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보다 행복한 종
<아세요? 왕비는 부드러운 커피만 마시는 거>라는 광고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 광고를 보는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아직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자신을 위해 모닝커피를 끓여주는 황홀한 장면을 한 번씩 그려봅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생각하며 “나는 언제쯤이면 남편이 끓여주는 커피를 졸린 눈으로 받아 마셔볼까? 불쌍한 내 인생!” 하며 한숨을 쉽니다.
이런 광고를 보는 여성들은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한석규 같은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착각이 인생을 행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을 왕비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늘 최고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왕비는 아무하고나 어울릴 수 없기 때문에 친구도 많지 않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스럽긴 하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부족해서 늘 외롭습니다. 정말 왕이라도 자기 부인에게는 왕비 대접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남편이 왕비도 아닌 자기 부인을 왕비처럼 대접해줄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도 자신이 왕 같은 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결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없습니다. 결혼하면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막힌 하수구도 뚫어야 하고, 벽에 못을 박다가 손가락을 때려보기도 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한국 가정이 따뜻하지 못한 이유는 남편들이 집안에서 대접받는 왕 노릇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왕이라는 실제적인 존재가 없어진 대신 모든 사람들이 공주병과 왕자병, 황제병과 왕비병에 걸려 있습니다. 어디서든 최고의 대접을 받으려 합니다. 조금만 서운한 일을 당해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것에는 고마움도 없고, 감사함도 없습니다. 주위에는 모두 자신을 서운하게 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사소한 생활 속에서의 작은 기쁨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평범한 관계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전의 왕들이 누렸던 화려함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때문에 비싸고 고급스러운 여행과 이벤트가 인기상품이 되었습니다. 가정불화도 여행을 위해 잠시 미뤄 둡니다. 화려한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다시 다투지요. 이혼율이 가장 높은 시기가 여름휴가가 끝나는 시기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한 것도 많고 즐거운 것도 많습니다. 종에게는 조금의 관심만 보여주어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황송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분이지만, 스스로를 종으로, 남을 섬기는 자로 세상에 있다는 의식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억울하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면서도 “다 이루었다”는 말과 함께 만족스러운 운명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왕으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우리의 신하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하는 결코 왕과 함께 즐겁지 않습니다. 왕이 없는 자리가 편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스스로를 종과 같은 낮은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우리를 편하게 생각하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함께 있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의 작은 배려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큰 요소가 됩니다. 왕은 친구가 없지만 종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친구이자 존귀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