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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절 셋째 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예수오심!(3) -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 본 문 : 누가복음 4장 16절 – 22절 (신약 93쪽)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복의 근원으로 살리라. 그러므로 나는 축복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나눔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섬김의 통로로 살리라. 아멘! 아멘!
“인사만 잘 해도 먹고 산다.” - 반미고잘 / “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했습니다.”
“친절인사!” - “나는 김대용목사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인 이사야 61장 1절부터 4절 말씀을 인용하신,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탄절 전 주일까지, 네 번에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두 번에 걸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수 오심!(3) -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포합니다. “오신 예수님을 믿는 나는 / 영적인 눈을 뜨고 / 다시 보리라. / 아멘!”
지금 이 지구상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약 300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영혼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영적 시각 장애인은, 얼마나 많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지 않는, 영적 시각장애인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다행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육적 시각장애인이 아니기에, 볼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백성들이 되었기에,
이렇게 거룩한 성일 – 주님의 날에 이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으니, 영의 눈도 뜨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합니다. 영육 간에 눈을 뜨고 있음을 감사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눈을 뜨고 있는 것 감사하지만, 때론 시각장애인이 되어 살 때도 있습니다.
첫째로, 보는 것 같지만 그늘진 이들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믿습니까?(요 3;16)
이것이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기에 그늘진 곳이 보이지 않으면, 영적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늘진,
곳이 보이면, 내게 사랑이 있다는 증거요. 영적 눈이 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아주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그냥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병들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셔 댑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정 형편이 엉망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그집 아이들은 겨울인데도 여름 홑바지를 입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옆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습니다.
“엄마! 우리도 고기 먹고 싶다.” -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무능함에 어머니는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엄마가 베 한 필 짜서 팔아 고기 사줄 께.”
그리고 아픈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고기 한번 먹게 하여 주려고, 기를 쓰고 베를 짰습니다.
며칠 걸렸습니다. 죽을 힘을 다 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파서 시장에 팔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팔아서 고기를 사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고기를 먹을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습니다.
고기 먹을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졌는데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 손을 붙들고 시장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알콜중독자 남편이 장터에서,
그 돈으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시각장애인입니다. 아내도, 자식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높고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늘진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자기 스스로 말했습니다.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도둑질 한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아멘! - 갑자기 삭개오에게 그늘진 곳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바라보던 순간 그의 눈이 열리고, 그의 마음의 열려 버렸습니다.
안 보이던 가난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둑질했던 자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부자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주님에게 약속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리장 삭개오는 회개하는 마음이 생겼고, 불법으로 얻은 이득을 네 배로 갚았습니다.
그래서 부자요. 세리장인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5분 만에 거지가 되고,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지가 되고 실직자가 된 삭개오는 평생을 복음전도자로 살았고, 마지막 순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눈먼 자의 눈을 열어 주려고 오셨습니다.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고,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예수 믿지 않아 육신의 눈은 뜨고 있지만, 영적 시각장애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최원만 시인이 쓴 “가난한 마음”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출렁이는 바다보다 잔잔한 호수이고 싶다.
넘치는 강물보다 내 마음 골짜기 샘물이고 싶다. / 요란스러운 나팔소리보다 세미한 풀벌레,
소리이고 싶다. / 궁궐 안 조화보다 초토에 피어나는 들꽃이고 싶다. / 높디높은 바벨탑이기보다,
냇물 흐르는 언덕 위 초가집이고 싶다. / 조용히 사랑하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린 시입니다.
그늘진 곳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삭개오의 눈을, 우리 예수님께서 뜨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늘진 곳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려고 우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둘째로, 보는 것 같지만 - 복음이 안 보이는 그리스도인 시각장애인들도 있습니다.
육신의 눈을 뜨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면서도 복음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 – 저와 여러분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모든 인간들은 죄의 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보여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신약성경 속의 사람인 - 최고의 복음의 사람 바울도, 처음에는 복음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지, 복음으로 구원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안 보이니까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정오의 빛보다 강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울은 놀라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 바울이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복음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 놀라운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육신의 눈을 뜨고 있었으나, 그는 영적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복음이 보이지 않던 여인의 눈을 열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다가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실 때에, 목이 많이 마르셨습니다.
마침 수가성에 우물에 이르셨으나, 우물이 깊어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로 나오시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좀 마시게 해주시오.”
여인이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내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아멘!
그리고 여인과 예배에 관한 말씀을 나누시던 예수님께서, 뜬금없이 남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지금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예전에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런 여인은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시는 예수님을 보고 순간, 영의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물을 길러 왔던 여인이 영적 여인으로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지금 너에게 말하는 나 예수가 메시아 – 구원자이니라.”
예수님을 만나 영의 눈이 떠진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이 복음을 들고 동네로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는 구원자 예수, 오직 예수 복음을 전하는 여인으로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론은 이렇게 끝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8-29)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눈 먼 자의 눈 - 영적인 눈을 열어 복음을 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 한 명이 생겼습니다. 선교사는 너무너무 기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까?”
