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748 --- 마라도의 억새는 수병이고 해병이다
마라도는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불과 11km 거리로 뱃길 따라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동해바다 동단에 독도가 있다면, 남해바다 최남단에 마라도가 있다. 마라도는 동서 0.5km, 남북 1.3km, 해발 36m, 섬 둘레가 고작 4.2km인 10만 평 규모로, 고구마처럼 길쭉하고 납작하다. 분화로 겹겹의 현무암층인 검은 바탕에 잔디와 억새밭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마라도를 돌아보는데 40분가량이면 충분하다. 섬은 잔디와 억새밭이 반반씩 나뉘었지 싶다. 주민등록자가 100여 명으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한 가족이다. 관광객이 오히려 스무 배가 넘을 만큼 북적거리면서 성당이며 교회, 사찰도 있다.
마라도에서는 억새가 염분을 먹고 자란다. 짭짜름한 소금기의 해풍과 실랑이한다. 마라도의 억새는 아주 강인하며 짱짱하다. 마라도의 억새가 단련하는 것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라도를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민과 함께하며 위로하며 관광객을 즐겁게 맞이해야 한다. 억새는 바람과 햇살과 수분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고 수시로 다른 몸짓으로 신비스럽게 한다. 그런데 억새는 이곳까지 어떻게 왔니? 바람 타고 훨훨 하늘로 왔니. 물결 타고 밀리고 밀려 바다로 왔다가 더는 오갈 데 없어 단념하면서 정착한 것이냐. 너도 한반도의 억새와 DNA가 같음을 외관부터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억새는 마라도를 잘 지켜내야 할 명분이 서고 그만한 터전이 된다. 그래야 능수능란한 수병이요 해병처럼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다. 그런 억새의 모습이 더 늠름하고 꼿꼿하며 넘치는 패기로 자라날 것이다. 막상 비 오고 세찬 바람이 불고 추위가 몰려온다고 두려워하며 피하고 숨는 것은 사람이지 억새가 아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퍼런 바다에 파도만 넘실거리는 외딴섬에 억새는 꼿꼿한 자세로 총총한 별들을 하늘바라기 하며 더 긴장할 것이다. 바람 소리, 억새 소리, 파도 소리는 저리 생생하게 들려오고 듣고 있는데 막상 나의 소리는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먹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