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전당에서 베세토 연극 공연이 있어, 그 중 [어린 에욜프]를 봤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헨리 입센의 잘 안 알려진 극이며 희곡 각본으로 읽었을 때는 급전 직하하는 결론에 현기증이 났다. 베세토는 베이징, 서울, 토교를 1년 단위로 돌아가며 세 나라의 연극인들이 교류하는 행사인데 언제부턴가 광주가 빼앗아와 사실상 베광토가 되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려면 2027년,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어린 에욜프]는 비가역적인 상실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세상은 무작위하고 무의미하게 인간들을 다루지만, 거기서 어떤 인과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인간은 배기지 못한다. [어린 에욜프]에서도 이유 모를 사고가 분명한 자식의 죽음 앞에 인과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굴복하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이 절실하게 그려져서 위로와 슬픔이 쌍으로 전해졌다.
헨리 입센은 젊었을적 잠시 사귀었던 여성이 아이를 임신하자 책임지지 않았고 여성은 아이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간다. 이후 그 여성에게 양육비를 붙이며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린 에욜프]는 그렇게 버려두었던 그녀의 장례식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쓰여졌다. 희곡의 내용에서 '인간의 책임'이라는 책을 마무리 지으려 떠났던 남자 주연이 모종의 이유로 자식의 양육에 힘을 다하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입센의 실제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선택과 파국은 오랜 죄책감과의 정면대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최근 읽은 한강의 시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했다. 우연히 꺼내 본 [노랑무늬영원]에서 위의 시와 동명의 단편 소설인 '파란 돌'에서는 한강도 입센과 비슷한 문제에 정면추돌하고 있었다. 시간 위에 있는 우리들은 꿈 속에 있든 밖에 있든 그렇게 단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십 년 전의 그 자리에 지금도 있을 수도 있다는 파격은 한강식 답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실마리가 된다. 개인적으로 입센의 방식보다 한강의 방식이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곱씹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P.S. 지만지 드라마에서 출간한 [어린 에욜프]에서의 헨리 입센 연표에서는, 1892년에 혼외 아들인 한스 야콥 헨릭센이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그리고 1984년 어린 에욜프 발간) 덴마크어 위키백과에서는 1916년 사망했다고 한다. 1892년에는 한스 야콥의 어머니인 엘세 소피 비르케탈렌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어떤 착오로 인해 잘못 입력된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이런 연극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네요. 타국의 연극인이 국내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대사는 보여주나요?
오~~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