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 : 31 - 37)에 바 다’
서 론 :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바쁜 발걸음으로 이곳 저곳을 다니셨습니다. 두로 지경에서 나오신 후, 시돈을 지나시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하여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안수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주 하나님을 잘 믿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알아야한다
1. 귀먹고 어눌한 자
귀먹고 말 더듬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
32사람들이 귀먹고 어늘한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 하거늘 (눅11:14)예수께서 한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여겼으나
이 환자는 두 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귀가 먹었을 뿐 아니라 말의 장애까지 있었습니다.
(1) 예수님은 이 환자에게 특별하신 방법으로 안수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고 했습니다.
막8: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주님의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셨습니다. 그 후에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이하신 행동에 다른 해석을 달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귀 먹고 어눌한 그에게 말로 하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시청각적인 방법으로 본인이 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손이십니다. 그 분의 손가락이 귀머거리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의 귀는 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35:5-6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2) 34절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면서 에바다 하시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고 했습니다. 에바다란 말은 아람말로 열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에바다란 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탄식은 이 사람이 겪고 있는 생의 비극에 대한 깊은 인간적인 동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탄식이 의미하는 것
주님의 탄식은 귀먹고 어눌한 그 사람에게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이 탄식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할 때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35장)통하여 이처럼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마13:14-15).
①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깨닫지 못할 때 탄식하십니다.
② 우준하고 무지한 자는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92:5-6).
③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게을리 할 때 깨닫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나아와 말씀의 가르침 받기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영적 귀머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이 같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이 생각하시며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입을 가지고도 전하지 못할 때 탄식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① 성령의 권능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행1:8).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② 세상일에 분주하여 주님을 위하여 시간 받치기를 아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사람들에게 탄식하십니다.
③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하늘의 상급을 모르기 때문에 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전도할 때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에바다의 명령을 받아 우리의 귀머거리의 귀를 열고 어눌한 혀를 풀어야 합니다.
안수받으면 눈이열릴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귀머거리와 어눌한 자에게 안수하심으로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어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계하셨습니다. 이 경계에는 다음 두 가지 뜻이 담겨있습니다. 한가지는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소문이 퍼지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물론 메시야의 사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시야적 사명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시는 일에 있으셨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예수님은 이적을 보고 자신을 따르는 일에 대하여 못마땅히 여기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고전1:22-23).
결 론 : 그러나 이 일로 예수님의 소문은 더욱 많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경계할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귀머거리 된 우리의 귀가 열리고 어눌한 혀가 풀릴 때 우리의 그 귀로 듣고 입으로 전파하는 복음이야말로 더욱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2024.09.22.
시온성 주일 예배 1부 강단 말씀
에바다!!!!!!! (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