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상을 꿈꾸던 불멸의 화가!
빛과 음악의 축제
<반 고흐
인사이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전은
2012.11.08~ 2013.03.24 반 고흐 in 파리
2014.10.18~2015.02.08 반 고흐 : 10년의 기록 전에 이어
이번 2016.01.08~2016.04.17 반 고흐 인사이드<빛과 음악의
축제>를
포함해서 3번째 만남이었어요.
지금까지 반 고흐의 작품전에 비해
이번< 반 고흐 인사이드>는 부제가 빛과 음악의 축제인 만큼
작품을 빛으로 음악으로 표현하여
반 고흐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 시대 인상주의 미술을 즐길 수 있은 의미있는 전시였어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광기와 열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화가예요.
뉘넨, 파리, 아를, 오베르를 거치면서
고흐 자신만의 빛과 색채를 만들어 가게 되는데
800여점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스케치가에
그의 영혼과 열정을 담아 탄생합니다.
전시는 4곳의 장소로 구분되어 있어요.
1. 뉘넨의 또 다른 해돋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갖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파리, 인상주의 태동하다.
1860년대 프랑스 파리는 근대화의 대변혁을 맞이하며
철도와 튜브물감, 사진기술, 댄디즘과 같은 사회변화가 예술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가져옵니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미술가로 평가받는 풍경화의 대가
윌리엄 터너. 그가 순간마다 변화하는 '빛'을 표현하면서
태양, 빛, 바다, 파도, 푹풍우 등 격정적인 풍경화는
이후 모네, 르누아르, 드가와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60년 파리에는 그 동안 인류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빛과 색채가 화폭에 스며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 사조를 인상주이라 불렀답니다.
시작의 땅,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다.
1853년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태어납니다.
6남매 중 맏아들로 자란 고흐는 검소한 목사였던 아버지의 청교도적인 문화 속에서
성장합니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던 내성적인 고흐는 하층민과 노동자들을 구원하려는 생각으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시작했지만 현실과 괴리된 신학교의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미삼아 그렸던 그림을 통해 노동자들과 하층민들을 진실하게 알리는 것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27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881년 부터 5년동안 에텐, 헤이그, 드렌테 등지를 거치며 집중적으로 드로잉을
배우면서
반 고흐은 어둡지만 진솔한 시선을 <감자 먹는 사람들>에 담고
있었어요.
2. 파리의 화창한 어느 날
"이곳의 젊은 화가들은 그림에 햇빛을 담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상주의자들이 그림은 매우 추하고 마구잡이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받은 첫인상은 그랬다."
일본미술에 눈을 뜨다.
일본 판화, 우키요에 이국적인 분위기,
과감한 구도, 평면적 형태와 색채대비는 파리의 화가들을 매료시킵니다.
1860년대 런던과 파리의 만국박람회에서 소개된 일본미술은
드가, 마네, 르누아르,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사로 잡게 됩니다.
어두운 색채에서 밝은 색채로
고흐 또한 일본 미술의 화풍을 흡수하여
꽃 정물화부터 인물화, 자화상을 그리며
점차 화려한 화풍으로 도약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고흐의 방탕한 도시 생활
"파리에서 내 육체와 정신은 병에 걸려 있었어. 알코올 중독자와 같았지."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 역시 짙어지기 마련이듯
고흐는 도시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자리잡은 고독 사이에서 방황하며
독주와 흡연으로 몸이 쇠약해 집니다.
거칠어진 성격으로 동생 테오와도 갈등을 일으키던 고흐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아름다운 전원을 갈망하며
일본 풍경을 닮은 남쪽 도시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앙데팡당 전시회와 고흐
인상파 화가들은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던 등용문 '살롱제도'의 권위에 반대하여 자신들만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독립 예술가'라는 뜻의 '앙데팡당(salon des independants)'이라는
미술전람회는
진보적인 성향의 미술가들이 기존 살롱의 엄격한 심사제도에 반발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어요.
고흐, 앙리 마티스, 폴 세잔, 피에르 보나르, 틀루즈 로트레크, 마크 샤갈, 모딜리아
등이
초창기 앙데팡당의 참여자였답니다.
3.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새로운 시작, 새로운 화풍
1888년 고흐는 쇠약해진 몸과 영혼을 이끌고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으로 갑니다.
일본 미술에 대한 애착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프로방스에서 만나 풍경은 고흐가 상상 속에 꿈꾸던 일본과 같았어요.
광활한 들판과 하늘은 그를 흥분시켰고 비로소 고흐의 상징인
농도 짙은 엘로, 코발트 블루의 색채가 탄생합니다.
