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권섭 | 날짜 : 16-01-15 10:36 조회 : 1211 |
| | | 감사
아버지 회갑 잔치 날이었다. 뒷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마을 앞을 지나는 섬진강 맑은 여울물에는 은어와 피라미가 수없이 노니는 강변 마을(새몰-新里)이다. 은모래 백사장이 아름답다. 최고 청정수를 자랑하는 섬진강 백사장은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인근지역에서 여름이면 모래 뜸질하러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침에는 사랑채 가마솥에 소여물을 끓여 구수한 냄새가 난다. 마당이 약간 질척하여 볏짚과, 공 비료 포대를 펴고 멍석자리를 깔았다. 멍석을 편 자리에 병풍을 치고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해온 꽃무늬 방석을 깐 자리 앞에 회갑연상을 진설했다. 방석 깐 자리 정중앙에는 부모님이 정좌하셨다. 미수의 할머니, 진갑을 삼년 넘긴 고모, 지천명을 넘긴 두 분의 숙부모는 양 옆에 앉아 계시고, 아버지 무릎에는 네 살 먹은 내 아들이 폭 앉아 있는데 보는 순간 얼마나 감격스럽고 흐뭇한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자녀 오남매는 한복을 똑 같이 맞춰 입고 흥분된 마음으로 모두들 미소를 머금고 부모님을 바라보고 정면에 도열하였다. 그리고 부모님께 술잔을 올리고 무병장수를 축원하며 큰절을 했다. 그다음 손자 손녀들도 절을 올렸다. 네 살 먹은 아들이 절을 하고 술을 올리는 순서다. 보는 순간 나에 눈에선 눈물을 흘렀다. 눈물은 입으로 흘러들어 갔다. 주체할 수 없어 자리를 잠깐 떠나 괜한 옷매무새를 여미고 왔다. 조모님과 부모님을 보면서 집안에 귀한 노인이 계시매 그 자손이 복되고, 나라 또한 귀한 노인들이 많으면 국운이 흥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산기가 가까운 날 꿈을 꾸었다. 아버지께서 시장에 소를 사러 가셨다. 아버지가 오실 무렵 마중을 나갔다. 아버지는 큰 황소를 몰고 오신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 쇠코뚜레의 줄을 넘기며 집으로 몰고 가라고 한다. ‘청도’소싸움 경기장에서 본 큰 황소다. 아들이 태중에 있을 때 유일하게 꾼 꿈이다. 소는 우리 농사 뿐 아니라 작은댁들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힘이 센 큰 소를 사왔다. 얼마나 기쁘고 흐뭇하였던지 절로 미소를 지었다. 꿈에도 큰 황소를 내가 모니 흐뭇하고 감개무량하였다.
아버지는 무릎에 앉은 손자가 귀여워서 마냥 흐뭇한 표정에 손도 만지고 다리도 만진다. 지켜보는 나는 왜 그리 눈물이 솟아나는지 주체할 수 없었다. 요즘은 팔순 된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회갑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어 회갑연을 크게 했다.
이젠 선친 회갑연 때 네 살 먹었던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도 하고 손자를 낳았다. 고려대 본관 석조 건물은 우골탑(牛骨塔)으로 회자된다. ‘소’꿈을 꾸어서 그런지 아들은 시골에서 고교를 마치고 고대를 졸업했다. 아들 내외가 합심하여 마련한 새로 이사 간 집에 갔다. 집들이를 초대 받아 다녀온 길이다. 귀성길의 기차 안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집도 구하고 손자도 보게 되어 고맙다는 카카오 톡 문자를 보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30년 전 아버지 회갑연에서 흘렸던 똑 같은 눈물이다. 눈물샘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려 감당할 수가 없다. 기차 좌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우는 나에게 아내는 속도 모르고 위로 한담시고 말한다.
“여보! 왜 그러세요. 서울 가서 서운 한 일을 느끼셨어요. 울지 말아요.”
