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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0: 2 모세에게 속하여 ( 하 )
(1) 세례
"침수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희랍어 밥티스마( )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독교 교회의 최초의 성례 의식이었다. 세례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신약 성경의 바울 서신들을 기록한 때까지는 기독교의 예식으로 이미 실행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세례의 본래 형식은 침례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침례는 물속에 잠기게 하여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게 하고 이 죽음에서 갑자기 구원받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옛 사람의 죽음) 새 생명으로 소생하는(새 사람의 출생) 신앙의 강력한 상징이었다.
신학적 논쟁이 거의 초대부터 세례의 성례전에 대하여 일어났다. 취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세 가지 논쟁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이단적인 교회나 교역자가 베푸는 세례는 무효로 인정해야 한다. 세례는 본질적인 효능을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 처음 문제는 3세기에 그리고 도나투스 주의자들의 논쟁과 함께 4세기에 발생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알맞는 형식과 물질을 사용한 세례만 유효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해결은 세례 자체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천주교에서는 영세를 성화 혹은 습관적 은혜를 전달해 주는 능력이 되며, 원죄의 흠과 죄를 제거해 주며, 더 깊은 은혜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으며,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화하는 은혜에 동참할 수 없으며 중생할 수 없다고 믿었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성례식의 은혜에 대하여 천주교의 견해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믿음을 통하여 의인화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루터와 칼빈은 세례를 어떤 본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편으로 이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며 그 목적은 신앙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루터는 처음 관점을 강조하면서 세례는 구원받기 위하여 필요하며 성령은 세례를 통하여 중생시키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둘째 관점을 강조할 때,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훈례하려는 외부적 표식에 불과하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없거나 거절한다면 그가 복음을 믿는 한 그는 정죄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이 있는 곳에는 세례와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이 두 강조점 사이의 긴장관계는 유아세례를 정당화하려는 종교개혁가들의 시도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세례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에서 유아의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것을 정당화시키려는 루터의 노력은 그의 주임사상과 분명히 모순된다. 신자들의 어린아이는 그들의 부모에 의하여 성화된다는 계약사상을 칼빈은 주장하였다. 유아세례와 [신자들의 세례]와의 문제는 개신교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성례식에 대한 모든 신학은 복음적 원리에 비추어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칼 바르트는 주장하였다.
성례식의 능력은 그것이 교회의 메시지의 한 요소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자유로운 말씀과 행동"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바르트는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성례식을 베풀도로 요청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기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례도 본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천주교와 루터교와 성공회와 바르트는 세례가 하나님의 자유를 억제한다고 주장하였다. 세레는 구속의 원인이 아니며, 그 진정한 기초의 인식과 징표이다. 이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바르트는 유아세례의 시행에 대하여 강력한 논쟁을 했다. 신약 신학자인 오스카 쿨만은 이러한 주장들을 논박하였다.
① 세례의 유래
은혜 계약의 본질은 불변하지만 할례는 세례로 바뀌어졌다. 요한의 세례가 그리스도에게로 넘어왔다.그리스도교의 세례는 - 스스로 세례를 베풀거나 여러 번 거듭하여 세례받거나 종교의식적으로 씻는 것('정결한)과는 달리 - 세례를 주는 사람을 통해 단 한 번 거행한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권한 세례(마 3: 1-6)와 공통된다.
그리스도교회는 맨 처음부터 사람들을 세례를 통해서만 받아들였다. 세례식을 하기 전이나 한 후에 세례받는 사람은 아주 일찍이 확정되어 있던 방식을 따라 신앙을 고백했다.