우키요에서 받은 영향을 따라 일본풍으로 자연을 그리며
마침내 아를에서 파리 시절과 다른 대담한 필치, 작은 점과 짧은 선들의 배치와 뚜렷한 색채
등
고흐의 개성적인 화풍이 완성됩니다.
인물화에 몰두하다.
고흐에게 인물화는 사실의 묘사가 아닌 정신적 구현이었습니다.
그는 대상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재해석해내는 화가였으며
"내 영혼에 감동을 주는 건 오직 인물뿐"이라며 인물화를 그리는데 집중합니다.
고갱과 고흐의 노란 집
고흐는 아를에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는데
그것은 공동 작업실과 함께 새로운 화가연합 공동체를 꾸리는 꿈이었습니다.
파리에서 사귄 인상주의 화가들 중 고흐가 가장 애정을 가진 사람은 고갱이었죠.
고흐와 고갱은 다른 환경,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제도를 벗어난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는 점이요.
고흐는 고갱이 아를에 함께 정착하여 교류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마침 카리브에서 막 돌아와 풍토병과 재정문제에 시달리고 있던 고갱은
테오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설득하자 결국 아를로 이주해
고흐의 '노란 집'에 머루르게 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은 고갱과의 우정이 꽃이 피던 시기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고갱이 머물 침실을 꾸미기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고갱과 고흐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였지만
결국 극심한 성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9주 만에 파국을 맞이합니다.
광기와 좌절
식음을 전폐한 채 알콜에 의존하여 밤낮없이 과도한 작업에 매달리던 고흐는
건강은 악화되고 감정 기복도 심해 돌발행동으로 고갱과 싸우게 됩니다.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떠날 것을 예감했고 극심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급기야 자신의 왼쪽 귓볼을 면도칼로 잘라 매춘부에게 쥐어주는 광기어린 소동을 벌이게
되죠.
고갱은 결국 고흐를 떠나고 의사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고흐는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생 레미. 세상과의 단절
1889년 5월 소동이 벌여지고 비난을 받은 고흐는
아를를 떠나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옥수수밭에 위치한 정신병원에서 작업을 이어나가면서
소용돌이 치는 내면의 격랑을 쏟아낸 결과 1년동안 무려 150점의 그림을 그립니다.
생 레미 시절 작품들에서는 이전과 다른 강렬한 붓질의 패턴이 점차 고조되어
소용돌이 무늬와 굽이치는 곡선이 도르라집니다.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요동치던 고흐의 심리가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기는 시기입니다.
이후 생폴 드 모졸 정신병동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 병원의 오솔길,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생 레미 시절의
주요소재였어요.
고흐는 "내 마음에는 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사랑했는데
하늘로 한껏 뻗어 오른 사이프러스 나무를 담아낸 <별이 빛나는 밤에>가 바로 그
명작입니다.
<빛의 팔레트>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했던 코너인 빛의 팔레트예요.
고흐가 좋아했던 엘로, 코발트 블루가 가득한 가운데
필이는 자신만의 파도를 그리고 있네요.
4. 오베르의 푸른 밀밭에서
"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고흐의 죽음
"나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1890년 5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고흐는
파라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우아즈 강변의 작은 도시 오베르로 이동합니다.
과수원과 밀밭이 많은 오베르는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을 닮은 평화로운
시골이었어요.
이곳에서 고흐는 스스로 삶을 정리할 때까지 약 70일을 머무르다
1890년 7월 27일 검푸른 밀밭에서 고흐 스스로 자신의 심장에 권총을 당깁니다.
그가 세상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죽음을 선택하게 됐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채
마지막 3개월 동안 그린 80여 점의 그림을 남기며
생을 마감합니다.
고흐 스스로 영혼의 색깔이라고 믿는
노랑과 짙은 코발트 블루속에
쇠약해지는 육체와
주체하지 못하는 광기를
그 고통 속에 절규하는 고흐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느껴져
마음 한편이 아프기도 했어요.
<빈센트 도서관>
작고 아담한 빈센트 도서관이예요.
탭을 도서에 올리면 책 속 고흐의 그림들이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재탄생합니다.
고흐의 진품 그림이 아닌 음악, 미디어로 표현 되는 전시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도서관에서 잠시 쉬면서 그 빈 곳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각의 틀에 짜여진 전시장이 아닌
서울역 그 안에 곡선들과 고풍스런 분위기속에
빛과 음악으로 전시된 이번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전시로 평가될 것 같아요.
한참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여유있게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작품이 새롭게 태어난 미디어를 보면서
그 시대 인상주의 대가들의 작품도 비교하면서
즐기시면 좋을 전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