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고막/마종기
싱싱하고 팽팽한 장구나 북같이
소리가 오면 힘차게 나를 불러주던 고막이
이제는 곳곳에 늙은 주름살만 늘어
느슨하게 풀어진 채 소리를 잘 잡지 못한다
나이 들어 윤기도 힘도 빠진 한 겹 살.
주위에서는 귀 검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런 것 안 해도 알지, 내가 의사 아닌가
그보다는 늙은 고막이 오히려 고마운걸
시끄러운 소리 일일이 듣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에 응답을 안 해도 되는 딴청,
언젠부턴가 깊고 은은한 소리만 즐겨 듣는다.
멀리서 오는 깨끗한 울림만 골라서 간직한다.
내 끝이 잘 보이는 오늘 같은 날에는
언젠가 들어본 저 사려 깊은 음성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사랑스런 내 귀.
<시 읽기> 나이 든 고막/마종기
나이가 들면서 귀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몸에 주름은 늘고 탄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감각 능력의 무너짐은 산기슭에 흘러내리는 흙의 형편과 다를 바 없다. 직업이 의사인 시인도 점점 듣는 기능이 떨어져 고민이 많다.
그러나 늙은 고막을 갖게 된 것이 다행다복 아니냐고 말한다. 말씨가 우악스러운 것을 소상히 듣지 않아도 되고, 또 게으르게 넌지시 딴청을 피울 수도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조용조용하게 빛나면서 물결쳐 오는 부드러운 소리만을 선택해서 듣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말끔하고 고운 음색만을 듣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완전하고 촘촘한 것보다 미진하고 엉성한 것이 나을 때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문태준,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음의숲, 2020.
첫댓글 내 마음이어서
옮겨가고 싶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