② 세례의 형식
세례는 보통 세례받는 사람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식으로 거행했다. 이는 이미 세례를 뜻하는 헬라 낱말('밥티제인'은 '담그다', '잠기다'를 뜻한다) 자체에서 드러나고 행 8: 38. 골 2: 12같은 구절로 미루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 행 8: 38 -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 골 2: 12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잠기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 롬 6: 4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지만 신약 시대 이후의 증언에 따르면 물이 모자랄 경우에는 그저 머리에 세 번 물을 붓는 것도 허용되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 행 2: 38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마 28: 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세례는 어른들에게 주었다. 온 '집'이 세례받을 때에 더러는 어린아이들도 함께 세례받았으리라는 점은 배제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다.
* 행 16: 15 -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 행 18: 8 -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 고전 1: 16 -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세례에 물이 사용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씻어 정결하게 한다는 뜻에서 가능하다.
③ 세례의 의미
사람을 물 속에 잠그는 의식으로서,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이 처음으로 행하였고, 다음으로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행하였다. 이 의식은 앞으로 있을 심판에 대한 준비로서 내적 정결에 대한 외적 표징이다.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수반하는 이 의식을 말하는 그리스어 원어에는 "잠그다"와 "씻다"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칭의 곧 죄의 용서를 받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활에 참예함으로써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중생의 축복을 받는다.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와 교제를 갖게 된다.
④ 교부들의 견해
세례로 받는 죄사함은 수세 이전의 범죄에 국한한다고 교부들은 생각했다. 한편 본래 단순하고 순전했던 세례가 날이 갈수록 복잡하게 되어 의식화했다. 어거스틴은 수세시 물이 변하여 은혜의 방편이 된다는 사상을 배격하였다.
⑤ 중세교회
은혜의 방편으로서 말씀보다 성례에 의존하게 되었다.
⑥ 종교개혁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의 세례관과 재세례파의 그것을 모두 반박하였다. 루터는 처음에 세례 자체는 의미가 없다고 했으나 나중에 세례수가 약속의 말씀을 가리키는 표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은혜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2) 성령 세례
오순절 교도에 의하면 이 경험을 추구해야 함은 신자의 의무이며, 방언으로 입증된다.
복음서에는 성령에 대한 예언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인해서 그가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부요하게 풍성히 주시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그 역사적 부분이라기보다 그 교훈적인 부분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곧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설교와 기록들에서 찾아야지, 사도행전의 사건 기술의 부분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사도행전 1, 2장을 보아서 성령의 세례가 개심에 따르는 것이라고 증명할 수가 없다. 성령은 '영'으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본디 '바람, 숨'을 뜻한다. 이는 세계 창조의 근거가 된다.
* 창 1: 2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사 32: 15 -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주셨고 언제라도 맘대로 하시는 생명력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은 또한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치시기도 한다. 곧 어떤 사람 위에 오셔서 그가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하신다.
* 삿 3: 10 -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 삿 13: 25 –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삼손)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하나님의 영은 무아경의 예언자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다.
* 삼상 10: 10-12 – 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한 예언자를 아주 현실적으로 다른 장소로 옮기시기도 한다.
* 왕상 18: 12 -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 겔 8: 3 -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하나님의 영이 다윗이나 예언자 같은 인물들에게 그리하셨듯이 한 사람 위에 늘 머무르시면, 이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졌고 하나님에게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표이다.
* 삼상 16: 13 -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사 42: 1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사 61: 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장래에 하나님의 영을 온 백성에게 부어주실 것을 기대했다(욜 4장)
* 겔 36: 27 -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신약 성경의 교회는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예수께서는 친히 하나님의 영에 가득 차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영을 자기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다(행 2장).
* 막 1: 10 -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믿는 자들은 세례와 더불어 부분적으로는 안수와 더불어 성령을 받는다.
* 행 8: 17 -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행 19: 6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성령께서 들어와 사시는 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새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이자 보증이다.
* 엡 1: 13-14 –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는 숱한 '성령의 은사' 가운데 스스로를 드러내시고 그것들을 통해 교회가 자라고 꼴을 갖추고 든든하게 하신다. (고전 12장)
* 엡 4: 7-13 –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나 누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이 활동하신 결과이다.
* 고전 12: 3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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