 펠레아스가 방문하는 캄캄한 지하 동굴과 그들이 들고 있는 램프의 대비(3막 3장) 등이 그 예이다. 빛과 어둠의 대조는 마지막 샘가의 장면(4막 4장)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처음엔 밝은 달빛 속에 있고 싶어 하던 멜리장드는 어둠 속에서 펠레아스를 바라보고 싶어 하고, 남의 눈에 뜨일까 봐 어둠 속에 있고자 한 펠레아스는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더욱 분명하게 보기 위해 달빛 속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면 이처럼 작가가 뚜렷하게 대립시키고 있는 빛과 어둠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빛은 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은 진실을 밝히는 빛이기도 하다. 진실에 대한 추구는 멜리장드가 반지를 샘 속에 빠뜨린 후 골로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물을 때 펠레아스가 “진실, 진실, 진실을(vérité, vérité, vérité)”(2막 2장)이라고 한 말에서 드러난다. 죽어가는 멜리장드 앞에서 골로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진실이다. 하지만 멜리장드가 진실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입관에 사로잡힌 골로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반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그늘지고 어두운 성은 멜리장드가 추구하는 빛의 세계와는 대조적인 닫힌 세계이다. 아르켈이 표상하는 낡은 세계, 죽음의 냄새가 올라오는 지하 동굴 위에 지어진 성이 암시하는 세계는 우리가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 세계이다. ‘알르몽드(Allemonde)’는 ‘모든 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모두’를 의미하는 영어 ‘all’, 혹은 네덜란드어 ‘al’과 ‘세계’를 뜻하는 불어 ‘monde’의 합성어이다. 결국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이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곳을 꿈꾸는, 영원히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인물들이다.
한편 이 극에서 ‘본다(voir)’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외적인 눈이 아니라 ‘내면의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멜리장드의 눈이 범상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눈이 내면 혹은 영혼,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세계(l'au-delà)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 ‘본다’는 것의 특별한 의미는 이 작품에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교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이 극을 모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매우 늙었지만 아직 내 안에서 한순간도 분명하게 본 적이 없어.”(1막 3장)라는 아르켈의 대사는 ‘본다’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육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가 말하는 보는 것이란 내면의 눈으로 사물과 인간의 참된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나아가 운명의 참모습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내면의 눈으로 제대로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운명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결국 운명의 덫에 치이고 만다. 운명 앞에서 우리는 눈뜬장님처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메테르링크의 또 다른 작품 <장님들>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바로 우리 인간들에 다름 아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과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겉으로 보이는 갈등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과 그것으로 인한 죽음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독자나 관객은 그저 막연하게 느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극은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꿈꾸게 하는 연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1892년 브뤼셀의 라콩블레(Lacomblez) 출판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as et Mélisande] (고전해설ZIP, 2009.5.10,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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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담긴 상징
(불멸의 오페라 2, 박종호)
우물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우물에서 일어난다. 골로가 처음 멜리장드를 만난 곳도 우물이며,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사랑을 나누는 곳도 우물이다. 우물은 모든 존재를 상징하는 심연이며, 우물가는 존재의 가장자리를 상징한다.
멧돼지 골로는 멧돼지 사냥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 대신 그는 멜리장드를 발견한다. 사냥감이라는 의미에서 멧돼지와 여자는 그에게 유사한 포획물이다.
손대지 마라 골로가 처음 만난 멜리장드에게 다가갈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다른 오페라에서 흔히 보이는 남녀의 만남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자의 강요와 설득으로 결혼 생활에 접어든다. 결국 언젠가 자신이 만지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두운 성 멜리장드는 성으로 가서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그곳은 큰 숲으로 둘러싸여서 햇볕도 들지 않는 음침하고 낡은 곳이다. 그녀는 갇혀 있다. 그녀를 데려온 배도 떠나가다가 폭풍우에 침몰할 것이 암시된다. 그녀가 숨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사랑밖에 없었다. 이 점은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 공작의 성>이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설정이다. 그녀들은 모두 새로운 사랑에서 구원을 찾는다.
