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 아이들은 결혼하여 각기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시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병원에 모셨다. 올해 일흔인 남편과 늦깍이 학생인 나만이 휑한 아파트 거실에 앉아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가끔 안부 차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휴일의 끝자락이다. 수락산을 건너다보며 우리집 정원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하던 남편은 지금 오수를 즐기는 중이다. 평안한 얼굴이다. 나는 TV를 켜놓은 채 거실에 앉아 멍하니 수락산을 내다본다. 추분이 지났다고 산색도 그새 달라졌다. 옅은 붉은 색이 차츰 짙어지는 것이다. 문득 남편의 얼굴이 가을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4년 전 몸에 이상이 와 갑작스럽게 수술을 한 이후로 남편의 얼굴은 단풍처럼 붉을 때가 많았다. 여전히 싱거운 농담을 즐기는 남자. 평생을 쇠똥구리처럼 살았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큰 커다란 쇠똥을 짊어지고 한도 끝도 없는 길을 걷는 쇠똥구리. 그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도 쇠똥만은 놓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기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남편이 큰 수술을 이겨내지 못할까 초조해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몸 속 수분을 자식들에게 다 빼주고 가을처럼 시들어가지만 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그가 오래도록 내 옆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다. 우리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봄부터 부지런히 밭을 일궜으며 뜨거운 여름을 용케 잘 견뎌왔다. 이제 열매를 거뒀으니 더 무얼 바랄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맡은 바 일을 잘 해낸다면 더는 욕심이 없다. 겨울이 온다 해도 두렵지 않다. 바람이 분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바람소리를 닮았다. 나는 가을이 저무는 오래된 아파트 거실에 앉아 가을바람 같은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멀리 익어가는 가을 수락산을 망연히 바라본다.
첫댓글
가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잇는
수락산 자락의 가을을요
생활의 일면의 시
남편의 코 골이에 애환...ㅎ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