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우리(사회, 공동체)를 배신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이후 유럽 근대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그 기원을 굳이 따지자고 본다면, 영국에서 일어났던 종획운동으로 인한 사유지의 개념이 형성되고 권리장전에서 사유지에 대한 권리는 영국 왕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가 명시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후, 영국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난폭한 시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스스로 조정이 된다고 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인간(노동)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사유지(자연, 토지)가 된 대단위 농장으로, 농업이 산업화되어 유럽 각국 뿐 만아니라 식민지로부터의 싼 농산물이 수입이 되면서 자국의 농업이 위태롭게 되었다.
시장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배는 농촌 공동체 뿐만 아니라 도시의 노동자들의 사회를 그 동안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처참한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따라서, 각국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선거권을 얻기 위한 차티스트 운동을 벌였고, 중간 계급(자유시민 자본가)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 귀족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국 농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곡물법등 관세를 만들거나 농업 보조금등으로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을 서두르게 되었다.
결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유롭게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또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보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자유시장)는 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무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요구에 의해 정부의 개입으로 시도를 하다가 항상 실패를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 역시 보호무역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배경에는 금본위제도로 인한 시장의 붕괴에 원인이 있다. (구체적인 예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어 보시면 된다)
금본위제도의 실패를 다시 복구하려는 노력이 실패를 했고, 그 실패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은 각국이 금본위제도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정의는, 인간(노동), 자연(토지), 화폐가 상품이 되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시장은 사회(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부속물로서 인류와 함께해 왔다.
그러나,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근대 국가가 만들어졌고, 그에 따른 경제공동체의 형성과 함께,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근대 국가의 민족의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은 순전히 난폭한 시장에 다름 아니었다.
그 중 화폐가 상품이 되면서(세계무역) 벌어지는 난국은, 각 국 기업들이나 노동자들의 성실한 경제활동과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화폐는 스스로의 이익을 만들면서 각국의 자립경제를 철저히 파괴했다.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만들어지고 급변하는 외환에 대응하기 시작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자국의 화폐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중앙은행이 스스로의 이윤(이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기의 근본은 은행이 자신의 금융적 이익의 관점에서 실체 경제에 개입하여 사회의 생산과 소비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공동체, 자치단체)가 스스로 공공통화(정부통화, 지역화폐)를 발행하여, 사회의 잠재적인 생산과 소비 능력에 따라 그것을 무이자 또는 초 저리 금리로 융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만성적인 소득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배당(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생산은 개개인의 노동능력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적 전통의 성과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민에게는 이러한 전통의 상속자로서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
즉, 공공통화와 기본소득 개념은, 화폐의 상품화에서 벗어나 사회화(공유화)와, 생산 혁신으로부터의 생산물을 개인 소유가 아닌 공공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공공통화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면 은행 이익의 사적인 신용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사회 신용론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사회 신용론에 있어서 화폐는 상품이 아니라 분배의 수단이다. 그것은 소비를 위한 생산을 원활하게 촉진하는 티켓 같은 수단이며, 기본소득은 그러한 통화공급의 일원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각에서 볼 때도 사회 신용론은 중요하다.
우선, 첫째로 이 방식을 실시한다면 사람들이 환경보호를 중시하여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다음에는 여가를 즐기는 생활방식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경제에는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위기는 명백히 문명의 전기가 되어야 하는데, 에너지 절약으로 에너지 수지를 다소간 개선한다는 것은 전환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다.
아마도 문명의 전환을 위해서는 무수한 사람들이 풀뿌리 차원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새로운 생활방식을 모색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기본소득 보장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그러한 사회적 실험을 용이하게 하는 데 있다.
사회 신용론을 처음 주창한 사람이 더글러스 클리포드이다.
더글라스는 경제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였고, 더구나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고, 그때까지 개인의 문제에 머믈러 있어 좁은 시야를 가짐으로서 사회 전반과 국제적인 문제를 풀어가기에는 한계를 가진 경제학에, 처음으로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다.
케인즈는 그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았다.
기본소득은 공공통화와는 쌍생아다.
공공통화가 없다면 기본소득은 만성적인 자본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 국가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다.
기본소득 개념을 사회보장 복지와 결부시켜 이야기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본소득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복지 역시 자본이 필요하고 역시 만성적인 부채에 시달리는 현대 국가에서 실시하기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좌 우의 이분법적인 눈으로 경제사를 이해하는 점이다.
시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 시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으로 인해 인간사회(공동체, 국가사회)가 망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 말대로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조정이 되어 인간 세상이 이롭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우리가 지켜 본 200 년간 자유시장(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그러한 자유시장은 없었다.
사회는 항상 스스로를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
그것의 실패가 1, 2 차 세계대전이다)은 결코 인간 세상에 이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시장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사회 복지 입법, 그리고 자국 산업 보호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협동조합등 사회적 기업, 환경 보호, 대체 에너지 등이 전부 이루어 진다고 해도 화폐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그 중심에 공공통화의 사회 신용론이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발달로 인한 기술 혁신의 산물인 생산물을 사회 전체의 것으로 인식하는데 기본소득제의 의미가 있다.
이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