한다. 밖에서는 금년 제9호 태풍 찬홈(CHAN-HOM) 영향으로 비가 내린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나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인간의 몸체는 우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장육부는 말할 것 없고 신체 부분 부분이 오묘하고 신통하다. 오감(五感)을 통하여 느끼고, 육감(肉感)을 통하여 마음에 자극이 일어난다. 딸 만 둘 있는 처지에 집안의 어른들도 아들을 기다리고, 나도 아들을 ‘대한(大旱) 칠년에 비를 바라듯’ 하였는데 아들을 낳았으니 환호작약하였다.
나는 30년 전 흘렸던 눈물을 흘렸다. 이젠 장성하여 독립한 아들과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니 더욱 눈물을 흘렀다. 아들은 대견하여, 선친은 살아생전 내가 잘하지 못하였음이 후회스러워서‥. 선친은 내가 군복무 시절 아쉬워서 찰한(札翰)을 띄웠을 때 불원천리 달려오시어 위로해주셨고, 어려울 때 마다 나의 구세주였다. 선친이 생존하여 계시는 동안 고요히 웃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저 하늘에 빛나는 맑은 별과 같이 귀한 천금 같은 분, 이제는 기적같이 오셔서 행복같이 저 하늘의 별이 되셨다. 갈 수 록 선친의 덕이 높아만 가고, 선친의 정정(亭亭 우뚝 솟은)한 마음 우러러 거룩하고 귀한 존재로 기억이 된다. 지금도 감사하며. |
| 윤행원 | 16-01-16 21:43 | | 잔잔한 서정시를 읽는 느낌입니다.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사서라도 멘토로 삼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귀한 아들도 훌륭히 성장해서 일가를 이루었고 家內大小事가 무탈하고 행복하신 김권섭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이 여려 눈물도 많으시고 착하게 열심히 사신 흔적을 읽습니다. 화이팅~~~!!! | |
| | 김권섭 | 16-01-17 04:29 | | 존경하는 윤행원선생님 갑작스러운 추위에 그간 옥체 만안하셨습니까? 부족하고 서툰 글을 늘 격려해 주시고 댓글을 달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친이 살아 계실 때는 오래 더 살아 계실줄 알았는데 병상에 누우시더니 곧 돌아가시어 너무도 애달고 후회가 막심합니다. 좀더 잘 할 것 그랬다 하는 생각 말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며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
| | 강승택 | 16-01-17 20:06 | |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정의 분위기가 매우 화목해 보이십니다. 김선생님의 글을 통해서나 직접 뵌 느낌으로나 성정이 부드러우시고 따뜻하셔서 항상 밝고 따뜻한 가정의 기운이 넘치시리라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새 해,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만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 | 김권섭 | 16-01-17 22:46 | | 존경하는 강승택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비가 내렸는데 내일 부터는 동장군이 온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장손으로서 어려서 부터 조부모님 부모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자랐는데, 선친께서 살아 계실 때 잘 모시지 못했음이 늘 후회스럽습니다. 새해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며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
| | 이방주 | 16-01-19 10:49 | | 김권섭 선생님 선친께서 정이 많으시고 자상하셨나 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심으로 표현하신 그리움이 읽는 사람에게까지 전해 옵니다. 저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그 그늘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제는 순간마다 아버님 그늘에 있을 때의 안온한 삶이 그리워집니다. 그 때 그걸 알지못하고 불효한 것이 뼈아프게 후회스럽습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십시오. | |
| | 김권섭 | 16-01-19 13:57 | | 존경하는 이방주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날씨의 변덕이라고 하여 투덜대지만 우리 인간들 모습을 돌아보면 어디 날씨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몇 번 씩 변덕 떠는 모습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주희의 10회훈 첫째 가르침 '不孝父母 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후에 뉘우친다'. 무릇 자식된 도리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의 은공을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 할 것입니다. 누구나 살아생전에는 모르고 작고한 뒤에 후회하는 자녀가 대부분 일 것입니다. 추위에 건강하시고 가내 무고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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