이 말을 들은 토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엽을 긁어모으더니, 그 속에 벌레 한 마리를 넣고,
불로 태웁니다. 시뻘겋게 불타고 있을 때, 그 토인은 벌레를 꺼내 살려 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이렇게 지옥 불에서 우리들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멘! - 이 얼마나 적절한 신앙고백입니까?
누구든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 얻게 하는 복음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세상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음 -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갑니다.
먼저 구원의 복음 –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복음의 눈이 열린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 복음이 보이지 않도록 자꾸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온 세상은,
구원의 복음이신 - 예수 복음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덧칠하고 – 예수 못 믿게 만듭니다.
홀린세이 라는 분은 “악령의 세계” 라는 그의 책에서, 복음을 파괴하는 6가지 사상을,
지적합니다. 이를 “사상 폭탄” 이라고 말했습니다. / 1. 칸트의 철학입니다. - 절대적인 하나님의,
진리를 부정하고 정반합의 과정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 2. 헤겔의 사상입니다. - 헤겔의 철학은,
칼 맑스에게 영향을 주어 공산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 3.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입니다.
칸트와 헤겔을 신학에 섞어 버린 비복음적인 사상입니다. / 4. 칼맑스의 유토피아 사상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입니다. / 5. 찰스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근본적으로 배격하는 사상입니다. 철저히 비성서적인 이론입니다.
6.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입니다. 인간을 성에서 시작하여 성으로 끝난다는 성적인 학문입니다.
이런 것을 모두 걷어내야 복음의 눈이 열립니다. 깨어 기도하여야 영적 싸움에서 이깁니다.
보는 것 같지만 - 복음이 안 보이는 그리스도인 시각장애인이 아닌, 복음의 눈을 열어 봅시다.
셋째로,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면서도 천국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예수님께서 부자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소출이 많고 곡식이 풍부하였습니다. 미처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지금 있는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새 창고에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부자의 이런 중얼거림을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 모든 것들이 과연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1961년 쏘련은 지구 역사상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였습니다.
그 우주선에 탄 첫 우주인은 가가린이었습니다. 그는 우주에 올라가 지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지구가 너무나 잘 보인다. 참 아름답다. 기분이 매우 좋다. 지구는 푸른색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첫 번 보고 한 이 말 때문에는 우주인 가가린은,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당시 쏘련 대통령 후르시쵸프가 환영하며 물었습니다.
“가가린 너는 우주에서 하나님을 보았는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님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후르시쵸프 대통령도, 우주인 가가린도, 미련하게도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먹는 것도 먹어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만져 보는 것도 만져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귀로 들어 보는 것도 들어본고 말합니다. 우리는 느껴 보는 것도 느껴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맛은 눈이 아니라 먹어 혀로 맛봅니다. 차고 뜨거운 것은 손으로 만져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어느 여인이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며 팔아서 생활을 합니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장사하여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그 자식들이 다 성공하여 잘 됐습니다.
그럼에도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서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았습니다. 자식들이 졸랐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 가시게 해 드릴게요.”
어느 날 어머니는 그런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그렇게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깔고, 기둥도 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한다. 그런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한다. 그리고 문은 12개를 만들어야 한다.” - 그 말을 들은 자식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을 어떻게 지어요?” - 그 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갖고 있단다. 예수 잘 믿고 그런 너희들의 집을 꼭 지어라.”
그 어머니는 그렇게 소박한 믿음의 삶과 신앙으로, 작은 자기교회를 섬기며 살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 나라가 보이십니까? 안 보이면 영적 시각장애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눈 먼 자를 눈 뜨게 하셨습니다.
넷째로, 눈을 뜨고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보지 못해 하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다 필요하여, 하나님이 이 땅에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 다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은 떴으나 시각장애인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지금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왜 나를 이 해남에서 살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왜 수많은 교회 중에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우리 해남중앙교회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이 왜 여러분에게 직분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왜 나를 목사로 세워 여기 있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왜 지금의 배우자와 살게 하셨을까요?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신 것은, 죄로 멸망하는 니느웨를 회개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 사명을 보지 못한 사명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거센 풍랑으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사명을 봤습니다.
큰물고기가 요나를 니느웨에 토하여 놓았습니다. 요나는 그 곳에서 자기 사명을 선포했습니다.
매일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니느웨 전체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요나로 인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명에 눈 먼 자의 눈을 열어, 사명자의 삶을 살라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사명의 눈을 떴습니다.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아가야 파트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사명의 눈을 떴습니다. 자기 할 일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여러분! 값진 생명,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생명을 낭비하다가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눈을 뜨게 하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아멘!(눅 4;18-19)
예수님은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시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 먼 자에게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우리도 눈을 뜹시다.
그래서 그늘진 곳에 있는 이웃들이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보이고,
천국이 보이고, 할 일이 보이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