여행 갇혀 있는 멜리장드와는 대조적으로 펠레아스는 몇 번의 여행을 언급한다. 그것은 당연히 그녀를 떠나려는 것이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만류로 펠레아스는 그녀를 위해 이곳에 남는 것을 즉, 죽음을 선택한다.
정오 정오는 빛과 생명이다. 멜리장드는 일요일 정오에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
결혼반지를 빠뜨림 멜리장드는 결혼반지를 가지고 놀다가 우물 속에 빠뜨리고 만다. 첫 장면에서 그녀가 왕관을 샘에 빠뜨린 것과도 상통한다. 너무나 노골적이지만, 당연히 그녀는 결혼이 깨지기를 원한다. 그녀가 반지를 빠뜨리는 순간 남편 골로는 낙마해서 상처를 입는다. 그가 앞으로 입을 깊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전주곡이다. 또한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라고 펠레아스가 주의를 주었는데도 그녀는 골로에게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 봐 걱정하는 무의식이 노출된다.
동굴로 보냄 골로는 멜리장드에게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오라며 동굴로 보낸다. 그것도 한밤중에 펠레아스와 함께. 이것은 두 남녀가 사랑을 하라고 만들어주는 것과도 같다. 이는 함정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골로의 무의식적인 굴복이기도 하다.
굶주린 세 남자 두 남녀가 동굴에 갔을 때 그곳에서 노숙하는 세 명의 걸인을 만난다. 걸인들 때문에 두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한다. 동굴은 생명과 사랑을 뜻하지만, 굶주린 사람은 죽음의 상징이다. 결국 그들은 사랑 대신에 동굴에서처럼 죽음에 직면한다.
웅덩이 및 동굴 골로는 음침한 지하 웅덩이로 펠레아스를 데려간다. 지하의 웅덩이와 동굴은 모두 음습한 곳으로 여성의 성기이면서 생명이고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다. 그리고 골로는 거기에 펠레아스를 밀어버리고 싶은 살인 충동을 느낀다.
긴 머리카락 이것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강렬한 시각적 장치다. 탑의 방에 있는 멜리장드의 손이 펠레아스에게 닿지 않지만, 대신 그녀가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은 그의 팔에 감긴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키보다도 길다. 펠레아스는 머리카락을 자기 얼굴에 두르면서 격렬하게 애무한다. 이 순간 그들은 이미 성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머리카락은 그녀의 또 다른 애무의 도구인 성기다. 나중에 둘의 사이를 알게 된 골로가 그녀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흔들어대니, 그것을 잡고 가학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긴 머리의 얽힘 멜리장드의 긴 머리카락은 나뭇가지에 얽힌다. 긴 꼬리는 밟히고 긴 머리는 얽히는 법이다.
무등 골로가 이뇰드를 무등 태우는데, 어린 아들을 어깨에 태우고 높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를 억지로 성장시키는 것, 어른의 세상으로 아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아버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이에게 남녀의 성행위를 목격하게 한다. 이 비교육적인 장면은 결국 이뇰드의 반항으로 골로의 자기 환멸로 끝난다.
불 이뇰드가 보는 두 사람은 시종 불을 응시한다. 불은 사랑, 욕정, 충동의 상징이다. 두 사람은 육체적인 사랑을 자제하지만, 눈을 한 번도 감지 않고 불꽃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타오르는 열정을 상징한다.
공 이뇰드는 공놀이를 하다가 바위틈에 공을 빠뜨린다. 그것은 아버지의 방해로 동심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바위틈은 어른들의 성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양 이뇰드는 양치기에게 양들이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목축하는 양들이 가는 곳은 당연히 도살장이다. 이뇰드가 동심의 세계를 졸업했으며 동시에 곧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징한다.
갓난아기 멜리장드는 죽어가지만 그녀가 나은 갓난아기는 새로운 희망의 상징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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