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어원(ㅈ자 어원)
자린고비 = 절인 굴비
자린고비가 정확히 어떤 뜻이고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색한 사람’이라는 뜻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표기부터 일화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린'(玼吝), 즉 '좋지 못한 마음이나 인색한 것'에 '주머니'를 뜻하는 방언형인 '고비'가 붙어서 생긴 단어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억지에 해당한다. 쓰지도 않는 한자를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玼吝考妣(자린고비)로 쓰고 충청도의 어느 양반이 자기 어머니 제사에 쓸 지방(紙榜, 제사 때 한 번 쓰고 태우는 종이로 만든 신주)을 기름에 결어서 여러 차례 썼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도 그냥 있는 얘기에 갖다 붙여 만들어 낸 유래다.
또 다른 설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 것이다.
에헴~~~
야~ 이 눔아 두 번 쳐다보지 말어~~ 짜다니께…
아부지~~ 저거 은제 먹어유~~~
먹고 싶어 죽것네…
아부지 엄쓸 때 확~~ 언젠가 먹고 말뀨~~~
이 눔이 잔말 말고 밥이나 쳐 묵어…
많이 알려져 있듯, 어느 인색한 구두쇠가 자기 집 안방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식사 때마다 밥만 가져다가, 한 숟가락 퍼 먹고 굴비를 쳐다보고, 또 한 술을 뜨고 쳐다보고 하였다는 우스운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그럼 어떤 이야기가 정설일까? 필자가 보는 정설은 세 번째 이야기이다. ‘자린=절인’이고 ‘고비=굴비’. 이 말을 어려운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이상한 한자가 나온 것이다. 우리말의 표기법이 완성된 것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면서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법칙이나 룰이 없었다. 특히 모음은 불안정해서 비슷하게 발음하거나 적을 가능성이 매우 많았다. 이 책의 곳곳에서 보듯, 우리말은 모음을 달리하며 무수한 파생어를 만들어낸 어원을 갖고 있다. 이 자린은 단지 ‘절인’의 다른 표기에 불과한 것이다. 절인다는 행위는 잘(잘다, 작다를 생각하라)이는 것이다. 즉 잘게 만드는 것이다. 소금에 절여 말려서 크기를 줄이는 것을 생각하면 맞다.
다음은 ‘고비’. 필자는 ‘굴비’란 말은 ‘굵다’와 어원이 같은 ‘�’ + ‘ㅣ’처럼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조기는 작다는 뜻의 ‘족(�, 잗)’ + ‘ㅣ’로 보는 것이다. 옛적에는 아마도 조기의 굵은 놈들은 잘 말려서 굴비를 만들고, 작은 놈들은 그냥 끓여 먹었을 것으로 보며, 이런 이유로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에서 사이에 든 ㄹ은 소리가 약해서 쉽게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떨어지면 ‘구비’가 되고 표기를 정확히 못하면 ‘고비’가 되는 것이다. 자린고비란 ‘절인 굴비’이며 이 일화에서 유래하여 그런 구두쇠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억지 같을 수도 있겠지만 사투리란 원래 그렇다. 지금 보아서는 알기 힘들게 쓰여져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주도 말의 보댕이가 보지이고 보따리나 볼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면 미친 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찌하랴...
‘참’의 변신
우리 고유어 명사는 대부분 한 글자로 이뤄져 있다. 돌, 물, 땅, 밥, 칼, 쥐, 콩, 팥, 쌀, 개, 말, 소… 여기서 다 나열할 수도 없는 고유어 명사들이 한 글자 짜리이다. 이런 특성에 도매금으로 넘어가 고유어로 대접 받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참(‘새참을 먹는다’, ‘지금 막 갈 참이다’의 참)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옛 제도 중의 하나에 역참(驛站)제도가 있었다. 이 말에서 나타나 있듯 참(站)은 ‘역로(驛路)를 가다가 쉬어가는 곳’이었다. 즉 역과 역 사이의 간이역쯤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참을 가다’는 한 개의 참(站)을 간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참이란 것이 점차 사라지면서 공간적 거리가 시간적 거리로 바뀌어 버린 예이다. ‘이번 참에 ***를 한다’, ‘이제 **할 참이다’라는 표현들도 같은 데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서 정식 식사 사이에 먹는 것을 참, 혹은 새참이라 부르게 됐다.
'키 재다'와 '무게 달다'의 유래
키는 잰다고 하는데 ‘재다’라는 말은 어떤 조어법으로 만들어진 말일까? ‘재다’는 ‘자 + 이(사동형 어미) + 다’로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를 재는 ‘자’에서 나온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말에서는 ‘명사 + 다’로 만들어진 말들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신-신다, 발-밟다, 달-달다, 칼-갈다, 길-길다 같은 말들이 비슷한 경우이다.
무게는 잰다고도 하지만 ‘달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유가 뭘까? 이유를 알려면 옛날식 저울인 천칭의 모양을 보아야 한다. 천칭은 무게 중심을 이용한 것인데 막대의 양쪽에 저울판을 달고 한 쪽에는 무게만큼의 추를 달고 한 쪽에는 측정하는 물건을 달아서 평평해지도록 하여 무게를 쟀다. 이런 저울의 모양에서 유래하여 지금도 무게는 단다는 표현을 쓴다.
“넌 누구를 점 찍었니?”“그 사람은 내가 찍었어.”라고 할 때의 ‘점을 찍다’도 특이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옛날 임금이 인재를 등용한 방법과 관련이 있다. 어떤 자리에 결원이 생기거나 인물을 교체할 때 임금이 중신들이 추천한 3명 중에서 골라 붉은 점을 찍어서 허락을 표시하던 ‘낙점(落點)’이란 제도에서 유래한 말이다.
피장파장과 긴가민가
“너나 나나 피장파장이다.” “오래된 일이라 긴가민가 하네.” 흔히 쓰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말들이다. 둘 다 한자말에서 뿌리를 캘 수 있는데, 피장파장은 원래 ‘피장부아장부(彼丈夫我丈夫)’가 줄어 들고 뜻을 잊어먹게 돼 만들어진 말이다. 뜻은 ‘그가 장부(사내)라면 나도 장부다’라는 것으로 사람은 그 능력이 큰 차가 없다는 뜻으로 ‘너나 나나’ 정도로 해석될 말이다.
비슷한 경로를 겪어서 만들어진 말이 긴가민가이다. 긴가민가는 ‘旣然가未然가’가 줄어든 것으로 한문투로 ‘이미 그러한가, 아직 그렇지 않은가’ 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또 술자리에서 많이 쓰는 말인 '권커니 작커니'는 권작(勸酌, 술잔을 권함)을 장난스럽게 나눠놓은 것이며, '대수롭지 않다'라고 할 때 '대수롭다'는 원래 '大事롭다'가 변한 말이다.
이렇게 음이 변해서 원어가 불분명해진 말들 중에 신세대들이 많이 쓰는 ‘졸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요즈음은 ‘매우’ 정도의 의미로 스스럼없이 쓰이지만 원말을 알면 함부로 쓰기는 쑥스러운 말이다. 원말은 ‘좇나게’였는데 이것이 ‘게’가 떨어지면서 ‘좇나’로 변했고 ‘좇’이라는 말의 터부 때문에 ‘졸라’로 변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